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12일. 1월의 기억을 들춰가며 이 글을 쓴다.
1월 초에는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엄마아빠도 같이 뭘 하자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불편했다. 엄마 아빠가 일하는데 무슨 대단한 일 한다고 집 안에 들어앉아 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겐 힘들었다. 부모님 집의 일을 먼저 해놓아야 그다음 내 일 하기가 맘이 편했다.
그렇지만 텃밭농사도 농사라 그날 계획했던 일들을 다 마치면, 저녁 때는 녹초가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나의 고질병이기도 한, 나보다 가족들 먼저병. 그래서 늘 동동거렸다.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초코는 늘 뒷전이었다.
그렇게 평온하고 걱정 없던 나만의 시간은 고작 일주일 정도였나 보다. 1월 10일. 엄청난 북극한파가 몰려온다고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난리더니, 과연 영하 18도까지 찍어버렸던 그날 아침.
엄마집 물이 안 나온단다. 지하수가 얼어붙었다. 우리 집은 괜찮은데, 엄마집 지하수 관정은 늘 말썽이라, 안 그래도 오래전부터 제발 좀 새로 제대로 파자해도 이게 돈이 천만 원 단위이다 보니, 쉽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업체 두 군데의 기사님 두 분의 손을 거쳐 이틀 만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춥고, 왜 이리 일이 끊이지가 않는지 화가 났다.
그리고 하루 정도 뒤였나 보다. 초코가 갑자기 킁킁거리고 밥 먹기를 힘들어했다. 평소 밥그릇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잘 씹지도 않고 후루룩 드시는 식탐의 소유자이시라, 8살 때 아팠던 4개월을 빼고는 한 번도 밥 때문에 속을 썩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밥을 잘 씹어 넘기지를 못했다. 중간중간 목이 매인 듯 억지로 삼키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왜 그러지..
그래서 그날부터 사료 그릇을 내가 들고 밥그릇은 밑에 하나 더 두고 조금씩 집어서 열 번 정도로 나눠 먹였는데, 그렇게 하니 훨씬 편안하게 잘 먹었다.
그때쯤 엄청난 눈이 한 번 내렸던 것 같다.
한낮의 기온도 영하를 밑도는 날씨이긴 했지만, 그래도 햇빛이 들면 눈이 조금씩은 녹았다.
작년 7월에 내려오면서부터 이상하게 현관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었다. 예전에 주말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할 때는 그런 적이 없었다.
집 안은 아직 나무향이 남아있어 그때까지는 현관의 지독한 냄새 말고는 거슬릴 것이 없었다. 7월, 8월을 지나고 9월까지도 괜찮았는데, 10월 들어서부터 집 전체에 똥냄새라 해야 할지 방귀냄새라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종류의 기분 나쁜 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정화조를 비워야 할 때가 되었나 싶어 처리를 하고, 집안 냄새에 대해 여쭤봤더니 정화조와 배수구는 완전 별개라 아마도 그 냄새는 배수구 찌꺼기가 썩어서 그 냄새가 역류하는 것일 거라고 하셔서 그것도 점검받았다.
그래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속만 썩이고 있던 틈을 타서 그 냄새가 집 안의 나무향까지 싹 잡아먹어버렸다.
싱크대가 오래돼서 낡고 썩어서 배수구로 냄새가 들어오나? 특히나 아침 일찍 냄새가 더 심했는데, 오후에는 또 신기하게 그 냄새가 사라졌다. 아, 해뜨기 전에는 땅에서 위로 바람이 역류를 하는구나.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주워들은 배관 관리사 대표전화로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더니, 고압세척차가 한 번 오면 기본 100만 원이고, 대부분은 배수구에 내시경을 넣어 먼저 살핀다 했다. 그 비용 또한 25~30만 원 정도. 싱크대가 오래돼서 교체할 생각이 있고, 일단 교체부터 먼저 하고도 냄새가 안 잡히면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
하루하루 냄새 때문에 예민해져 가고 어떻게 해서든 이 악취를 잡으리 독기를 품은 어느 날.
봄에 하려던 싱크대 교체부터 먼저 해야겠다 싶어 한 군데 견적을 내놓고, 현관부터 살펴봤다.
현관 천장에 전기배선 가려놓은 뚜껑부터 열어 안을 들여다 봤더니 거기는 물기 하나 없이 뽀송했다. 일단 그 안에 환기를 시켜야겠다 싶어 한동안 열어두었는데, 바깥쪽 센서등 빼놓은 동그란 구멍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 뭐지. 누수가 있나. 결로가 생겼나. 전기선이 지나가는 길인데 괜찮으려나.
점검을 받아보니 아무래도 2층 데크에서 누수가 있어 현관으로 타고 들어와 나무 패널 안쪽이 썩은 것 같은데, 일단 뜯어봐야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잔금 문제로 집을 비워야해서 이틀 후부터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집을 비울 때면 아빠가 초코 점심 때 간식과 쉬와 응가하러 나가기, 늦을 때는 저녁까지 챙겨주시는데, 초코가 이상하게 킁킁거리고 목이 불편한 것 같으니 밥을 조금씩 집어줘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을 하고 다녀왔었다. 그날 밤에는 기관지 영양제를 주문했다.
초코가 원래도 기관지협착증이 있어 가끔씩 컥컥거리곤 했는데, 초코도 악취로 고통을 받고 있나, 그래서 기관지가 더 안 좋아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하루 이틀이면 택배가 오는데, 그 약은 웬일인지 사흘이나 걸려 도착을 해서 그사이 마음이 급했다.
누수공사는 하루가 늦춰져 이후 4일 동안 진행되었다.
