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사실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맞닥뜨렸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에 대한 글이다.
나의 글은 라이킷 수가 10개 내외다. 적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글에 비해 스스로의 기대치가 높아서일 수 있음을 우선 인정한다. 라이킷 수가 적은 이유야 딱히 주변인들께 홍보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글이 길어서 그렇다고 분석했다.
브런치에서 라이킷 수가 많은 글을 보다 보면 패션 업계의 SPA가 생각난다. Specialty store retailers of Private-label Apparel로 직접 상품 기획, 제조, 대량생산을 하고 유통단계 축소로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상품을 회전하는 방식을 말한다. 자라(ZARA)나 유니클로, 탑텐 등이 대표한다. 옷이 트렌디하고 저렴하지만 단점은 품질이 좋지 않아 오랜 기간 입을 수 없다.
모바일로도 볼 수 있는 브런치의 글들은 어딘가로 이동 중이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에 틈을 내어 읽는 경우가 있다. '긴 글 주의'를 견뎌내 가며 집중해서 읽기 쉽지 않다. 이목을 끌만한 주제를 가지고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쓴 글들이 대체로 라이킷이 많아 보였다.
나는 글을 쓸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 글은 작성하는데 무려 2주가 걸렸다(쓰는 데 오래 걸렸기 때문에 좋은 글일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선택의 고민'이라는 주제에 대해 통계 분석적 사고를 한다.
SPA의 패스트 패션처럼 가볍고 트렌디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못했다.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내가 봐도 브런치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게 황당하지만, 고민을 꽤나 구체적으로 서술했고 추상적 사고를 정리하는 사고를 제시한다.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과 함께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분석에서, 우리는 보통 하루에 150가지 선택을 내린다고 한다
나는 체계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 분석적 계층화 과정) 기법을 사용한다. '어떤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나에게 합리적인가?'라고 고민하는 예를 간단히 아래 그림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정하고, 자동차별로 점수를 준 후 합계를 내면 선택하기 쉽다. 이 방법은 Hierarchy 즉, 계층으로 순위를 정해 준다. 캐스퍼를 선택했는데 출고가 너무 오래 걸린다면 그다음의 ES300h를 선택할 수 있다.
'체계적이다'라는 것이 항상 맞지 않을 수 있다. 과거 나는 출퇴근용 세컨드 자동차를 구입하는데 이 방법을 썼다. 용도에 맞게 기준을 정하고 그렇게 마티즈를 중고로 구입했다.
어느 날 비행을 마치고 회사 주차장에서 차를 탈 때였다.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우연히 그날 함께 비행했던 승무원 중 한 명과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내가 10년도 더 된 마티즈의 문을 여는 동안, 그녀는 내 차와 멀지 않은 곳에서 아우디 A6를 타고 있었다. 얼마 후, 아는 사람에게 내가 산 중고 가격보다 더 낮은 돈을 받고 마티즈를 넘기고 520d를 샀다. '가격=품위'로 재정의 해주고 기준을 조정한 것이다. 마티즈 외에 원래 갖고 있는 차는 K7이었다.
AHP의 장점이 '체계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것인 반면, 단점은 '내가 아는 만큼만 체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떤 결정을 할 때 '혹시나 내가 모를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변에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됐다.
신용카드회사에 다니다가 항공사의 부기장으로 이직하는 일로 고민한 적이 있다. 어느 해 2월, 남부터미널 사거리에 있던 카페베네에 여자 친구와 마주 앉아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여자 친구와는 그 해 10월에 결혼했으니 나의 이직 문제는 말 그대로 그녀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여자 친구는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 지난 10년간의 경력 등을 이유로 항공사로의 이직보다는 현재 직장에 계속 다니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었다. 신용카드사는 이직할 항공사의 부기장 보다 급여가 높았다.
우리는 카페베네의 빙수를 특히 좋아했는데 겨울 끝무렵에도 먹는 즐거움은 여전했다. 나는 빙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주문한 내역이 있는 영수증을 뒤집었다. 그 위에 위의 예시처럼 AHP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급여, 성장 가능성, 사회적 이미지, 정년 등을 항목으로 두고 여자 친구와 함께 상의하며 각각의 점수를 내고 합계를 구했다. 항공사 이직이 96점, 신용카드사 유지가 95점이었다. 근소한 차이로 이직을 함께 결정했다. 주문한 빙수와 커피가 나오기 전에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조종사 되기'라는 목표를 저 멀리 두고 몇 년을 노력해왔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는 항공사로의 이직에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정이 쉬웠을 것이다.
이제, 인생에 몇 번 없을 정말 중요한 결정을 앞두게 되고 보니, 선택의 중요도가 상승할수록 선택을 위한 방법에 복잡성이 더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국 항공사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인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결정은 AHP를 그려 보아도 결론 내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의 '미래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특수성' 때문에 마치 도박을 하듯 홀수와 짝수 중에 선택하는 것과 같은 감정에까지 이르게 한다.
