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월 12일. 작년 12월 가물가물한 기억과 문자, 카톡, 다이어리를 들춰가며 이 글을 쓴다.
7월부터 나는 겨울을 기다렸다.멍 때리고 앉아 하루 종일 내 맘대로 살고 싶었다. 3월부터 줄기차게 밀어닥치는 일들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런 시간이 정말 간절했다. 바깥일이 다 끝나는 겨울이 어서 오길..
12월 4일 새벽부터가 내 기억에 남아있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뭐지.. 발신자가 동생이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3일 밤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단다. 그날 밤 나는 9시 조금 넘어서부터 잤던 것 같다. 비몽사몽 간에 통화를 하고 끊고 나서 보니 그 때가 새벽 1시 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엄청 크게 울려서 깜짝 놀라서 깼다. 나도 이렇게 놀랄 정도인데, 초코가 걱정이 되어 얼른 불을 켜니 초코가 안절부절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리가 대체 어디서 나는 건지 몰라 더 무서웠으나 나는 다시 잠을 잤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도 두세 번 정도 더 그 소리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 초코를 찾으니 초코가 없었다. 우리 집이 어디 숨을 만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어디 있지 초코가.
혹시 2층? 역시 초코는 2층에 있었다. 그런데 침대 옆으로 쉬랑 응가가..
어, 뭐야 초코? 왜 이랬어? 여기는 어떻게 올라왔어?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다가 조금 지나서 상황 파악이 되었다. 어젯밤 그 쿵 소리에 놀란 초코가 숨을 곳을 찾다가 평소에는 혼자서 절대 안 올라가던 2층으로 숨는다고 올라간 것이다. 겁을 먹으면 초코는 갑자기 쉬랑 응가를 하곤 한다.
그럼 초코 밤새 이 추운 2층에 있었어? 내려오지도 못하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은 경사가 급해서 초코가 올라갈 수는 있어도 혼자서 내려오기는 어렵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 소리는 뭘까..
그리고 그날도 늦은 저녁 시간부터 그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집 전체가 울려 무너지기라도 할 것만 같은 소리였다.
초코는 진짜 발작 수준으로 덜덜 떨며 안절부절못하고 있고, 대체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보려고 초코랑 데크에 나가 한참 있었다.
엄청 추운 날씨여서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야 될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오니 초코의 떨림은 진정이 되었으나,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며 데크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리가 나지 않아 초코랑 집에 들어가려 했더니 초코가 안 잡히려고 쏙쏙 피하며 집에 안 들어가려 했다. 겨우 안아서 들어가는데, 온몸을 오들오들 너무 심하게 떨고 있었다. 초코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걸 12년 동안 처음 봐서 나도 놀랐다. 천둥소리에도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초코야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달래주어도 초코는 혼이 나간 것 마냥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 새벽에 한 두 차례 더 그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초코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불을 켜고 다시 데크로 나가길 서너 번. 밖으로 나가면 진정이 되는 듯했다.
역시나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고 들어와 다시 누웠는데, 어제부터 밤잠을 설쳐 피곤했던 나는 곧바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쿵.. 또다시 무언가 빠개지는 듯 울리는 소리에 놀라 깨서 초코부터 찾으려고 불을 켜니, 초코가 2층 계단 중간에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순간 화가 났다. 왜? 대체 왜 그 당시에 화가 났을까.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한 짓이다.
초코 또 거기 올라가서 뭘 어쩔라고. 괜찮다고 했잖아. 얼른 내려와!! 소리를 치고 뒤돌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초코도 안 내려주고 대체 방으로 왜 들어갔을까 나는.
그런데 거실에서 들리는 우당탕 소리.
나가보니 초코가 그 짧은 틈에 저 혼자서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구른 것이었다. 깜짝 놀라 얼른 안아 진정을 시킨다고 한참을 꼭 안고 있다가 내려주었더니 초코 걷는 곳마다 빨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는 것이었다.
그 공포라니.. 초코 머리와 발을 여기저기 살펴보니 왼쪽발 새끼발톱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떨어지면서 발톱이 걸렸나 보다. 살까지 찢어졌을까.. 발톱만 다친 걸까..
