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과 괴로운 일과 좋은 일

작업실 노트

by 콩돌이 아빠
<모질지만 눈물이 많은 경우> 종이에 잉크, 2024

내가 하는 모든 결정이 탐탁지 않아서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 제 딴에는 심사숙고한 선택들인데 하나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후회되는 일뿐이어서 무기력에 짓눌리게 된다. 잘 지내고 싶었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오해가 쌓이고 뼈를 깎으며 노력을 쏟은 일은 손해만 남아 몸과 마음이 공허해진다.


실수로 덧칠된 내 인생에 빛이 드는 순간을 되짚어본다. 토플을 망친 탓에 포기할 뻔했던 대학원, 잘 보이려다 어색해진 지금의 아내, 비디오 작업을 할 수 없어 고른 유토 때문에 엉겨 붙던 설치작업.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지 몰라도 우여곡절 끝에 진학하고, 관계를 회복한 그녀와 결혼하고, 망가진 설치물을 소생시키려다가 현재 하는 섬유-실 작업을 하게 되었다. 한 번의 실수 없이 순탄히, 매끄럽게 높은 곳까지 오르길 바란 나는,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이고 손톱이 뒤집혀 피가 철철 흐르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치르는 전시와 작업에 덧씌운 거창한 주제의식보다 내 실수, 실패, 좌절과 노고의 경로를 엿듣는데 귀를 쫑긋 세운다. 나도 마치 지난 일인 양 웃으며 힘든 과거를 무용담스럽게 터놓는데 맘 속에서는 '여적 현재진행 중인데...'라는 중량감이 남아 자동으로 겸손해진다.


널찍한 작업실에서 볕을 받으며 인터뷰하는 작가들의 모습을 본다. 몇 년 전까지 지내던 지긋지긋했던 지하주차장 작업실, 현재 습기와 사투를 벌이는 지하 작업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맘을 여유가 묻어나는 작가들의 말을 들으며 들춰본다. 나도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지금의 고민을 웃음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이 생각에 빠져들수록 갈증은 심해지고 조급한 맘에 작업은 조금씩 아래로 흐르는 것만 같다. 지하주차장 작업실을 처음 얻던 때의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쓰는 높은 층고의 고요한 지하 작업실에 들어와 음악을 틀고 혼자 춤을 추던 때를 가슴에 새겨야 하는데...


<좋은 일과 나쁜 일> 종이에 연필

아들의 고민을 들어준다. 나도 유년기의 정체 모를 불안이 아직도 생생해서 터놓는 이야기에 몰입한다. 아빠로서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는데, 비슷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내 경험을 털어놓고 이후 "솔직히 아빠도 모르겠어. 혹시 도움 필요해?"라고 물으니 아이는 괜찮다며 얼굴을 풀었다. "좋은 일은 좋은 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있고, 나쁜 일은 나쁘게만 나아가지 않으니 들뜨지도, 애처로워하지도 말자"고 말해준다. 그런데 그 말이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인 것을 나도, 아들도 이미 알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가슴이 조여왔다. 주어진 것들은 불만족스럽고 앞에 헤쳐나갈 상황은 막연하게만 느껴져 가슴에 눈물이 맺히는 기분이었다. 지난 일들처럼 실수에서 인연이 피어나면 좋겠다. 실패에서 새 친구 같은 재료와 기법을 만나기를 바라본다. 지금 떨쳐지지 않는 근심이 또 다른 소재의 뼈대가 되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당길 것이란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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