나의 목표는 '가능하면 중국에서 오래 버티기'였다.
중국에 오기 전, 이미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선배 조종사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봤다.
한꺼번에 많은 분들이 중국 항공사에 진출하던 때, 몇 분은 부기장으로 강등되는 일이 발생했다. 강등의 사유가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모로 받아들였다. 그 소식을 듣는 나 조차도 당황스러웠으니 본인들은 더 그러하셨으리라. 결국, 어렵게 중국 항공사에 진출하셨지만 한국으로 복귀하셨던 기장님들이 계셨다.
수모라고 받아들인 감정은 같았지만, 몇몇 분들은 부기장으로 남는 선택을 하셨다. 시간이 지나 정식 기장으로 임명되었고 원하시던 높은 급여를 받고 일하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중국 항공사로 이직하면서, 동료 기장님들과 "부기장으로 강등이 되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버티자"라고 결의를 다짐했다.
나보다 앞서 중국에 진출한 기장님들의 사례들은 중국에서 조종사로 사는 어려움에 대해 극복하려는 태도를 갖도록 시스템화해주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거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회피 과제: 시물레이션 훈련, 비행 훈련, 신체검사 등에서의 불합격
회피 노력: 시물레이션 공부는 1주일 전부터 시작한다. 한 번 실수한 것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정리한다. 교관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대개는 자세를 낮춘다. 신체검사 2, 3주 전부터 식사량을 20% 정도 줄이고 체중을 감소시키며, 음주 및 육류를 삼간다.
극복 과제: 대부분이 감정과 연계되어 있다. 중국 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가장 크다. 교관과 훈련을 하러 갔는데 나를 뒤에 앉히고 부기장을 비행시키는 등 회사나 교관의 부당한 처우 등도 있다. 참고로 우리 회사는 외국인이 하는 거의 모든 비행을 3인 1조(기장 1명, 부기장 2명)로 편성한다.
극복 노력: 지속적으로 나의 감정에 대해 자각하려고 노력한다(메타인지, metacognition). 우울감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한다. 중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한다. 한편,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 정신적 피로를 가중할 수 있는 육체의 피로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종합적으로, 내가 받는 높은 급여에 외로움이나 회사의 불합리함 등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고 버텼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 이것은 큰 스트레스다.
코로나 이후로 한 달 또는 길면 석 달 만에 비행하기도 한다. 공백기간이 길면, 더 긴장되고 작은 실수라도 나오기 쉬워진다. 비행 중 실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회사는 외국인 기장 평가 기준을 더 강화하는 한편 교관들은 나의 비행에 대해 요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기성 기장에게 비행과 관련해 이견을 달지 않았던 예전과 다른 양상이다.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교관과 훈련을 할 때마다 평가지를 작성하는데 외국인 담당 여직원이 취합한다. 그녀에게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것이 없다. 교관이 적은 내용들에 대해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떠벌 떠벌'한다. 비행을 모르는 직원이 외국인 기장 개개인을 평가하는 발언을 들을 때면 가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녀는 본인이 좋아하는 특정 외국인 기장의 훈련 스케줄을 가장 빠르게 처리했다. 우리 회사 외국인 기장중 나이가 가장 어린 러시아인이다. 보통은 입사 순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을 역전시켰다. 그 기장의 비행시간이 월등히 많이 나오도록 뒤에서 계속 종용했다. 비행을 많이 할수록 돈을 더 받는 혜택을 준 것이다.
오래전 회식 자리에서 그녀는 술에 취했다. "그 기장을 처음 봤을 때 오줌을 지릴 뻔했다."라는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 취했다는 걸 알았다. 유부남인 그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는 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부모님도 그 사실을 알고 본인을 말렸는데, 스스로 통제가 안된다고도 했다.
그녀는 스케줄을 짜는 여직원과 친하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다. 외국인 기장들이 은근 자신에게 잘 보이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같다. "그럼 그 여직원에게 잘 보이면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녀는 그것을 이용만 할 뿐 본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한 명에게만 쏟는다.
여직원 이야기가 길어진 이유는 그만큼 회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이 이 여직원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병원에 신체검사하러 가는 날, 여직원과 함께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병원 의사들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하다. 여직원은 연락도 없이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병원 의사들은 대화가 안 된다고 짜증을 냈다. 그날은 그녀가 좋아하는 기장이 이사하는 날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회사에는 외국인 기장을 위해 병원에 간다고 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기장을 보러 간 것이다. 이런 일이 많았다.
그녀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다. 본인의 감정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피해를 주는 것이 문제다.
코로나 이후로 기본급이 USD2,200로 줄었다. 비행을 전혀 하지 못해 기본급만 받는 달이 많았다.
