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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와 나의 마지막 한 달 3

by 사파이어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깔아 둔 이불 위로 초코가 무너지듯 쓰러진다. 그때가 새벽 3시 30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상태로 초코는 아침까지, 오전 내내 아파했다.


결심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초코를 이제 정말 보내줘야 할 때가 왔구나.. 그 끔찍하고 싫었던 안락사라는 말을 입에 올려야 할 날이 왔구나.. 내 품에서 편안하게 가길 그렇게 빌었건만.. 엄마가 집에 가자는 말에 끝까지 참고 버틴 것 같은 초코가 너무나 가엾고 사랑스러웠다.


아침이 되자 새벽보다는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했으나 여전히 숨쉬기 힘들어하며 아파했다.

오전 내내 밥은 물론 물도 안 마셨다. 쉬는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가 싶더니 해가 쨍하니 들고, 그러다가 또 비가 슬금슬금 내리는 그런 날씨였다.

엄마가 집으로 오시는 걸 창문으로 보고 조용히 나가서 초코 이제 보내줘야 할 것 같다고 말을 내뱉으니 그 말에 내 감정이 또 요동을 치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남편과 딸에게도 전화를 했고, 딸은 버스를 타고 원주 병원으로 바로 오기로 했다.


나는 그 병원에서 초코를 보내기 싫었다. 안락사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진료순서를 기다렸다가 진료실로 들어가 그 테이블 위에서 보낸다는 게 너무 슬프고 싫었다. 그렇지만 초코가 예전 다니던 병원 원장님 손으로 초코를 보내주려면 일요일인 오늘, 대체 휴일인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화요일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초코는 이제 정말 더는 붙잡을 수 없는 상태까지 온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보내는 것에 더 이상 의미를 둘 수 없을 만큼 우리 초코의 고통은 극에 달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사람 많은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진료시간 기다렸다가 초코를 어영부영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욕심 때문에 초코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건가. 그렇지만 누나가 와서 초코랑 인사를 하려 해도 저녁시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야간 진료 시작하면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초코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담당선생님께 전화를 하니 선생님 또한 오늘은 저녁 6시에 출근을 하신다고 했다.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렇지만 나는 초코를 마음의 준비 없이 보내고 싶지 않았고, 내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조금은 차분해졌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점심때 준 계란 노른자를 비록 한조각도 아니고 반조각이었지만 맛있게 먹었고, 오후가 되니 숨소리가 편안해지고 지난 금요일 이후로 처음으로 편하게 오랫동안 잠을 잤다.


동생이 와서 초코 옆에 있어줄 동안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초코 데리고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초코는 잠깐잠깐 깨긴 했으나 괴로워하지 않았고, 또다시 편하게 잠이 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셔서 초코랑 인사를 하는데, 이렇게나 슬픈 광경인데도 내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했다.


오후에는 비가 또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4시 조금 넘어 초코는 자기 발로 걸어 나가서 비 내리는 잔디밭에서 마지막으로 쉬를 했고 나는 그 옆에서 우산을 들고 초코를 쫓아다녔다.


아까운 내 새끼.. 못된 병만 안 찾아왔어도 스무 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은 내 새끼.. 이렇게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혼자서 쉬도 하고, 12살 고령에도 백 미터 달리기 선수였던 내 새끼.. 아까운 내 새끼...


출발 시간이 되어 거실 창가에 엎드려 누워있는 초코를 억지로 안아 올리려 했더니 으르렁거렸다.

어쩌지.. 마지막까지 초코를 힘들게 하는구나. 그렇지만 가야 했다. 안아 올려서 이불로 감싸고 내 품에 폭 안았다.

동생 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 1분이 거짓말 같았다. 뒷좌석 내 옆에 엎드려 편안한 모습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출발을 했다.


마을길을 빠져나와 원주로 가는 내내 편안하더니 갑자기 또 통증이 밀려온 듯 숨이 가빠졌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 이놈은 끝까지 초코를 괴롭히는구나. 잠깐 통증이 멎은 듯한 시간에 물을 손에 묻혀 주니 할짝할짝 핥았다.

오늘 계란 노른자 반조각밖에 먹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혹시나 하고 챙긴 후코이단 한 알을 내밀었더니 처음에는 싫다고 고개를 돌리더니 조금 뒤에 코를 들고 킁킁 냄새를 맡는 것 같아 다시 한 알을 주니 우리 초코 먹는다.. 에구.. 내 새끼.. 초코는 더 살고 싶은 거야..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후코이단 10알 정도를 먹였다. 소화도 못 시키고 가는 그 10알, 무지개다리 건너면서 우리 초코 배고프지 않게 해 주라..


갈 동안은 동생이 운전하고 나랑 초코는 뒷좌석에 앉아 있어 딸은 그때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내 기억 속에 그 시간 앞자리 보조석에는 딸이 앉아 있고, 엄마, 초코 소화도 못 시키고 가는데 그만 먹여.. 했던 것 같다.


7시 조금 넘어 도착을 해서 딸을 만나고, 우리는 모두 대기석에 앉아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옆에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시선만 느낄 뿐, 쳐다볼 힘도 마음도 없이 줄곧 울고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초코가 몸을 뒤로 뻗치며 안겨 있기를 거부해서 의자에 내려주고 엎드린 자세로 초코는 물을 조금 마셨다. 그리고 초코의 이름이 불렸다.

초코랑 처음 갔을 때의 그 진료실로 들어갔고, 선생님은 안락사도 치료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주사를 직접 놓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처치실에서 카테터를 장착하고 와서 그 안으로 약물을 넣는다고 하신다. 우리 초코 끔찍이도 싫어하는 저 처치실에서 마지막까지 두려움에 떨다가 보내야 하는구나 싶어 거기서부터 내 맘이 무너져 내렸다.


