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노트
'방'을 뜻하는 순우리말은 없다. 한자어 방(房)이 정착되어서 이제는 완벽히 우리 전통에 깔려 들었다. 네모난 구역에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모양으로 조성된 이 한자어는 엄마 몸 안에서 생의 시작을 경험한 포유류에게 보편적으로 표현되어야 할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벽에 기대거나 구석에 몸을 밀착시킬 때 부분적으로나마 세상의 첫 공간에서 경험한 안락함을 느낀다.
내가 만든 것들은 화이트 큐브 전시장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천장의 레일 조명을 최적으로 맞추고 뒤, 좌우벽의 깔끔한 마감이 준비되면 섬세히 작업된 설치물의 요소들이 살아난다. 이 때문인지 정제된 갤러리의 흰 벽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거리마다 펼쳐진 형형색색의 구조와 다양한 소리로부터 단절된 실내는 오롯이 기하와 추상만을 허락한 모스크 사원이나 미니멀리즘의 화폭같이 고요하고 성스럽다. 그 한복판에 여리고 미풍에 움찔대는 내 작업을 위치할 때 받는 감정은 다소 종교적인데, 그래서인지 삶의 모진 고초에도 여적 이 일을 사랑하는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의 첫 번째 방을 잊을 수 없다. 세탁실과 맞닿아 있던 두 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는데, 그간 형의 방을 나누어 쓰거나 응접실에 요를 깔고 자던 나에게는 대단히 설레는 일이었다. 아이 때부터 부모님, 이모와 함께 지내던 13평 아파트가 재건축되던 기간 동안 수없이 아파트 카탈로그를 들추며 작은 내방을 보고 또 보았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다린 나만의 침실은 살면서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감사했다. 나는 나름 방에 책과 소품을 위치하며 어설픈 장식을 얹어보았다.
천장에 결속된 패널에 매달린 실작업을 하며 사람들의 동그래진 눈과 벌어진 입을 볼 때마다 공정의 노고를 보상받는 쾌감이 있었다. 그런데 일순간 스치는 옷깃에 흐느적대는 가는 실들이 뒤엉켜 머리를 감싸 쥔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전시를 의뢰한 분들도 처음의 호의를 잊을 만큼 잦은 관리의 부담에 끝내 볼멘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때가 부지기수였다. 나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고 전시장 지킴이의 역할과 내가 방문하여 보수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나 동일한 문제는 반복되었고 그렇게 소원해진 관계가 누적되어 갔다.
회화를 구경한다. 평면작업을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능숙한 전문가들이 단숨에 못을 박고 그림을 건다. 단 몇 분에 작업이 완료되고 얼굴에 여유와 웃음을 머금은 작가들이 인사를 마치고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이후 몇 시간을 전시장에 남아 설치를 이어간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가볍게 세팅을 마칠 수 있을까?
없던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안정적으로 훅을 고정한 뒤 와이어를 묶는다. 위로 아래로 반복되는 작업을 하며 잡념이 사라지는 구간에 돌입했다. 섬유 구조물을 외부에 노출시킨 기존 작업을 틀 안에 넣어 압축된 형상을 만들고 밀도를 올린다. 그리고 생에 첫 방문을 열며 번져가는 웃음을 참을 수 없던 나의 얼굴처럼 팽팽히 간격을 유지한 선들이 정갈히 줄지어 드로잉이 되어간다. 투명아크릴로 그 전체 틀을 덮어 마감한 순간, 오래간 실랑이를 벌여오던 나의 설치과정이 초대하는 사람과 스태프의 입장에서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