급여의 삭감은 중국에서의 생활을 제한시켰다. 회사 출퇴근을 버스와 지하철로 하게 만들었다. 택시로 20분이던 시간이 1시간 10분으로 늘었다.
외식하는 돈이 아까워졌다.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매 끼니를 무얼 해 먹을까 하는 고민이 스트레스다. 내가 만드는 식단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최근 피검사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격히 올라갔다. 매일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했고, 체중을 줄였는데도 말이다.
비행 스케줄이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왔건만 비행이 없으니 돈을 벌지 못한다. 중국에 있어야 할 의미가 퇴색되는 가장 큰 이유다. 비행이 나왔는데 하루나 이틀 전 취소가 되는 것을 겪을 때에도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던 던 내가 흔들린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선물하는 일인 것 같아요.
최근 동료 기장님들과 식사하면서 내가 했던 말이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인생의 선물로 여겨진다.
동료 기장님들과 고기 뷔페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어떤 기장님이 한국의 모 항공사에서 경력 기장을 모집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는 보따리를 내놓았다. 2년 반만의 한국에서의 채용 소식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선발될 인원들이 내정돼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아쉬웠다.
2주일 후, 같은 분들과 같은 식당에서 다시 모였다. 어느 때인가부터 우리는 아무리 먹어도 정해진 금액만 내면 되는 고기뷔페집을 자주 가게 됐다. 한번 가면 고기도 많이 먹는다.
이번엔 채용을 예정하고 있는 한국의 항공사가 내정이 아닌 공채로 선발할 것 같다고 정보가 업데이트됐다. 5월 중순 즈음에 공지가 날 것이며, 면접과 시물레이션 체크도 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말까지 덧붙여진 정보였다.
"우리처럼 최근까지 비행하신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시물레이션 체크는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껌이죠."
정보를 주신 기장님은 이미 많은 것을 고려하셨다는 듯 본인의 생각도 주저 없이 내놓으셨다. 듣고 있던 우리는 "진짜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라며 아직 현실화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이때부터 나는 과연 한국의 항공사로 복귀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고민하면 할수록 점점 어려운 선택이 되고 있다.
나의 심리상태, 중국과 한국의 현재 상황 등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열해 보고 그룹화했지만 어떤 것도 선택에 직접적인 '명분'을 주지 못했다. 정성적 감정을 정량화하는 AHP기법을 사용해 보고자 했지만 현재의 감정만 계량화하는 이 기법으로 풀어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계열(時系列)적인 사고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시계열 분석 기법 중 하나인 회귀분석의 예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수학 공식을 쓰지 않고 논리만 가져오는 것이므로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이과의 방식을 빙자한 문과적 접근일 뿐이다. 이 독특한 방식을 쓰려는 이유는 잠시 뒤로 미루고 모델 정의를 먼저 보자.
회귀분석 모델과 결과
종속변수: 중국에서 오래 버티려는 의지(이하 '의지')
독립변수: 업무환경, 중국 생활, 삶의 지향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하 '가족')
데이터: 2017년 중국에 이직한 이후로 매월 독립변수에 대한 만족도를 꾸준하게 기록해 왔고 그에 따른 결과가 다음의 수식을 완성시켰다고 '가정'한다. 이 시도는 정성적인 고민을 정량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감정 데이터는 이미 만들 수 없으므로 '고민의 체계화' 방법을 쓰는 것에 한정한다.
회귀식: 의지=1.8(상수항) + 0.684X업무환경 + 0.435X중국생활 + 0.391X삶의 지향점 - 0.381X가족(회귀식 결과도 상상이므로 수식의 이해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추가 가정: 모든 독립변수가 유의하고 종속변수의 설명력(결정계수)은 90% 임(회귀분석에서 독립변수의 유의 수준이 낮아 채택되지 않거나 설명력이 90%를 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90%를 넘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재밌는 상상이다).
이쯤에서 회귀분석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보겠다. 관찰된 연속형 변수들에 대해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들 간의 인과관계에 따른 선형적 수학모델 관계식을 구하고, 독립변수에 따라 종속변수를 예측하려는 것이다. 모델이 종속변수를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는지를 판별하기 위한 적합도를 측정한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 항공사에 남는 것과 한국 항공사로의 복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문제는 꽤나 어려웠다. 나는 위의 모델 정의로 '선택'이라는 행동을 '의지가 꺾이면 돌아가기로 함'으로 변형했다. 즉,
A, B 둘 중 한 가지 선택 → A-1의 가치가 낮아지면 자동으로 B를 선택
하게 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업무환경, 중국 생활 등이 변화됐을 때, '중국에서 오래 버티려는 기존의 의지'가 상승 또는 하락하는 것을 예측하고, 하락이 예상된다면 중국 생활을 포기한다는 결론까지 얻을 수 있는 모델을 상상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고해 보는 이유는,
선택이 주는 복잡성 때문이다.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통계에서 사용하는 모델화 방식을 통하여 가급적 모형으로 만들어 단순화해 보고자 했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그룹화(독립변수화) 하고, 회귀식에서 종속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보려고 하듯 부정의 요소뿐만 아니라 긍정의 요소를 찾으려 노력했다.
