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아가

작업실 노트

by 콩돌이 아빠
20241129_131614.jpg <안에 아가> 2024, 종이에 연필과 수채

초음파로 본 둘째의 얼굴은 아니나 다를까 장모님, 아내, 첫째 아들과 닮아있었다. 왠지 몇 세기가 흐르면 전 지구인이 처갓댁 식구들의 얼굴을 닮은 인종으로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유전자의 힘은 강력해 보였다. 올해 여름 아내의 외할아버지께서 별세하셔서 찾은 장례식장에도 머리길이나 성별, 또는 안경 정도만 차이를 둔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이 가득해서 새삼 놀랐었다.


둘째 아들이 왕비 자궁을 가진 엄마의 덕을 보아 출산 당일 비교적 시간 소요가 적게 세상으로 나왔다. 마치 쏘옥 하고 나오는 느낌 같았는데, 이런 말을 하면 아내는 몹시 언짢아한다. 낳는 사람 입장에서는 임신 기간 동안의 노고와 병원에서 겪는 썩 유쾌하지 않은 과정 때문에 1분 1초도 끔찍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안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둘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쏘옥하고 나온 것 같다.


엄마 뱃속에서 이리저리 얼굴이 눌려 있을 때와는 달리 태어난 날, 그리고 단 며칠 사이에 부기가 빠지면서 점점 낯익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의 거울을 보는 듯이 아이는 나를 닮아 있었다. 아내는 극구 부인하며 내 긴 코와 거무죽죽한 피부가 아이와는 다르다며 정색했다. 나도 그 부분은 수긍할 수 있었는데, 그만큼 뽀얀 피부와 신생아 특유의 위아래로 좁은 비율의 얼굴이 그러해 보였다.


올해는 참 다사다난했고, 큰 성과만큼의 좌절도 몸통을 관통해 갔다. 부쩍 늙은 것 같고 기진맥진한데, 가슴팍에 다시 아기를 둘러 묶어 고정한 뒤 그가 춥지 않게 포대기며 얇은 이불이며 덧대어 길을 나섰다. 한 손에는 분유 가방과 내 손가방을 손에 묵직하게 매달았고, 나머지 한 손에는 아이가 심심할 때 보게끔 장난감 모빌을 들고 엉거주춤 걷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아기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눈을 굴려 바라본다. 참을성이 바닥난 내게 엄마가 눈 밑에 흉측하게 덧씌워진 비립종(물사마귀) 흔적을 손가락질하면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곤 하는데, 그런 내 눈에 코를 맞댄 아이의 물사마귀가 여기저기 보인다. 바늘로 콕 찍어 따내고 싶지만 그게 아내의 역린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른 척한다. 아이는 빙글빙글 웃고 나는 종종걸음으로 엄마에게 또 아이를 맡겼다. 어쩔 수 없다는 유일한 핑계를 대며 나는 돌아 나왔고, 그림을 그리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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