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돕기

작업실 노트

by 콩돌이 아빠
<스스로 돕기> 2025, 종이에 연필과 수채

작년 중순 즘 불현듯 사람들, 세상과 잘 지내리라는 맘을 접었다. 어려서부터 오래간 운동을 해온 나름 튼튼한 몸에 이상이 생기던 때, 내 처신에 의심이 들었다. 감당못할 '친절'과 '상냥함'이 나에게 독이 된 것 같았다. 마음의 같은 자리를 꾸준히 두들겨 맞아서 멍이 들고 병이 깃든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도 살아온 관성 때문인지 쉽사리 안하무인이 될 수는 없었기에 더 갑갑했다.


초면에 듣는 여러 질문들,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별 뜻 없이 주고받는 대화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도가 높아진다. 가뜩이나 작업을 할 시간도 부족한데 이런저런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와 시선에 몹시 지치며 잃는 시간에 속이 상해 마음을 추스르느라 또 시간을 흘려버린다. 도대체 나는 언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혼자 있는 시간은 참 좋다. 혼자서 작업을 하는 시간은 더 좋고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나는 아내와, 아이와 분리되어 나온 일정을 거의 대부분 혼자 사용한다. 내 황금 같은 시간을 귀중히 여기다 보니 서운한 주변인들, 친구들이 하나, 둘씩 투명히 없어짐을 느낀다. 작업실에서 종횡무진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아내의 호출에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길에는 삼겹살 불판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웃음을 주고받는 친구무리, 가로수 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삼삼오오 배시시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혼자서 저벅저벅 걸어내려 온다.


최근에 많이 하는 입체작업이 조금씩 크기를 키우더니 3미터가 넘는 것도 태어났다. 작은 것들도 2미터 안팎은 족히 되어서 혼자 만드는데 고충이 따른다. 내 키보다 큰 패널을 천장에 매다는 일, 포장하는 일, 이동하는 일, 전시장에 설치하는 일은 고역이자 도전인데, 그렇기에 항상 중얼거리는 외마디는 "딱 한 명만, 5분만 도와줬으면..."이다. 전시가 다가오면 이리저리 전화기를 뒤적이다가 한숨을 한번 삼키고 내 개인역량을 넓히는 방향으로 결론짓기 일쑤이다. 그리고 나는 또 혼자 작업하고 혼자 설치를 떠난다.


전시의 꽃은 오프닝이다. 그런데 나는 10대 후반부터 사람들이 모인 곳을 보면 괜히 가슴이 쓰리다. 또 어울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길은 무척 쓸쓸한데, 괜찮은 척 의도적인 기분전환을 하려 해도 본능과 무의식이 괴로워한다. 축하받아 감사하고, 조명과 웃음이 밝지만 나는 항상 겉도는 기분이다. 그렇게 오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몸은 녹아내린 얼음조각처럼 널브러진다.


내가 여러 명이면 좋겠다. 네댓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앉는 식당에도 가고, 우리 집 경조사에도 찾아와 돕고 축하와 위로를 건네면 든든할 텐데 싶다. 항상 막막한 짐 옮기는 일도 으쌰으쌰 함께하고, 끝난 뒤 맥주 한잔과 함께 덕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지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공상에 은은한 미소가 번지는 동시에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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