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짧은 산책을 하고 풀을 뽑는 일이 차츰 루틴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주 비가 많이 온 다음날부터였을까. 산책하는 그 짧은 시간마저 아까워졌다. 땅 촉촉할 때 얼른 다 뽑아야 하는데! 해 뜨기 전에! 문을 벌컥 열고 나가 곧바로 마당으로 가서 쭈그려 앉는다.
비와 이슬을 한껏 머금은 풀들은 힘을 살짝만 줘도 맥없이 쑥쑥 뽑혀나왔다. 어쩌자고 차 나가는 길에 뿌리를 내렸니. 한올한올 단단히 박혀있던 실뿌리를 훤히 드러낸 채 누워있는 풀을 보며 가증스럽게도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풀 뿐 아니라 벌과 거미들에게도. 어쩌자고 여기에 집을 지었니. 공생이 참 어렵다. 마음이 잠시 소란스럽다가 차츰 손놀림이 빨라진다.
어제부터 더위가 살짝 누그러지는가 싶더니만, 밤새 기온이 무려 23도까지 떨어져 새벽녘에는 아, 추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별안간 가을이 되어버린 듯한 날씨에 오늘은 엄마도 같이 풀뽑기에 동참하셨다. 엄마와 함께 하니 갑자기 일이 되었다. 엄마의 일 스타일은 매우 전투적이다. 대부분의 시골일이란 것이 일로 치면 고단한 일이지만, 사부작사부작 놀이처럼 하다보면 어느새 끝나있는, 난 그런게 좋은데.
맘 먹고 다시 시작한 산책도, 독서도, 공부도, 글쓰기도. 이제 씨 뿌려놓고 당장 수확을 바라면 도둑놈 심보겠지만, 의지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조차 그저 기다림 기다림.. 뭐하나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게 없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한껏 기합을 넣어보다가도 한순간 축 처지는 어깨. 맨땅과 진흙탕을 번갈아 오가며 뒹구는 중이다.
모든 게 지지부진한 가운데 풀뽑기와 마늘까기, 옥수수 껍질 벗기기, 북카페 책 작업같은 단순 노동의 성과물만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멍하게 맑은 머릿속을 문득 스치는 단상의 양만큼 풀과 마늘이, 옥수수가, 책이 조용히 쌓여간다.
올 봄, 파릇파릇 돋아나는 어여쁜 새싹들을 보면서 괜히 심통이 났다. 벅찬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봄이 괴로워 몸살을 쳤다. 얼어죽은 줄 알았던 데크 앞 매발톱 잎이 말간 연두빛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다. 나무의 생명력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렇게 여리여리한 끈질긴 생명력이라니.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못마땅했지만 마당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낸 어린 깻잎들은 내마음을 세차게 흔들어댔다.
작년 가을 마당에서 깨를 털었다. 미처 주워담지 못한 씨앗들이 땅에 묻혀 있었나보다. 추운 땅 속에서 혹독한 강원도의 겨울을 버티다가 끝내 싹을 틔워낸 깻잎들이 너무 기특하면서도 질투가 났다. 깻잎만 보면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한 모금도 채 되지 않을 약물에 그리 쉽게 사그라들던 초코의 맥박.. 너희가 우리보다 훨씬 강하구나..
깻잎을 보며 터져버린 눈물샘을 가만가만 누르는데.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슨 영화였더라. 윤여정님이었는데. <미나리>인가? 아닌데.. <죽여주는 여자>인가. 아닌거 같은데. <가족의 탄생>? 아니야, 그건 고두심 배우였지.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는데. 무슨 영화에서 나왔더라..
깻잎 주변의 애꿎은 풀들만 더욱 세게 뽑혀나갔다.
아! 맞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였다. 강말금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는데 어떻게 잊었지. 좋아하던 영화였는데.
하나 뿐인 딸을 앞서 보내고 산꼭대기집에서 혼자 살아가던 할머니와 갑자기 일이 끊겨버려 월세가 싼 이 집을 찾아내 세 들어 살게 된 영화 피디 찬실이.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마당에 있던 화분의 꽃나무들이 얼어죽은 듯 보이고, 그 중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화분 하나를 두 사람이 함께 집 안에 들여 놓는다.
시간은 흘러 보란 듯 살아난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 주민센터 한글교실에서 시 숙제를 받아왔다. 쉽게 쉽게, 떠오르는 건 뭐든지 시가 된다는 찬실이의 말에 한글자 한글자 사각사각 써내려간 시. 맞춤법이 이게 뭐냐고 핀잔을 주는 찬실이의 터진 눈물샘. 할머니, 이게 뭐에요.
이게 뭐라고, 그래서 어쨌다고, 매몰차게 깻잎을 뽑아냈다. 너만 버틴거 아니잖아. 누워있는 얘들도 다 힘겹게 겨울을 났거든.
그래도 눈물이 났다.
아무도 보살피지 않았는데. 누구도 응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어렵게 한겨울을 버티다 깨어난 씨앗인데.
'내 강아지도 씨앗처럼 다시 깨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룰 수 없는 바람이니 용서를 구해도 될까.
미안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