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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송송 Oct 16. 2024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 엄마라는 환상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지만 가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생활이 직업이 된다면?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삶을 sns로 자꾸 들여다봤다. 손끝으로 다채롭고 의미 있는 작업물들을 빚어내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의 그들을 동경했다.  능력만큼 일을 하는 점도 멋져 보였고, 출퇴근이 없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정년도 없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므로 육아병행도 가능할 것 같았다.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나는 메뉴판 디자인을 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음식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포스터와 배너 등으로 의뢰자의 매장을 꾸미고 홍보한다. 방 한편이지만 내 작업 공간다운 공간도 생겼다.  그림으로 먹고사는 수준이라고까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상상했던 모습에 가까워짐을 느낀다.






나는 간호학을 전공했다. 직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일잘러도 아니었고 유려한 학벌이나 배경을 가진 엘리트 출신은 더더욱 아니다. 싸이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젊음을 막 쓰던 “  20대를 보내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 것까지는 좋았다. 또래보다 젊은 엄마가 되어 소꿉놀이 하듯 첫째를 여기저기 자랑하며 데리고 다니던 때까지도 제법 괜찮았다. 유난히 철이 없었던 나의 현실파악은 둘째 출산 후에야 이루어졌다.



나는 돈이 없구나.
나는 직장이 없구나.
아이를 잘 키워야 할 텐데, 아는 것도 없구나.



어쩌다 남편과 다투기라도 한 날이면 이미 콩알만 해진 남은 자존감마저 증발해서는,

나는 남편의 수입에 100퍼센트 의존하고 있구나.

도 추가되었다.  유치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당장 남편이 없으면, 나는 스스로 어떻게 나와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기저귀를 갈고 틈틈이 청소를 하며 생활용품을 주문하고 밤에 아이들 재우는 미션까지 완료하고 나면, 신규간호사 시절 물품 하나 찾지 못해서 온 병동을 다 뒤지고 다닌 날 밤 발이 퉁퉁 부어 아프던 딱 그 느낌이 왔다.  탄력스타킹을 신겨 뉘인 발을 보며,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위인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뭔가를 열심히 해내잖은가.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불안함에 꽃도 배우고, 시간 쪼개서 공부도 해봤지만 내가 자리를 비운만큼 가족들이 불편해지는 상황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다. 그 무렵 내 인생의 운전대는 아이들이, 남편이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불행하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한 한성희 님이 쓴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문구가 있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의 주체성”이라고 했다.

1. 타인과 상황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  
원망과 분노
2. 타인과 상황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하겠다 계획이 있는 삶 =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

환경이 같을지라도 두 번째는 “선택한 삶”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무릎을 쳤다.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 게다가 지금 내 상황을 강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내 선택들이었다. 언젠가 나는 내 일을 가질 것이다.  현재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외주 주거나 회피하지 말자. 강하게 마음을 먹었다.  참 사람이 생각하기 나름인 게, 그때부터였다.  내가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월급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 있음이 고맙게 느껴지는 거다. 세상에 눈뜨고 독서를 시작하게 해 준 육아 현실에 감사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책을 보았고, 책이 나도 키워주었으니까.


이제 꼬물이들 육아 중인 주위 친구들이 “언제쯤이면 손이 덜 갈까?”하고 묻는다. 커도 손은 계속 간다고 하던데.. 언제까지.. 하며 말을 흐린다.  그 속뜻을 이해한다. 그래도 마지노선이 있잖아. 좀 사람답게.  잠도 좀 자고. 커피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그런 거.  난 딱 말한다. 2살 터울인 남매가 있는 우리 집 기준, 5년이다. 첫째 6살 둘째 4살. 난 그때즘 되니까 살만해졌어! 그 이후 갈수록 내 시간이 생겨!!!


정확히 그때쯤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낸 후 주어진 5-6시간. 아이들을 재운 뒤 2-3시간. 하루 총 7-8시간 드로잉을 했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통증을 느껴 한동안 안과에 다녀야 했다. 화실도 다니고, 온라인 클래스를 수강하고,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웠다.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간절했다.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내 가치를 내보이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새벽임에도 그림을 마음먹은 만큼 완성해내지 못하면 잠이 안 왔다. 수능 전날에도, 국가고시 전날에도 잠만 잘 잤던 내가. 나는 그래서 동기부여의 힘을 안다.

  그래서 그렇게 꿈꾸던 외주작업을 하게 되었지만 갈 길은 멀다. 현실은 현실이다. 일개 일을 시작한 초보 그림작가일 뿐. 내 노동 견적을 책정하는 일, 고객과의 소통, 애매함이 난무하는 곳에서 나 홀로 기준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불규칙한 수입을 관리하는 일도, 여전히 배울 것투성이고, 또 알수록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움을 돌파하는 만큼 또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까다롭거나 해본 적 없는 외주를 받게 되면, 그 당시에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공부했던 작업은 포트폴리오가 되어 남았다. 적어도 어려움과 힘든 시간 뒤에는 얻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 내 모습은 결국 아이를 키우면서
가슴 한편에 품었던 꿈에서 비롯되었다.


상상하는 아이에게는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창의적이다, 라며 칭찬하지만 상상하는 어른은 몽상가로 치부되거나, 현실 감각 없는 부족한 어른으로 표현될 때가 많다. 하지만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같은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본인만의 로망이 있다. 그것을 생생한 꿈으로 재현해내면, 실행으로 옮길 동력원이 되어 준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꿈을 꿀수록,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너무 멋진 일 아닌가. 그리는 삶을 시작했고, 책을 읽으며 쓰는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쓰고 있다.

 내 초기 그림을 보면 9살 아들의 그림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의 글 역시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모이고 모여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환상과 로망을 가슴에 꼭 품으면
좋은 일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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