초코를 안고 한참을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해 초코야, 아까 바로 내려줬으면 이런 일 없었을 것을. 엄마가 정말 돌았나 보다..
이후 새벽 내내 잠 못 자며 내일 바로 병원 가봐야지.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 내려와서는 병원에 한 번도 안 갔었는데.
그 새벽 줄곧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진짜 미쳤나.. 나도 스트레스에 미쳐가나.. 나의 밑바닥을 본 느낌에 한없이 괴로웠다.
아침 일찍 예전 다니던 병원으로 가려고 나섰다가 중간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영월에 자기 다니는 동물병원이 있다고 했다. 그래, 어쩌면 몇 번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가까운 곳으로 가자.
다행히 다른 곳은 다친 데가 없고, 발톱만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덜렁거리는 발톱을 뽑고 소독을 하고 주사를 한 대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발톱은 다시 자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하시는데, 어젯밤의 내막은 나와 초코만 아는 일..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초코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붕대를 칭칭 감은 발로도 초코는 여전히 100미터 달리기 선수였다. 집에 오자마자 우리 집 할머니집 여기저기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아팠을 텐데,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뛰어노는 초코.
그 이후로 12월 내내 그 소리는 밤마다 우리 초코를 괴롭혔다. 소리가 나는 시간 간격은 매번 달랐지만,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으로 추측을 해보니 대략 감이 잡히는 게 있었다.
낮에는 그 소리가 안 나고 밤이 되면 난다. 날씨가 약간 풀어지는 날에는 밤에도 안 날 때가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바깥 데크에 깔아놓은 원목이 얼어붙어 팽창하고 수축하면서 뒤틀리는 소리였다. 아침에 나가서 데크를 밟으면 걷기만 해도 뻑뻑 빠개지는 소리가 났다.
초코랑 산책길을 걷다가 멀리서 그 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다. 거리가 꽤 있었는데도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그런 소리를 집에서 밤마다 들으니 초코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예전에는 저 소리를 못 들었었는데, 이상하다.. 그때는 이런 추운 겨울에는 안 내려왔었나.
원목 데크라고 다 저런 소리가 날까. 시공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나.
다 부질없는 생각들이었지만, 당장 그 추운 겨울에 데크를 뜯어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시에는 그럴 돈도 없었다.
참 이놈의 집이 초코 잡네. 악취로도 모자라서 생각지도 못했던 굉음까지. 고민하고 화만 냈지, 어떻게 하든지 해결을 했어야 했다.집을 못 고쳤으면 밤마다 엄마집으로 잠자리 원정이라도 갔어야지.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그저 초코가 그 소리에 얼른 익숙해지기만을 바랬었던 것 같다. 초코도 차츰 처음보다는 무서워하는 게 덜해졌지만, 아무리 괜찮다 괜찮다 안아주고 옆에 있어줘도 그 소리는 끝까지 무서워했다. 그 소리는 12월 초에 시작되어 2월까지 겨울 내내 초코를 괴롭혔다.
그때부터 시작된 걸까. 우리 초코 몸에 들러붙은 암세포들의 공격이.
아침해가 뜨면 언제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초코라, 나는 그저 밤이 오는 게 두려웠을 뿐 초코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밤사이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초코는 하루하루 시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나대로 이제야 드디어 겨울이다.. 퍼질 대로 펴져 있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게 여전히 어수선했다.
집도 잔금을 받으려면 아직 한참 남아 있었고, 돈 문제도 해결이 안 되었고, 이혼 절차도 마무리가 안되었고, 딸방도 다시 알아봐야 하고..
모든 게 1월이 되어야 다 마무리가 될 텐데.. 악취의 원인도 아직 못 찾아내고, 찾아낸들 뜯어고칠 돈이 당장 나에게는 없고..
이제 와서 자꾸만 그 시간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후회와 반성의 눈물을 흘려봐도 초코는 이제 없는데..
평생 초코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그 미안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초코는 어쩌면 이런 나를 원망도 안 했을 것 같지만. 우리 해맑은 초코. 나만 아는 바보 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