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내 강아지가 곁에 없을 때 아주 많이 울게 될거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 슬픔은 아마도 그 아이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상실감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 슬픔의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더이상 깊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곤 했다.
내 안의 나, 나도 어쩔 수 없는 나, 사실은 성의 없고 차가운 나, 나로 살지도 못하면서, 그저 슬픔 안에 있는 것을 어쩌면 즐겼고 그런 달콤쌉싸름한 감정에 잠겨있을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했었다. 오로지 나만 있었다. 그 안에 내 강아지는 없었다.
그런 류의 슬픔에 대한 예감.
그리고 이런 말들을 아주 많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이쁜 놈이 사랑 많은 가족들 품에서 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넓은 정원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해 주지 못하는 사랑을 누군가가 우리 초코한테 쏟아부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놈인데’
‘어쩌다 나한테 와서, 아니 우리 가족한테 와서는’
2023년만큼은.
초코에게 얼마든지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초코가 원하는 만큼 함께 산책할 수 있었고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곁에 있는 초코를 진심으로 보지 못했다. 마지못해는 아닐지라도 의무감에 나선 산책길의 그 좋은 날들을 맘껏 누리지 못했다.
나에게 초코가 어떤 의미였는지, 정말 솔직한 내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초코가 떠난 지 열 달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감히 파양이라는 선택지를 끝내 고르지는 않았을지언정, 이런 생각은 했었다. 내 인생은 그럼 뭔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건가. 파양하는 이들의 마음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고, 비난만 할 수는 없었다. 정말 단지 귀찮아서, 힘들어서, 돈이 많이 들어서. 이런 것이 다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처럼 못난 가족말고 더 좋은 가족에게 가서 한껏 사랑받으면서 살았으면.
그 아이가 그렇게 사랑받으며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더 이상 죄책감 느끼지 않고, 나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멍하니 있을 때면 자주 그런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떠올리며 한없이 죄스럽다.
초코가 천년 만년 살 줄 알았니 이 바보야.
행복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자그마치 12년이었다구. 내강아지가 나에게로 와준 그 첫날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귀하고도 귀한 우리의 인연을 그때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 않았을까.
아들이라 좋았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나긋나긋해야만 했던 딸이 아니라서.
우리딸은 우스갯소리로 흔히들 말하는 '아들같은 딸'인데도, 아이를 대하며 늘 전전긍긍했다.
이놈 저놈, 이노무시끼. 아무 때고 소리 치면서도 우리 관계의 그 단순함이, 내 맘 가는 대로 조금은 소홀해도 되었던 그 거침이 나는 좋았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투박하게 혹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런 겉모습 이면에 숨어있는 수줍은 진심을 발견할 때마다 내 눈물샘은 정확히 반응하곤 했으니까. 그게 내가 좋아하는 사랑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알콩달콩 사랑이 난 언제나 싫었다(질투일까?)
초코를 향한 내 마음은 분명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나와 초코는 그렇게 맺어진 관계였고, 그 안에서 나는 어쩌면 편안한 사랑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무리해서 가다듬지 않는, 나긋하지 못한 방식이었을지라도 나는 초코에게 솔직했다. 화가 나면 나는 대로, 이쁘면 이쁜 대로.
그러나..
우리의 방식으로 사랑했지만, 그 안에서 진심을 다하지 못했다. 언제나 미뤘다. 나중에 나중에.. 초코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딸에게 쏟던 정성의 5분의 1만이라도 우리 초코에게 줄걸.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면서, 후회가 클수록 미련은 그만큼이나 더 많아져, 아직도 초코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내 꼴이라니. 자업자득이다. 이렇게 아플 줄 진작에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그렸던 미래를 초코 없이 보내며 이제야 나중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울기나 하고.
초코가 지금 내 곁에 있다면 나는 과연 초코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주고 있을까.
미웠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초코는 내 곁을 떠나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맞아터졌는데 보란듯이 또 때리는 그 집요한 조롱이 내 인생 목차에 강제로 새겨넣어지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쯤 어찌 살고 있을까.
그토록 저주했던 2025년이 가고 문득 해가 바뀌었을 뿐인데.
맨정신으로 긴긴밤을 보내는 방법을 알지 못해 오로지 맥주와 잠으로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떠나가는 해에 묻혀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만 같다.
계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부지불식간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인가보다.
나는 이제 밤 늦게까지 앉아 뭔가를 한다.
더는 맥주도 찾지 않고.
울고 있는 와중에도 뭔가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진다.
상황은 아무 것도 좋아지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벅차오르는 이 느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