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환장 도시락

김 위에 밥을 올렸을 때,

by Ella

한국은 급식의 천국입니다.

어린이집 때부터 따뜻한 밥이 나와서, 국에 반찬 두세 가지는 기본이죠.

아이들은 먹기만 하면 됩니다.

영양사가 짜준 식단에, 조리실에서 각 지은 따뜻한 밥.

우리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저는 요리를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영양소가 골고루 맞춰진 급식이 최고의 식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학교 급식이 얼마나 꼼꼼하게 관리되는지 잘 압니다.

재료부터 시작해서 식단, 조리, 급식소 위생까지 완벽 그 자체!

그리고 맛도 좋습니다.


도시락을 직접 싸야 하는 캐나다 방식은,

저에게 여전히 낯설고 부담스러워요.


캐나다 학교는 도시락이 필수입니다.

오전 간식과 점심 도시락, 하루에 두 번이나 챙겨야 해요.


왜 급식이 없냐고요?

여기는 이민자들의 나라,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같은 반에 아시아인, 백인, 흑인, 인도, 필리핀, 중국, 중동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고기를 못 먹거나, 문화적으로 할랄 고기만 먹는 아이도 있고, 베지테리언도 많습니다.

음식 알레르기도 다양합니다.

계란 알레르기, 우유 알레르기, 밀가루 알레르기.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것이 견과류 알레르기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예 견과류가 들어간 간식도 금지합니다.


간식 포장지에 “may contain nuts”라는 문구가 있으면, 바로 안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단체 급식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죠.


점심시간, 아이에게 주어진 밥 먹을 시간 단 15분

문제는 저희 아이에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점심시간이 단 15분입니다.

그 안에 밥을 다 먹고 치워야 합니다.


점심은 교실에서 먹습니다.

하지만 담임교사도 이 시간에는 브레이크 타임이라서,

5~6학년 봉사학생(lunch monitor)들이 동생들 학급으로 와서 도시락 뚜껑을 열어주고,

도시락 먹는 것을 도와주는 줍니다.


하지만 15분이 지나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운동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밥을 다 못 먹은 아이도 예외 없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매일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하고 옵니다.

(점심 메뉴로는 샌드위치가 제일 적당합니다.

여기 친구들은 차가운 도시락도 그냥 먹습니다.)


김이 스낵이라고?? 낯선 문화 충돌

처음 학교에 도시락을 보낼 때,

엄마의 무지로 난감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김이 스낵이랍니다. 그 짠 걸 간식으로 먹지요.

전 그것도 모르고 아이 점심 도시락에 김을 넣어 보냈습니다.


요래 싸먹으면 맛난 김밥 (제인이 손)


친구들은 김에 밥을 싸 먹는 모습을 보고
“왜 간식을 점심으로 먹어?” 하며 킥킥 웃었습니다.


심지어 한 친구는 담임 선생님에게까지 말했어요.
“선생님, 제인이 김을 점심으로 먹고 있어요!”

제인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덮을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

선생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괜찮아. 각자 집에서 가져온 걸 먹는 거야.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너희 밥이나 잘 먹으렴.”

제인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날은 결국 밥을 반쯤밖에 먹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조용히 도시락을 닫았다네요.


제 아이는 당황하고, 저는 걱정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것이,

여기서는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한 동안은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아마 아이는 긴장을 했을 거예요.

또 저는 저대로 다른 아이들의 눈치에

제 아이가 상처받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다른 거라고요.





제인아, 사실, 모두가 다 다른 거야.

같은 건 하나도 없어. 그냥 우리가 비슷했던 거뿐이야.

그리고 다른 게 틀린 건 아니야.

다른 아이들이 너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너는 너 자신을 믿으면 돼.

어차피 모두가 다 달라서 각자 살아가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김에 밥을 싸 먹기로 하였습니다.


15분 컷을 위한 점심 도시락














9개월이 흐른 지금..






















친구들이 김 위에 밥을 올려 싸 먹는 것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작전 성공입니다!!!


김과 밥만 싸온 도시락. 맛있게 싸먹는 '밴쿠버 블랙핑크'








이제는 도시락을 열 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꺼내놓을 수 있게 되기까지


아이는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함께 배워가고 있습니다.

keyword
이전 05화휴대폰 대신 굳은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