고민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과거나 미래의 '나(Myself)'라는 시계열적 관점과 타인의 관점이라는 입체적 시각화를 고려해 봤다.
나는 독립변수를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 그것을 대하는 감정의 문제]으로 정의했다. 자칫 어떤 한 사건에 감정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기 위함이다.
다음은 각 독립변수의 개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회귀분석은 종속변수인 '(중국에 남아있으려는)의지'의 값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지 검토해보는 관점이다. 현재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애써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2022년 3월 3일 비행한 것을 소재로 '중국 조종사의 하루 P-log'를 썼다. 다음 스케줄은 4월 28일에야 가능했다. 중간에 비행 스케줄이 나오기도 했지만 계속 취소되었다. 통제 불가능의 사건이지만 '중국 항공사에서의 근무'에 부정적 감정이 쌓이도록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 탓에 비행을 간헐적으로 하다 보니 중국 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연속해서 30일간 비행하지 못하면 시물레이션에서 비행 적응 훈련을 1시간 받아야 하고, 실제 비행에서 교관과 체크 비행을 한 후에야 다시 보통의 기장으로서 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년간 대부분의 비행이 교관과의 비행이었다. 시물레이션과 실제에서 교관과 함께하는 비행은 '평가받기'를 수반한다. 업무가 피곤해진다는 의미이다.
회사 직원들은 대체로 다른 부서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인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여기기도 했는데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시물레이션 훈련 및 체크를 마치고 교관에게 사인받은 서류를 내러 사무실에 갔다. 담당자가 휴가 가고 없어 그의 책상 위에 두고 나왔다. 수요일의 일이었다. 이 담당자는 훈련팀이었고, 서류 확인 후 비행팀인 우리 부서에 문서를 보내야 한다. 외국인 담당 여직원이 문서를 접수하고 다시 스케줄팀에 문서를 보내야 비로소 비행을 다시 할 수 있는 구조다.
금요일에 다시 사무실을 찾았는데 여전히 그는 휴가 중이었다. 월요일에 유선으로 담당자가 출근한 것을 확인했고, 비행팀에 문서를 보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비행팀 여직원에게 다시 확인하니 그제야 문서를 보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주(週)에 비행을 못했다. 나를 평가한 교관, 훈련팀, 비행팀, 스케줄팀 어디에서도 나의 상황을 특별히 챙겨주지 않았다. 이것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타 항공사의 한 러시아 기장은 시물레이션 체크에서 떨어져 부기장으로 강등됐다. 부기장으로 200시간을 타야 기장으로 승급할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데, 그는 2년간 190시간을 탔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또 다른 항공사의 한 기장님은 그날 세 번째 훈련만 잘 마치면 정식 기장이 될 상황이었다. 중국인 교관이 갑자기 최근에 랜딩을 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본인이 랜딩을 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스케줄이 잘 안 잡히거나 취소되더니 1년을 넘게 훈련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한 번의 랜딩을 못한 이유로 1년 넘게 부기장으로 근무해오고 있다고 했다.
개인마다 여러 상황이 있었겠지만 관련 직원들 중 아무도 적극적으로 챙겨주지 않았으리라는 가정도 결과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부기장과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근무(비행) 만족도가 높아질 것 같다.
시물레이션 훈련은 두 개 중 하나의 엔진이 갑자기 꺼졌을 때 대처하는 식의 비정상 상황에 대해 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서의 훈련은 중국에서의 훈련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 한국은 두 가지 이상의 비정상 상황을 한꺼번에 주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3~4가지 비정상 상황을 한꺼번에 주고 체크한다.
비행 중에는 조종사가 항공기를 조작한 상황, 외부 환경, 비행 성능 등의 자료가 저장된다. 한국은 FOQA(Flight Operational Quality Assurance, 비행자료 분석 시스템), 중국은 QAR(Quick Access Recorder)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 결과로 조종사들을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 한국보다 까다롭다. 조종사 실수에 대한 허용의 폭이 좁다 보니 매 비행이 더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토면적은 한국의 96배에 달한다. 한국에서 가장 장거리 노선인 김포에서 제주까지의 비행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지만 중국 내 국내선은 7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코로나는 특히 국제선 비행이 많이 줄도록 만들었다. 각 국가 간 방역정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내선 운항만으로도 비행 노선이 많다. 향후 비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 미국이 이를 증명해준다. 현재 미국은 국내선 운영만으로도 조종사가 매우 부족하다.
