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거나 사라져서 안 보이는 것들

작업실 낙서

by 콩돌이 아빠
<문득 떠오른 생각> 종이에 연필과 수채

작업 설명을 장황히 늘어놓다가 느닷없이 자기 객관화가 되며 스스로가 바보 같다 느꼈다. 미술은 심오해아한다는 생각의 감옥은 오래간 나를 괴롭혔고 솔직히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다. 더불어 누구나 혼자 퍼올린 골똘한 감상은 우수에 젖어있기 십상이어서 대낮 맨 정신에 그 생각을 주변인에게 말로 전하기에 퍽 민망스럽다.


발버둥 치듯이 소소 담백해지고 싶었다. 그건 내가 가장 편히 드러내는 내 모습이기에 위화감도 없었다. 진경산수에 나오는 어마무시한 절경보다는 이름 모를 어느 산을 끄적이는게 나답고, 역사적 슈퍼스타보다는 세상을 떠난 사실도 알기 어려운 이웃들을 묘사하는 게 손에 익었다. 그러다 보니 작아서 밟힌 것도 어필할 수 없는 개미, 지상의 빛을 며칠 즐기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하루살이, 땅에 닿지 못하는 보슬비, 다음날 땡볕에 온데간데없이 증발하는 웅덩이로부터 나를 보는듯한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조부님, 하지만 할아버지가 만든 광주리는 선명히 그 모습이 떠오른다. 꼼꼼히 말아낸 새끼줄을 엮고 이으며 다양한 집기를 남기셨는데, 손에 거슬리는 가시하나 없이 좋은 마감으로 공예를 마쳤다. 이따금 내가 작업한 것들을 본 사람들이 '수행'이나 '명상'같은 수식을 붙이지만, 이런 고상한 어휘들이 솔직히 내 출신성분에 견주기 벅차다는 것을 안다. 내가 사랑하는 박완서 모친의 삯바느질, 법정스님의 비뚤어진 의자, 그리고 할아버지의 새끼줄로 엮은 광주리에 묻어난 땀내 나는 삶의 흔적 같은 것이 내게는 더 영광스러운 표현이라 느낀다.


작아서 안 보이는 존재들, 노고가 당연해서 무시받는 이들의 자취를 크게 보이거나 강조하거나 성의껏 묘사해 주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구질구질한 자기 연민일지 몰라도 나는 이런 내 삶과 작업의 방향을 운명이라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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