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함께하는 날

작업실 노트

by 콩돌이 아빠
<천개의 9자못> 종이에 연필과 수채

아들이 말을 금세 배워서 고급 한자 어휘나 사자성어를 알려주곤 하는데, 어느 날 '십시일반'에 대해 설명했다. 그런데 그 뜻이 다들 배부른 상황에 남은 밥을 한 숟가락씩 먹어치운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밥을 한술씩 덜어 모으면 새로운 한 공기가 나온다는 내용인지 헷갈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후자가 당연한데, 외식 때마다 남은 음식을 조금씩 해치우자던 아버지의 말씀이 무의식 중에 그 십시일반의 상황을 설명하는 일러스트같이 기억에 남아서인 것 같다.


대부분의 내 작업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보는 사람들의 '이걸 대체 어떻게 했지?'라는 충격받은듯한 반응에 뿌듯하기는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고급 테크니션이라기보다 단순반복에 길들여진 생활의 달인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마치 해당 방송의 어떤 출연자가 수천 개의 편지봉투를 접듯, 또 다른 주인공이 방 한가득 쌓인 인형의 눈을 붙이듯, 내가 하는 미술작업도 똑같은 바느질, 매듭, 도색을 계속 반복하며 노동의 패턴을 모아가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하루 온종일 작업에 매달려도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겨우 한 부분의 와이어가 고정될 뿐일 때가 많아서 몸에 진이 빠져 집에 돌아가도 맘이 홀가분하지 않다. 이런 작업이 수년간 이어지다 보니 온몸이 자동공정화 되고, 특별한 생각 없이도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잡다한 상념이 일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데, 어느 한순간 천착되는 깨달음이 마음을 뒤덮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3000번 해야 하는데, 혼자서 하루에 300개를 간신히 하니까 꼬박 열흘을 계획해야 하는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열명만 도와준다면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을 텐데...'


우연히 참석한 '작가와의 대화' 자리에서 스태프를 꾸려가며 크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거뜬히 해내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내가 꿈꾸는 환경에서 시간과 노동의 고민을 해결한 것만으로도 이상적이라 느꼈는데, 그가 내비치는 동료들에 대한 신뢰는 안정적이고 따뜻해 보였다. 저런 분위기에서 작업한다면 한 달에 십 수개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겠다는 계산이 섰다. 나도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마감에 쫓겨 돌봐줄 곳 없는 아들과 함께 작업실에 간 적이 있었다. 아들에게 레고와 책을 건네고 나는 작업을 하는데 잠깐 만들던 부분이 쓰러지지 않게끔 손만 대고 있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아들을 불러서 그 일을 부탁했고 아이는 자신의 역할에 몹시 들떠 고사리 같은 손바닥을 들어 조형물을 받쳤다. 아이를 낳고 타지생활을 버티지 못해 한국에 돌아와 틈나는 대로 작업을 하고 전시기회를 찾던 때, 아내의 "자신과 아이가 짐처럼 느껴지냐"던 일갈에 대꾸할 수 없던 순간이 떠올랐다.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바쁘고 막막한 시절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내 가슴팍과 등에 번갈아 매달려 곯아떨어지던 아이는 어느새 작은 숟가락을 더해 내 일과에 도움을 주고 있다.


나의 스태프는 가족. 나의 친구는 아내와 아들. 내 작업은 집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한글과 산수공부... 내가 흠모하는 박수근과 이중섭의 그림에는 진저리 나는 생활의 때가 엉겨있다. 그리고 번듯한 공방과 제작 스테프 없이도 식구들과 숨결을 맞대며 주어진 재료만큼 작업을 이어가던 그들을 되새기며 아직은 혼자 묵묵히, 간간히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내 할 일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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