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무서워요.

작업실 노트

by 콩돌이 아빠
<파도같은 주름> 종이에 연필과 수채, 2025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면 무심코 뒷걸음치게 된다. 세상에 자연스레 녹아든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두렵다. 슬금슬글 멀어지다가 혼자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핑계 삼아 "나는 지구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아내에게 가끔 하는데, 어쩜 이리 겉도는지 스스로 한심스럽다가 이제는 팔자소관을 한다.


굳은 얼굴의 남자들을 보면 서둘러 웃음으로 분위기를 무마하고 헤어짐을 고대한다. 행여나 감정이 상할까, 책잡히지는 않을까 자질구레한 제스처에도 알레고리를 파악하며 수명이 다 된 핸드폰 배터리처럼 삽시간에 방전된다. 나는 지구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것 같다. 적절한 의사표현을 꾹꾹 참은 채, 집에 돌아와 아내와 큰아들에게 괴로웠던 일정을 토로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허리가 주춤주춤 춤을 추고 고운 말로 시중드는데 선수가 된다. 좋은 마음으로 대가 없이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공동체가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반, 내 존재가 환대받고픈 마음 반씩 더해 신이 나 몸이 움직인다. 그러다 "에헴"하는 헛기침 한 번에 먹구름 같은 그늘이 맘에 드리우고 내 행실이 삼강오륜에 어긋날 만한 것이 있었나 싶어 가슴이 콩닥거린다. 할아버지, 무서워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서 어찌해야 할지도 무서워요. 동네의 고참이 되었을 때 내 주변에 다가와 줄 젊은이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그들에게 다정한 할아버지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콤포지션 연습> 종이에 연필, 수채와 18k 금박, 2024

조금씩 세상이 달라진다. 어린 내 눈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산신령이나 도사님 같아 보였다. 모르는 어르신도 거리에서 보면 응당 인사해야 할 것 같았고, 사리분별의 잣대이자 도덕의 답지라 생각해서 어떤 이야기가 들려오던 입술을 얌전히 모은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살기가 힘들어진 건지 그런 전통의 위계가 더 이상 설득이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이 지긋한 어른을 상대로 험한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피라미드 벽에 쓰여있다던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상형문자가 현대의 삶에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적용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막상 내가 기성세대의 나이에 한참 발들이고 보니 옛날 어른들처럼 "세상이 이리 무너지나!"는 클리셰 어린 탄식을 맘속으로 뱉어낸다.

내가 만든 작업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을 살핀다. 작가로서 당당해야 하는 게 맞는지, 어른의 역할도 아이의 역할도 어색해져 버린 내가 얼굴에 떨림을 숨기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반색해 드려야 하는 게 적절한지, 순간순간 처세에 갈등이 인다. 좋은 평가는 작업에 주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괜히 예의와 공손한 태도에 맘이 기울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며 나는 다시 귀염둥이가 되려 한다. 내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사사로운 관계를 벗어나 초연 할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나의 노년을 다짐하곤 한다. 되도록 말을 아끼고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독이 두렵고 적적함에 맘이 쓰려도 깨끗이 차려입고 혼자 도서관에 걸어가 책을 읽고 오고 싶다. 혹시나 청년이 괜히 말을 걸어오거나 조언을 구해오면 "나도 잘 모른다."라고 답하고 그의 의중을 되묻고 싶다. 한창 열심히 활동하는 작가의 전시에 초대를 받으면 꽃 한 송이에 '전시 축하해요'라는 짧은 편지를 끼우고 종이에 5만 원이라도 넣어 건네 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미안한 물결>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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