조종사가 부족해지면 회사의 급여가 다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일이 많고 바빠지면 조종사에 대한 비행 평가도 기준이 낮아진다. 일단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회사는 '중국 내 다른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된 외국인 기장'을 뽑기 위해 면접을 봤다고 한다. 다른 회사에서 기장을 데리고 오려면 그 회사에 우리 돈으로 7억 원을 줘야 하는데 무료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회사의 리더는 올해 안에 최소 3대, 최대 10대의 비행기를 새로 들여올 계획이라는 말도 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올해만 해도 조종사가 부족해진다.
'중국과 한국 중 어느 곳에서의 생활이 더 낫겠는가!'라는 저울질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저 중국에서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중국에서의 루틴을 살펴보자.
오전 적당한 시간에 깨면 일어난다. 위층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잠을 깨우기도 한다. 일부러 발 뒤꿈치를 찍어가며 뛰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이곳 아파트의 층간 소음 유발 지수는 한국에 비해 훨씬 크다.
대개는 8시를 전후해서 일어난다. 텀블러에 꽃잎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한가득 채운다. 컴퓨터를 켜고 뉴스, 이메일, 유튜브 등을 살핀다.
9시가 되면 오트밀에 미숫가루 조금과 물, 바나나를 수저로 채 썰어 넣어 아침으로 먹는다. 양이 적으므로 너무 일찍 먹으면 안 된다.
9시 40분에 집을 나와 10시부터 여는 피트니스 센터(Fitness center, 헬스장)로 향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은 시간이다. 며칠 전 동료 기장님들과 즐겁게 술 한잔 하고 잠이 안 와 새벽 4시에 잠든 적이 있다. 어김없이 다음 날 10시에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집에 오면 12시다.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메뉴는 순두부를 넣은 라면 반개, 코스트코에서 주문한 햄버거 패티를 넣은 식빵 샌드위치, 스파게티 등이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가져온 전투식량이 50여 개 있다. 점심 식사 대용으로 달걀부침을 넣어 비벼 먹었다. 양이 조금 적다 싶으면 옥수수를 한 개 쪄 먹는다.
점심 식사를 하며 드라마 몇 개를 이어 보거나 골프 경기를 본다. 점심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 3시경. 다시 인터넷을 하거나 드라마를 더 본다.
오후 5시가 되면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6시에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로 가장 많이 해먹은 음식이 카레다. 4인분을 한 번에 만들어 4일 동안 먹기 때문에 식단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다. 춘천 닭갈비가 인터넷에서 팔길래 6kg을 사서 20개 정도 덩어리로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두고 한동안 먹기도 했다. 한 덩이를 요리하면 이틀을 먹는다.
극기야 남이 해주는 밥이면 다 맛있어졌지만 돈이 아까워 주로 집에서 해 먹는다.
저녁 8시에는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다. 성장기 아이에게 아빠가 미칠 수 있는 정서를 멀리서라도 주려고 한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지난 2년간 일이 적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삶은 이 루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 동료 기장님과 스크린 골프를 치거나 함께 식사하는 일, 가족과 통화하는 것 외에 즐거울 일이 없어 보인다. 생각이 많아져 자다가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았다. 자는 시간을 여유 있게 두는 이유다.
3일에 한 번 핵산 검사(PCR test)를 받아야 한다. 공항까지 가면 무료지만 너무 멀어 집 근처에서 받았는데, 한 번에 68위안(1만 3천 원)을 내야 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8위안(1,500원)으로 내려가긴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버스 타고 15분 거리를 가야 하는데 주기적으로 검사받는 것이 참 번거롭다.
올 겨울에는 연속 32일 동안 아파트 단지 안에서 봉쇄되어 보기도 했다. 4월에도 확진자 두 명이 동네에 있는 호텔에 묵었었다는 이유로 당일에 통지하고 바로 봉쇄하기도 했다. 4월 봉쇄는 2주 후 해제되었다.
4월 중순에는 회사에서 지내며 시물레이션 훈련과 체크를 5일간 받았다. 매 6개월마다 해야 하는 훈련이다. 10여 일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2주 동안 뭔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루틴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TV를 보는 대신 공부를 했다. 훈련기간 회사 호텔에서 지냈는데 밥이 맛있었다. 남이 해주는 밥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맛없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중국 생활은 누린다기보다 버텨내야 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사가 된 이후로 나는 몸무게 83kg에 허리둘레 36인치의 올챙이 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몸무게와 허리둘레를 줄여보는 것이 평생의 목표가 됐을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했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운동과 식단 조절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몸무게 71kg, 허리둘레 31인치의 몸매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돈을 많이 못 버는 대신 일로부터의 휴식 기간이 주어졌다. 한국에서는 매달 80여 시간을 비행했다. 중국에 온 이후로는 매달 65시간 정도 비행을 했는데 8일간의 휴가기간을 빼면 비행하는 동안에는 스케줄이 힘들었다. 비행 때문에 받는 신체적 스트레스를 한동안 받지 않는 기간이 생긴 것이다.