잠시 뒤 오른팔에 카테터를 달고 나타난 초코를 다시 진료실 테이블 위 이불 위에 눕히고(엎드리고) 선생님이 약물을 넣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미 수도 없이 초코랑 마지막 인사를 했건만..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겨우 나온다는 말이 그저 초코야, 사랑해,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렴. 우리 애기.. 딸은 말없이 쓰다듬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취약이 들어가자 초코 눈이 갑자기 풀린다. 현실감이 하나도 없었다. 초코가 아직 귀로는 우리말을 들을 수 있다 하니 뭔가 정말로 초코가 편히 갈 수 있을만한 말을 해주고 싶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심장을 멈추는 약물이 들어가지 초코 옆구리에서 뛰고 있던 맥박이 사그라드는 걸 내 눈으로 보았다. 그러자마자 참고 있던 울음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또 한바탕 울었다.


그 이후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차분히 진행 되지를 않았다.

심장까지 완전히 멈춘 초코를 처음에는 그대로 데려가려 했는데, 가는 동안 쉬랑 응가랑 몸속에 있던 분비물들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말에 병원에서 어느 정도 처리를 하고 데려가는 게 초코를 깨끗하게 보내는 건가 싶어 다시 한번 초코는 그 싫은 처치실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렇게 목에 힘이 빠진 초코를 안으려니 이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을 듯해서 처음에 상자 말고 그냥 안고 가겠다고 했던 걸 다시 상자에 눕혀서 데리고 가겠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악의 결정이었다.

상자에 누워 뚜껑까지 덮은 종이상자는 들기가 쉽지가 않았고, 초코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나랑 딸, 동생 셋이서 들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머리 쪽 손을 놓쳐 떨구기까지 했다.

그때까지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동생차에 초코가 있는 상자를 먼저 태우고, 무너지듯 차 뒷좌석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오는 차 안에서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초코를 만졌다. 아직 따뜻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오는데, 딸이 초코를 땅에 묻기 싫다고 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래서 관도 주문했고, 수의도 세탁해 두었는데. 햇빛 잘 드는 땅을 골라 두었는데.. 다른 사람 손 거치기 싫고 내가 직접 땅에 묻어주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딸이 강경하다. 초코를 땅에 묻으면 더 슬플 것 같다고 한다.

며칠 전 동생이 막내고양이 장례식을 한 곳에 문의를 해서 화장만 할 수 있냐고 문의는 해 둔 터였다.


장례고 뭐고, 그런 요식행위 따위, 그리고 나 아닌 타인이 얼마나 진심으로 장례를 치러줄까 싶어 나는 진작에 매장으로 마음을 먹었으나, 딸이 저렇게까지 얘기를 하는데, 내 생각만 밀고 나갈 수는 없다.

오늘은 초코랑 마지막 밤 잘 보내고 내일 아침에 잘 생각해 보자..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지만 졸리지도 않았고, 하루 종일 먹은 게 없는데도 배도 안 고프고, 양치도 하기 싫어 맥주를 텄는데 다 못 마셨다. 그리고 양치를 하면서 진짜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초코를 앞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부터 너무 어영부영 초코를 외롭게 보낸 것 같아 그게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엉엉 울었다.


왜 안아서 내 품에서 보낼 생각을 못했지. 내가 안고 있고, 선생님이 그 자세로 약물을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딸에게 엉엉 울면서 그런 말을 했더니 딸이 나를 위로해 줬다.

아니야 엄마, 초코는 그전에 충분히 안아 줬었고, 제일 편한 자세로 잠들 듯이 간 거니까, 그렇게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려 땅을 깊이 파고 잘 묻어주려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어렵게 되기도 했다.

더구나 준비해 두었던 관은 우리 초코에게 너무나 작았다.며칠을 두고 보면서도 그게 작으리라 생각을 못했다. 아 진짜.. 나란 인간..

그래, 딸 말처럼 화장을 해줘야 나도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동생이 알아봐 준 화장터는 강릉에 있었는데, 눈이 많이 와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했더니, 어제 초코를 눕혀 데리고 온 종이상자 위에 원주에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는 걸 아빠가 말씀해 주셔서 알았다.


원주면, 강릉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 전화해서 화장만 해줄 수 있는지 물으니 가능하다 했다. 상담해 준 분이 섬세하고 따뜻한 분인 듯싶어 다른 곳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서의 마음 아픈 일들은 적고 싶지 않다. 내 기억에서 떼어내 버리고 싶다.

그런 자잘한 상처들이 내 마음에 남아 초코 가는 길에 또 다른 슬픔으로 남는 게 싫어 우리 집 마당에 내 손으로 묻어주려 했건만..


하지만, 이렇게 되려고 했었나 보다. 그렇게 자꾸만 억지로라도 생각하기로 했다.

초코가 우리 곁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내 맘과는 전혀 다르게 굴러갔다. 그리고 그것 또한 이렇게 되려고 했던 것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순간 순간, 그 당시에는 후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플 줄, 어리버리했던 나에 대한 분노로 이렇게까지 괴로울 줄 몰랐다.

요식행위라 치부했던 사후의 모든 일 또한 이렇게까지 남는 사람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잘 보내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임을 절절히 깨달았다.


초코가 화장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초코 가는 길을 배웅하고 문득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는데, 3시 33분이었다. 3월 3일 3시 33분..

동생은 그것이 초코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 살면서 초코에게 몇 백번이고 말해줄 것이다. 초코야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초코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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