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온 뒤 첫 독립된 작업 공간을 구했습니다. 마치 슈퍼마리오가 멀쩡한 벽돌을 주먹으로 쳐 하늘로 치솟은 콩줄기를 타고 저 구름 뒤에 숨은 파이프를 타고 들어가듯, 지하주차장 비탈 구석에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철문을 잡아당기자 배기 파이프 소음과 함께 숨겨진 콘크리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쾌적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손발이 떨려오던 미국에서의 월세를 생각하면 훌륭한 작업장이었습니다.
비어있는 큰 공간은 왠지 가슴 설렙니다. 콩돌이 아빠는 전부터 맘속으로 그리던 대형 입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콘크리트 천정에 구멍을 내어 패널을 매달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실컷 실을 연결해서 하늘하늘 매달린 구조의 부피를 키웠습니다. 전에는 정제된 모양의 반듯한 면들이 겹치도록 작업했는데, 이번 것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하단부의 마감은 손이 가는 대로 물결이 오르내리듯 자연스레 묶어내어 층을 이룬 파도처럼 일렁이게끔 했습니다.
콩돌이 엄마는 가운데에 수직선을 이룬 <그녀의 진짜 비밀> 연작은 그만 마무리하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도 좋지 않냐 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 애착이 꽤 컸고, 콘텍스트를 지금의 삶에 맞추어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존 작업들의 꼬리를 물고 가장 크게 만든, 방패 같은 외관에 하단부가 넘실대는, 그리고 열리기 직전의 문 같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술관 5 전시실은 처음 콩돌이 엄마를 만났을 때처럼 왠지 가느다랗지만 확실히 이어진 인연의 끈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전시가 끝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전시장은 그간 모아 온 제 작업이 원래 그 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적당한 여유공간을 두며 딱딱 들어맞았습니다. <어머니의 탄생>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유독 벽면에 1미터 정도 파여 들어간 'ㄷ' 자 공간에 매달려 자리하자 마치 거지왕자가 욕보이던 거리생활을 마치고 궁전으로 돌아와 번들거리는 의자에 앉듯 신수가 훤해졌습니다. 이따금 상가건물 소장님이 무심코 작업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도대체 이게 뭐냐'는 말과 함께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어두컴컴한 공간에 기괴하게 부유하는 뭔지 모를 것의 정체를 묻곤 했는데, 그 어둠과 매캐한 먼지를 뚫고 올라와 눈부신 미술관에 위치한 작업물의 모습에 괜히 눈물이 치솟았습니다.
<어머니의 탄생> 240 x 330 x 45 cm, 나일론 & 폴리에스터 섬유, 레이스, 비즈 아크릴물감과 18k 금박 2021
조심스레 천정에 후크를 고정해 패널을 연결하고, 이동 간에 다소 엉키고 감겨들어간 부분들이 더 이상 서로 치고받지 않게 떼어냅니다. 성의를 다해서 처음 작업실에서 완성된 그 모습으로 정리를 해주고 그 가운데에 하늘로 치솟은 일자의 금빛 스트립을 우두커니 바라봅니다. 그것은 교과서에서 본 '영성'이나 '숭고'의 단어로 묘사되기보다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던 그간의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운 말로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싶었고, 평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너무 어렵다'는 말을 간신히 삼키던 사람들, 그중에서 자식이 학업을 마쳐갈 무렵의 여성들이 제 팔에 손을 얹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제게 맞추며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걸 알아주고 콩돌이 아빠가 그런 남편이고 아들이라니 참 고마운 거예요."
저는 뿌듯하면서도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럴듯한 기획을 얻으려 아내와 엄마의 이야기를 뽑아낸 것이 전적으로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려는 것 이상으로 저의 성취를 위한 부분이 컸기 때문입니다. 몸과 맘을 녹이는 칭찬을 들은 날에도 엄마에게는 신경질을, 아내에게는 짜증을 부리며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며 그들의 맘을 할퀴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