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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by 사파이어

오늘은 기필코 자격증 강의 듣기를 이른 아침에 마치리라 했었다.

그런데 요 며칠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탓에 리듬이 깨진 건지, 아침 먹으러 오라는 엄마 전화에 겨우겨우 일어난다.

아침형 인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나마 오전에 가장 반짝거리는 나는 오전 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보내고 싶다고 늘 소망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그 작디작은 소망은 영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시골의 아침은 눈이 부시다.

모든 것이 리셋되는 느낌으로 충만하다.

그런 오전에 나의 부모님은 계획했던 하루의 일 중 대부분을 마친다. 그리고 오후에 쉬신다.

오전에는 집 안이 좋고, 오후에는 마당이 좋은 나와는 정반대의 리듬이다.


이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엄청난 짜증과 함께 늘 피곤함에 쩔어지냈다.

나는 나대로 내 리듬에 따라 살면 그만인 것을, 그게 잘 안 되는 나란 인간이다.

그런 나의 짜증을 초코는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엄마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나와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깊은 한숨과 함께 나의 저녁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구나.

하루 중 저녁 시간은 나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푸석푸석한 중년의 여인네가 맥주를 마시면서 드라마나 영화 이어 보기를 하는 그런 풍경.

9시가 되면 마당으로 나가 초코 쉬를 하고 들어와 영혼 없이 강아지껌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영화와 드라마 타임, 잠들기 전 잠깐의 독서타임.

잠은 어찌나 잘 오는지, 한문단이나 읽었을까.

그런 저녁들의 기억 속에 어찌 된 영문인지 초코가 없다.


4월 들어 나의 생활리듬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마음가짐도 새롭게 정비했다.

오전과 오후, 내키지 않는 일들을 마지못해 해야 할 때, 이곳은 나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영업 관련 부서 막내쯤.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불쑥불쑥 너무나 많다.

퇴근을 하고 완벽하게 나만의 시간이 되는 저녁 시간에 글을 쓰자.

하지만 온전히가 아니다. 글을 쓰기 전에 한 가지 해결해 두어야 할 과제가 있다.

3월 말부터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점 이수 과정을 시작했다.

예전에 몇 번인가 학점은행제로 자격증 공부를 해 본 적이 있어 낯설거나 힘들지는 않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나 고역이다. 이런 쪽에 약간 고지식한 나는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있다가 이틀 후부터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귀만 열어두고 집안일을 했다.

하지만 해가 지면 폭싹 꺼져버리는 나의 몸뚱이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한다.

영화 본다 생각하자. 맥주를 마시며 강의를 듣고 있자면 초코 생각이 밀려와 한참을 운다.

조건반사마냥, 강의만 들으면 그 증상이 하루하루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안 되겠다. 이른 아침에 집안일을 하면서 강의를 들어버리자.

그런데 사흘 내내 그 계획은 무산되고,

오늘도 2시간을 강의에 갖다 바치고 나서야 물먹은 빵처럼 축축한 상태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왜 따려고 했을까.

이미 가지고 있는 자격증도 몇 개인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일은 또 어떠한가.

졸업을 하자마자 바로 결혼을 하고, 또 곧바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 따라 주거지가 자주 바뀌면서 한곳에서 진득하게 뭔가를 하기가 쉽지 않았고, 새로운 공부는 그 과정을 다 마치지도 못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던 엄마가 되고, 아이를 낳기 전에도 3년을 살았던 일본의 같은 아파트에서 또 3년 반을 살다오고, 그러는 사이 딸은 초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내 일을 하고 싶은데, 나는 그때까지 가끔씩 파트타임 혹은 자원봉사일은 해봤지만 작정하고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후회하고 한숨만 쉰들 뭐가 달라지랴. 그래, 자격증을 따면 뭔가 보일 거야. 그래서 시작한 자격증 공부였다. 제일 먼저 도전했던 건 일본어 번역, 그리고 일본어 관광통역 자격증이었다.