2008년 1월, 다니고 있던 신용카드 회사에 무급 휴직을 내고 비행 기술을 배우러 미국에 갔다. 비행학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시인 휴스턴에 있었다.
파나마에서 온 에머슨은 비행학교에서 만났다. 큰 키에 얼굴에는 약간의 주근깨가 있었고 금발머리였으며 당시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동양인이면서 영어를 잘 못했던 나를 친구로 편하게 대해줬다. 나처럼 비행 유학을 미국으로 온 것인데 돈이 많지 않아 차가 없었다. 그는 비행학교에 갈 때마다 늘 누군가의 신세를 져야 했다. 비행 훈련을 다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내가 타고 다니던 차를 사서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포드사에서 만든 1989년 산 블랑코였다.
겨울에 갔던 휴스턴의 계절이 이제 막 여름으로 접어들 때였다. 학교 건물 앞에는 잎들이 우거진 나무가 있었는데 더위를 피해 앉아 있기 좋았다. 에머슨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의 차를 얻어 타기 위해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던 중 우연히 나와 단둘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장래 꿈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민간 항공기 조종사(Airline pilot)가 되는 것이 공통된 꿈이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항공사를 경영하는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업 고위 임원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동기부여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 매우 신선했다. 경영학과를 나와 금융 회사에 7년간 몸담고 있던 내게도 해당될 것 같은 영감을 줬다.
2011년 부기장이 되었다. 2013년 MBA 과정에 입학했다. 정식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과정 중에 Wanna be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항공경영 박사학위라고 적었다. 팀원 중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 항공사 사장님이 될 것 같다고 적어 주었다.
비행과 MBA의 병행은 너무 힘들었다. 2017년 7월, MBA 졸업 후 2년 반 만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고 항공경영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파나마에서 온 친구와의 우연한 대화가 내 삶의 지향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주고 있었다.
만약 한국의 항공사로 돌아간다면, 오래전부터 내가 바랐던 일을 계속 도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데에 의미를 두어 본다(한편, 그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우려되기도 한다. 한국의 항공사에서는 조종사에게 경영을 기대하지 않는다. 조종사는 비행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2016년 가을, 우연한 계기로 김포공항에 있는 롯데호텔 연회장에 방문했다. 어느 중국 항공사에서 외국인 기장을 모집하기 위해 설명회를 하는 자리였다. 한 달에 65시간만 비행하면 8일 연속으로 한국에 다녀올 수 있게 해 주고도 22,500불(USD)을 주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었다. 혹시나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9명이 함께한 전형에서 3명이 합격했는데 그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경영을 함께 하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는데 갑자기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다니던 박사과정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무언가를 할 때 집중을 많이 하는 편이라 비행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글을 써 볼 기회를 주고 있다. 특히 자가격리와 봉쇄 때 집중해서 글을 쓰곤 했다.
전문 강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위의 사진에서 '스마트', '말/언변'은 다른 사람이 평가한 나에 대한 'I am'이다. 꿈이 변호사인 때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논리적으로 말을 잘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 대학원 때 모든 팀 과제 발표는 내가 했다. 전문강사는 나이에 제한이 없으므로 여기에 있으면서 틈틈이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 사례로 만들어두면 나중에 한국에 복귀해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조금씩 시작했다.
회귀분석은 시계열 분석 중 한 방법이다. 시간을 독립변수로 하여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하려는 동태적인 분석 방법이다.
앞서 가정으로 두었던 나의 정성적 감정 요인을 계량화한 과정을 살펴보자. 삶의 만족도를 종속변수로 정한 단순 시계열 분석이다. 만족도는 10점 만점이고 ①실제 느끼는 만족과 ②스스로 만족감을 높게 평가하려 노력을 함께 고려한 복합 만족도이다. 나의 만족하고자 하는 노력 성향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평균일 것 같은 5점을 항상 넘긴다.
먼저 코로나 전인 2018년~2019년의 만족도를 꺾은선 그래프로 나타냈다. 각각 5월과 12월에 만족도가 올라가는 계절적 요인이 발생하는 것이 관찰된다. 유의성은 보류하자.
4월 25일은 아이의 생일이다. 5월에는 나의 생일, 아내의 생일, 어버이날, 아버지 기일이 있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행사가 몰려있다. 4월과 5월 사이에는 '가족' 때문에 행복감이 상승한다.
매년 연말에는 아내, 아이와 여행을 다녀왔다. 12월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다. 2018년에는 베트남 다낭의 쉐라톤 호텔에서 2019년 새해를 맞이했다.
