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미리 각오는 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눈앞의 일들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서도 한 번도 이 상황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후회는커녕 이제부터 펼쳐질 초코와 나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하루하루 버텼다.
올해만 이렇게 살고 우리 이제 여기서 잘 살아보자 초코야.
딸은 재수 끝에 작년 3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의 로망이었던 자취를 시작했다. 3월 한 달이 딸 자취방 꾸미기 프로젝트로 후딱 지나가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1년 반을 묵혀두어 썩어 문드러진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할 시간이 오고 말았다. 남편의 두 번째 외도로 시작된 삐걱거림이었으니,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어떤 제스처든 먼저 취해오길 줄곧 기다렸다.
첫 번 째였던 12년 전에는 세상이 무너졌었다. 분노보다는 슬픔이 휘몰아치는 요상한 감정이었다.
게다가 자기반성까지 했었다. 그래, 나도 잘한 거 없어, 더 노력했어야지.
그리고 그때 새삼 알았다. 미워서 미칠 것 같은데 사랑은 하나보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대학교 3학년 그러니까 고작 스물 두 살에 만나 졸업하자마자 스물 다섯에 결혼을 했던 그 어린 시절의 애틋함을 사랑이라고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외도는 정말 우연히 알았다. 어떤 낌새도 없었다. 같은 사람이었다.
과연 두 번 째는 달랐다. 그냥 싸늘해졌다. 화도 나지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어떻게 전할까, 감정적으로 나가지 말자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입을 닫고 지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의 표정으로 보건대 자기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말을 좀 해보라고 했다.
그날의 대화로 나의 마음은 싸늘함만으로도 모자라 역겨움까지 감당해야 했다. 구질구질했다.
나는 남편이 좀 더 멋있기를 바랐다. 내 마음 내가 어쩌지 못해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그랬다면 나는 어쩌면 슬펐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혼은 남편의 외도가 원인이 아니라, 30년 간의 그의 무심함과 나의 외로움이 이유였다.
헤어짐을 떠올렸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얼굴 좀 안 보고 목소리 좀 안 듣고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태생이 못된 남자인 그가 단칼에 상황 정리를 해주었다.
끝까지 방어적이고 구질구질했던 그 사람이.
별거냐 이혼이냐를 고민하던 나에게 이렇게 살 바에는 이혼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와 너란 인간..
어쩌면 남편도 내게 하고픈 말이 나만큼이나 많았던걸까.
지금은 그런 그의 못됨이 너무나 감사하다.
나는 왜 별거를 선택지에 넣었는지, 물러터진 내가 큰일 저지를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올 1월에 이혼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작년 6월 확인기일에 불출석하여 한 차례 미룬 이혼이다.
집이 팔려야 대출도 정리가 되고, 그래야 뭐가 되든 되는데 4월부터 내놓은 집은 그때까지 단 한건의 문의도 없었다. 덜컥 이혼부터 해버리면 이후의 일들이 너무나 막막해서, 집정리가 되고 나서 하자고 내가 먼저 제의했고, 남편도 그에 동의했다.
이혼이 현실이 되면서 오히려 남편과는 더 자주 더 편하게 전화 통화를 했다.
함께 의논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밉고 역겨운 마음은 어느 틈엔가 옅어져만 갔다. 어쩌면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통화를 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초코의 안부를 묻지 않았던 그 사람.
초코 보고 싶지도 않니 이 냉혈한아 치가 떨렸던 그 사람이.
구청에 가서 이혼 신고를 마치고 돌아온 날 저녁에 카톡을 보내왔다.
못난 놈 만나서 고생하고 살았다고. 씩씩하게 잘 살라고. 초코가 보고 싶다고.
도대체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다정이 병인 나 같은 사람에게 너무나도 버거웠던 사람이다.
그날 그 카톡에 오랜 시간 애써 담담함을 유지했던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결심이고 마음의 준비고 뭐고, 초코를 이제 그만 보내줘야 했던 그날.
아빠하고 누나도 함께 있을 거야 초코야.
전화를 했다. 그렇지만 아빠라는 그 사람은 끝내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울며불며 통곡하는 나에게 초코 너무 힘드니까 마음 아프지만 보내주자 이 말만 기억에 남아있다.
매일매일이 아프지만 떠오르는 기억의 모습이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초코 보내던 날의 어리버리했던 나의 모습만 하루 종일 떠오르고,
또 어떤 때는 어렸을 적 초코에게 소홀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오늘이 그랬나 보다.
원래도 위태로웠던 우리 가정이,
그 이전도 잘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왜 제일 힘들었던 12년 우리와 함께 있다가 떠나갔을까.
아주 조금은 내 마음이 따뜻했을 때 같이 즐겁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1년 동안 요즘처럼 우리 딸 생각을 안 하고 산 적은 처음이다.
온통 초코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