슬렁슬렁 일하고 백만 원만 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아한 일자리만 찾았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초라하고 부끄러운 나의 이력서이다.


그나저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왜 따려고 했을까.

딸이 재수를 하던 해 여름, 마음이 너무나 답답하여 점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내 인생 두 번째 점이었다.

첫 번 째 점을 본 건 결혼을 하고 너무 오랜 시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였다.

친구가 점을 보고 왔는데, 너무 용하다며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망설였다.

나 점 안 좋아하는데. 믿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혹시나 안 좋은 말 들으면 그 생각에 꽂혀 될 일도 안되는 거 아닐지. 하지만 호기심에 한 번 가봤다.

나한테 좋은 딸이 있으니 하나도 걱정하지 말란다. 그리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열심히 써먹으라고, 그러면 그게 나한테 너무 좋을 거라고 했다. 3년 간 일본에서 살다가 온 직후였다. 나는 일본의 일자도 안 꺼냈는데, 그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점을 보고 와서 한동안 에너지 가득 충만한 기운에 벅찼었다. 딸이 있대! 나도 엄마가 될 수 있대!

그리고 두 달 후에 임신을 했고, 너무나 감사하게 이쁜 딸이 우리에게 와주었다.


두 번 째는 형님이 한 번 가보자고 해서 가봤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모르셨지만 형님과 아가씨는 당시 우리의 사정을 알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내 편이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들은 가족이고, 이제 나는 아니니까. 가족이란 그런 것이니까.

딸 입시 문제로 갔는데, 내 점까지 보게 되었다.

이혼은 하지 말고 별거를 하는 게 좋을 거고, 내가 너무 버거울 테니 부모님 옆에 가서 사는 건 다시 생각해 보라며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사색하고 돌아보며 편안하게 살라고 했다. 사회복지사 일이 나한테 잘 맞을 거고, 글도 써보라고도 했다. 이번에는 갸우뚱거리며 왔다.

그런데 딸의 입시에 관해 얘기했던 것 중 대부분이 맞아떨어졌다. 이쯤 되면 무섭기도 하다.

나에 관한 부분은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사회복지사를 콕 집어 말한 부분을 왠지 그냥 거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늘 마음 한구석 그렇게 살고 싶었던 모습과 완전히 동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카운슬러가 꿈인 적이 있었다.

내가 이제라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한 학기 남겨두고 자퇴를 한 학력을 이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을 하면 나의 예전 꿈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 길고 막막하다. 내게 그럴만한 의지가 있을까. 돈과 시간이 허락될까. 나의 나이는 언제 이리 많아졌을까.

사회복지사라면 지금의 현실과 약간의 타협이 될 법도 하다. 나는 늘 나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그리웠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사회복지사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낭만타령일 수도 있겠으나, 1년 열심히 준비해 보자.

그런데 사실은 망설인다. 하지 말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살려볼까.




올해에는 농사도 봄의 시작부터 지어보고 싶었고 자잘한 집수리는 내가 직접 다 해보고 싶었다.그런 생활에 대한 기대와 로망이 있었다.

작년 생각이다.

내가 농사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집수리와 셀프 인테리어같이 엄청난 인내가 요구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시골은 좋다.

<월든>을 동경하여 잠시나마 흉내도 내보고 싶다.

내 맘 가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

가지고 있는 약간의 돈으로 냉장고 파먹기하며 사는 삶이 잠시 허락되긴 하겠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 없는 것도 내가 처한 현실이다.

하지만 조금은 유보해 두고 싶다.

나의 초라한 생의 이력에 자꾸만 한없이 무기력해지려 하지만, 나는 이제 초코와 약속했다. 충실하게 살기로.

물론 나는 젊지 않아 또다시 초조해지지만

늙은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를 토닥이면서 그렇게 한 줄 한 줄 이제부터 나의 이력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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