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을 초석삼아 섣불리 시작하지 않고 전보다 나은 재료와 더 꼼꼼한 재단을 염두하며 새 작업에 들어간다. 손에 익지 않은 방식은 늘 그렇듯 실수를 유발하고 다시 시작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악의 사슬로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몇 날, 몇 주, 몇 달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손에 쥔 거 하나 없이 마감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간만에 여유 있던 일정을 이도저도 아니게 소모하고 결국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패기 있게 집을 떠나 얼마 견디지 못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쓰레기를 써내겠어!"
허술하지만 왠지 당찬 그녀의 말씨가 들리는 듯했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수필에서 읽은 글귀에는 전보다 나은, 혹은 역사에 남을 수작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그저 족쇄가 되어 창작을 무겁게 했다는 회한이 서려있었다. 거꾸로 맘 편히 망치겠다는 준비가 된 사람의 작업은 거침이 없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 나가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상처는 치료하면서 나름의 끝을 맞이한다.
최근에 작업실 가는 길이 막연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로 머릿속에 파티션 하나가 큼직하게 마음의 공간을 쪼개 놓으니 집중력이 현저히 흐려졌다. 시간도 줄고, 피로하고, 나의 영혼을 색칠하는 불안과 체념 때문에 '가서 뭐 하나... 해서 뭐 하나...' 하는 심드렁한 혼잣말이 잠기지 않는 수도처럼 계속샜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다. 작년 대부분의 시간을 기존작으로 전시를 막아내며 자기혐오가 생겼다. 격려는 텅 비어 보였고, 칭찬과 관심은 측은지심으로 해석되는 몹쓸 버릇이 또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새 작업으로 좋은 전시를 치러서 이 루틴을 부셔야 한다고 느낀다.
쓰레기를 만들자. 머리에서 해결되지 않는 시행착오는 재료와 손이 해결해 줄 거야. 배포 있게 망치자. 눈앞에 조악한 작업은 다듬고 또 다듬으면 나름 운치 있는 누더기가 될 거야. 나는 엉터리야. 나는 셈이 송곳같이 예리하지 않으니 대충 시작해서 이리저리 주무르며 고치고 덧대고 마무리해야지.
'전보다 나아지겠다'는 마음이 자신을 환골탈태시키려는 욕심으로 과해지자 작업에도, 나의 하루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하던 대로 쓰레기를 만들자. 그리고 전보다 조금 더 고치는 게 낫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