다음 그래프를 보자.
2018년과 올해인 2022년도의 삶의 만족도를 비교해 보자. 올 1월에는 뜻하지 않은 봉쇄를 당해 만족도가 떨어졌다. 계속 비행이 없다가 2월 한 달간 비행을 20시간 정도 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4월과 5월이다. 코로나 이전, 매년 행복지수가 상승했던 같은 시기에 행복지수가 급격히 떨어진다.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월 25일 아이의 생일 축하 파티를 영상통화로 지켜봐야 했다. 생일 케이크 앞에서 가족들의 축하 노래가 끝나자 갑자기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아이의 모습이 천사 같아 행복감이 밀려왔다. 영상통화를 마치고, 이내 가족들은 한국에 있는데 나 홀로 중국에 있다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행복감이 곤두박질쳤다.
2022년 5월 이후는 추정치다. 올해는 한국에 휴가를 못 갈 것으로 예상된다. 12월 연말이 되었을 때, 홀로 중국에서 지내며 언젠가 가족과 다낭 여행 다녀왔던 것을 떠올리면 마음이 더 심란할 것 같다.
데이터가 너무 구체적이라 헷갈리면 안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상상으로 만든 자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여 외의 중국 항공사 근무의 장점은 매월 연속 10일간 휴가를 갖는다는 것이다. 향후,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만 없어진다면 매달 10일 동안 온전히 가족들과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짧게는 5분, 길게는 1시간 정도 매일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다. 통화는 대화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준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의견을 얘기해줄 수 있는 등 온전한 의사소통이 되도록 한다. 아이에게 감정 코칭해주려는 나의 육아방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아내는 가끔 아이가 반복하는 어떤 행동 때문에 주의를 주다가 혼내기도 한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아이의 반복되는 행동 때문에 부정의 감정이 쌓이지 않는다. 통화할 때 항상 긍정적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다.
아이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비밀이라고 하던 아이가 "숙제를 조금만 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라고 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다녔던 유치원이 지금은 방과 후 영어 학원이 되었다. 최근에는 영어 단어 외우기 숙제가 부쩍 많아진 것을 나와 아내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의 소원이 숙제와 관련됐다는 것이 의외였다. 항상 숙제를 열심히 했었고, 학원 선생님으로부터도 늘 칭찬을 받던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의 사진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빌었던 소원이 부적정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부정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도 처음에는 선뜻 소원이 무엇이란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즉시 그동안 해왔던 육아 방식 계기판에 주황색 경고등이 들어온 것으로 여겼다. 며칠 후, 아내는 영어학원 선생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아이의 단어 시험지에 비(답이 틀렸다는 빗금)가 많이 와도 이해해 주세요~ 숙제로 너무 푸시하지 않으려고요"라고 했단다. 나는 아이와 영상 통화하는 동안 엄마와 선생님 사이의 대화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는 소원대로 숙제를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 줬다. 아이는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행복했다.
나는 늘 아내에게 "아이가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우리가 마침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복잡할 때는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떤 이는 고민하는 본인의 심리를 이해해 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동전 던지기를 해 보세요. 앞 면이 나오면 A를, 뒷면이 나오면 B를 선택하기로 하고 던지는 거예요."
"네?"
순간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한다. 이토록 중요한 결정을 동전 던지기로 하라니...
"동전을 던졌는데 앞면이 나왔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만약 다시 한번 던져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뒷면의 선택에 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 방법은 사실, 굳이 실제로 동전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마음속으로 시물레이션 해보고, 나에게 선택해 보도록 해본다.
상상으로 만들었던 위의 회귀분석에서 4가지 독립변수 중 한 가지의 만족도라도 급격하게 낮아지는 때에,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했다.
아이는 지난겨울 내내 본인의 생일에 아빠가 집에 오는 것이 선물이라고 했다. '만약 비행이 계속 없다면'이라는 가정과 '아이의 생일에는 한국에서 함께 축하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이 마음 안에서 계속 커졌다. 아니면 5월에 돌아올 내 생일이나 아내의 생일에라도 한국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한국의 항공사에서 5월 중순에 경력 기장을 뽑을 것이라는 정보가 생긴 것이 기폭제가 됐다. 마침 시물레이션 훈련이 4월 20일에 끝났고 28일에는 연간 심사도 마쳤다. 마지막 비행 경력이 최근 한 달 이내가 되어 한국 항공사에 지원할 때, 서류 심사에 유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나에게 한국으로 가라는 신의 계시인가?(나는 종교가 없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린 것이다)'라고 의미를 두기에 이르렀다. 명백한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윽고 나는 운명을 두고 동전을 던지는 모의실험을 했다. 그러고는 시뮬레이터 훈련을 마치지 마자 5월 4일 또는 11일에 한국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다(비행은 주 1회였다). 28인치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꺼내어 거실에 계속 펼쳐 두었다. 한국에 가져갈 물건들이 생각날 때마다 집어넣었다. 냉장고의 음식들을 소비했지만 새롭게 채우지는 않았다. 혹시나 갑자기 봉쇄가 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비싸게 주고 산 샴푸가 무거워서 매일 가서 샤워하는 헬스장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갖고 다니면서 여유 있게 짜내어 많은 거품을 내면서 사용했다. 어차피 한국에 가져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을 쓰고 가려고 했다.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해두면 실제로 현실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한 행동들이다.