사장님이 혼자 오셔서 공사를 했고 나는 자연스레 뒷정리 등의 보조일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의 목공 기계들이 총출동되어 현관을 뜯고 2층 데크를 다 뜯어냈는데, 그 소음이 얼마나 엄청난지, 안 그래도 소리에 민감한 초코가 너무 걱정되었지만,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계속되는 공사에 여기 뛰고 저기 뛰고 하느라 초코는 뒷전이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다. 왜 초코를 엄마집에 데려다 놓고 하지 않았을까. 사실은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초코는 엄마집에서 하루 종일 우리 집 쪽을 보고 짖어댔겠지. 하루도 아니고 며칠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럼 시끄럽다고 구박을 받았겠지.
엄마나 아빠가 문 여는 틈을 타서 쌩하니 빠져나와 도로로 뛰어들면 그게 또 걱정이기도 했고. 그보다는 내가 왔다 갔다 하며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때 초코를 엄마집에 데려다 놓았어야 한다고 이제 와서 후회를 한다.
첫날 오전 안절부절못하고 흥분상태였던 초코는 오후가 되니 그 소음에 벌써 적응이라도 된 듯, 내려와 보면 가만히 누워있었다. 에구 가엾은 놈.
3일을 내리 그런 날을 보내고, 부동산 양도세 신고와 이혼 마지막 절차를 위해 또 집을 비워야 했다.
사장님이 이제 하루 정도면 마무리가 될 것 같다고 하셔서, 내일 일을 보고 와서 그 다음날 끝내기로 했다. 그날은 또 싱크대가 오기로 한 날인데.
2층에서도, 집 안에서도 쿵쾅거리면 우리 초코는 어디 있나.. 못 나오게 침실 문 막아두고 그 방에 있어야지 어떡해..
싱크대공사와 데크공사가 같이 있던 그날.
우리 초코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던 것 같다. 대여섯 번 토를 했던 것 같다. 뭘 잘 못 주워 먹었나..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힘들 거라는 건 알았지만.
추운데도 미세먼지가 엄청 심한 날이라 밖에 하루 종일 있게 할 수도 없고, 엄마집에 데려다 놓는 건 안 하기로 했고. 초코야.. 미안해.. 하루만 더 참아주라..
두 건의 공사를 무사히 다 마친 그다음 날은 또 오전에 집을 비워야 했다.동생이 치료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입원을 하는데, 매 번 엄마가 3박 4일 정도를 보호자로 같이 계셔주어야 했다. 한 번 다녀오면 엄마도 몸살을 앓는지라, 그리고 초코를 두고 내가 3박 4일 집을 비우고 대신 갈 수는 없어서, 오며 가며라도 편하시라고 병원까지 모셔다 드리고 모셔오고 했다.
가는 데 두 시간, 오는 데 두 시간, 휴게실도 안 들리고 바로 왔더니 2시 정도였다.
초코와 가볍게 산책을 하고 그 이후는 나도 뻗어버렸다. 16일부터 시작한 대장정이 23일에나 끝나 꼬박 1주일을 불살랐던 나도 이 날과 그 다음 날은 시름시름 앓았다.
다음 날 저녁에서야 겨우 초코 옆에 앉아 제대로 쓰다듬어 주었나 보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초코 목에 멍울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뭐지 이건. 뒤늦게 도착한 영양제를 먹이면서도 차도가 전혀 없었으나, 영양제 잘 먹으니까 금세 괜찮아지겠지 했었다. 그날부터 설연휴가 시작되어 이미 병원은 문을 닫았을 테고, 검색을 해보니 31일부터 운영을 한다는데 괜찮을까 그때까지?
365일 문을 여는 원주 동물병원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그때까지는 그런 큰 병은 생각조차 못했으니 연휴 내내 마음 한 구석 불편해하면서 31일만 기다렸다. 딸이 왔는데도 내 마음은 온통 초코 걱정이었다.
드디어 31일이 되어 딸을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그 길로 초코병원에 갔다. 일단은 항생제 주사와 진통제를 1주일 먹여보고, 단순 염증이면 아마도 크기가 줄어들 테지만 아니라면 2차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의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요즘 나의 머릿속은 늘 물음표로 가득 차있다.
그때 바로 2차 병원으로 가는 게 좋았을까? 나의 1월이 이렇게 바쁘지만 않았어도, 아니 피곤한 중에도 초코를 자주 쓰다듬어주어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그러면 초코는 괜찮았을까? 그때만 알았어도 국소치료가 가능했을까?
12월 내내, 1월에도 여전히 극한 추위에 데크 빠개지는 소리로 고통스러웠을 초코가 공사 소음까지 견뎌내야 했다. 아니, 시작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초코 왼쪽 뒷다리 안쪽에 한참 전부터 달고 다니던 혹이 있었다. 2년 전쯤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때, 초코병원 원장님 말씀이 이게 근육에 딱 붙어있으면 위험한데, 떨어져서 움직이는 상태이고, 양성악성을 가려내려면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조직검사라는 게 수술을 해서 떼어내고 그걸 보는 거라 수술과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당시 10살이었던 초코는 슬슬 노견의 나이로 접어들 때여서 수술의 위험성과 지금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지속적으로 상태를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셨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 크기 그대로, 만져도 싫어하지도 않고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랬는데, 작년 12월 어느 날 보니 그 혹이 계란보다 조금 더한 크기만큼 커져있었다. 여전히 근육에 붙어있지는 않고 양옆으로 잘 움직이기는 했으나,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러고만 만 나는 제정신인가.. 어떻게 그렇게 무지할 수가 있었나..그때만 검사를 해보고 무언가를 했더라면 우리 초코는 괜찮았을까.
나는 요즘 자꾸만 12월, 1월, 2월 그 시간들 속에서 허우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