내가 '가족'이라는 독립변수에 단순 시계열 분석을 제시한 이유는 어느 시점에 결정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계열의 다른 위치에서 지금의 스트레스를 바라 보기:
론다 번은 15년 만에 '위대한 시크릿'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나는 알아차리고 있는가?라고 자문하라'라고 한다. 첫 번째 단계로 나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성을 느꼈다.
비록 현재가 힘들지라도 우리는 늘 미래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①과거 투영: 만약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중국 생활의 단조로운 루틴과 적은 비행시간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아직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 2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2년을 인생에서 지우고 나를 속여보면 어떨까?
②미래 투영: 현시점에서 한국으로 복귀하고 2년이 지난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보자. 현재 중국에서 겪고 있는 스트레스들을 망각의 샘에 넣어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행과 MBA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던 나는 망각의 샘 덕에 2년 반 만에 박사과정에 도전한 과거의 경험이 있다. 아마도 다시금 해외로의 진출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③타인의 관점에서 투영: 현재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글로 표현하기 위해 정리 중에,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써 놓고 보니 '과연 다른 사람이 봤을 때에도 심각한 스트레스로 여겨질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과거의 나'와 지금 중국을 떠난 후 '2년 뒤 나'와의 공통점은 현재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직은 큰 스트레스가 아니거나, 이제는 잊힌 스트레스다.
타인의 입장으로 바라볼 때 '이 정도만 가지고는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은 연속된 시계열 감정 중 어느 한 지점이며, 지금의 선택은 언젠가는 코로나를 극복하고 빛이 보일 것이라는 미래가치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 그래프를 다시 한번 보자면, 최소한 4~5월 또는 12월에 의사 결정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요소에 감정이 집중되기 때문에 다른 요소를 살피지 못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지금은 전략적으로 동전 던지기를 유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 남아있기 또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 전략적 유보(선택의 보류)가 추가되었다.
여전한 불확실성의 도박: 나는 사우나에서 오래 견디기를 잘하는 편이다. 중국에서의 힘든 생활도 잘 견뎌내는 편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는데, 가끔은 은근히 데워지는 비커 안에서 뜨거워지는 줄 모르고 그대로 익어 죽게 되는 개구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미래가치가 빨리 실현되지 않거나 생각보다 가치가 낮은 결과를 맞이할 상황이 된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안해진다. 이것이 평소 인내심이 많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회사는 성장할 것이고, 외국인 기장들에게 더 많은 비행 기회를 줄 의지가 있다고 해도 '코로나라는 불확실성의 변수'는 계속 남아 있다.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은 갑작스러운 비행 취소와 봉쇄를 주기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있다. 정책은 현 정부의 업적이므로 포기하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변경한다고 해도 치명률에 대한 의료지원이 어려운 상황을 무시 못한다. 초기에 비해 치명률이 매우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위드 코로나를 받아들일 만큼 중국은 인구 대비 병실의 수가 현저히 적다고 알려져 있다.
비커 안에서 익어가지 않기 위해 "지금 겪고 있는 이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전략적으로 선택을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사후적이긴 하지만 회사는 급여를 올릴 계획이라는 소식이 최근 들려왔다. 기본급이 현재의 USD2,200에서 00시간 비행을 보장한 것으로 올리는 안을 완성했고 리더의 결제만 남았다고 한다. 00시간 보장이라는 것은 비행을 했든 안 했든 00시간은 비행한 것으로 하고 그에 맞는 급여를 준다는 의미다. 00시간을 초과하여 비행하면 시간당 수당으로 급여가 추가된다.
이 한 가지 변화만으로도 많은 스트레스가 해결된다. 스케줄이 나왔는데 전 날 취소됐다고 해서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어진다. 아직까지 한 달에 00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할 정도로 회사의 비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직원이 특정 기장만 챙겨서 비행을 많이 시킨다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여직원의 영향력이 낮아진다). 비행을 하지 않고 쉬면서 보장된 시간을 받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경 예정인 안(案)의 급여는 채용을 예정하고 있는 한국 항공사의 기장이 받는 금액보다 더 높다.
중국에서는 "실제 적용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현실이 되기 전에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