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

작업실 노트

by 콩돌이 아빠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의 의지에 맞서는 집념이 있었다. 수시로 밤도 지새우고, 몸을 혹사시켜도 정신이 날카로웠다. 몸을 벗어난 집중력으로 작업도 곧 잘 해결하고 매사에 싱글벙글이었는데, 작년 말부터 부쩍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외계인> 종이에 연필과 수채

가는 실을 쓰는 작업은 집중이 필요하고 손가락의 섬세한 근육을 반복 사용하기 때문에 자주 피로해진다. 신경이 곤두서고 팔다리에 과부하가 걸릴 때에는 잠시 쉬어주는데 최근 그 빈도가 느는 것 같다. 그런데 편히 쉴만하면 지친 몸에 깃든 정력적인 영혼이 인내심을 잃고 성질을 낸다.


작업을 더 하고 싶었는데 집안 일과 큰아이 공부를 도우러 집에 돌아왔다. 적당히 몇 가지 일을 포기해야 하는데, 급한 성격에 내려놓을 수가 없다. 아이에게 받아쓰기, 산수, 한자, 영어가 혼합된 홈메이드 학습지를 한 장 만들어주고 풀이를 지켜보는데, 참견을 하게 됐고, 덕분에 작업도, 아이와의 시간도 만족스럽지 못한 일과를 마무리한다. 체력이 충분했던 시절, 웃는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잔업과 하고팠던 것들을 이어가던 모습은 어디에 갔을까?

<무제> 종이에 열필, 수채와 18K 금박

문득 여름이 동네를 뒤덮었다 생각 드는 후끈한 열기를 느낀다. 겨울에 몹시 추워 손이 얼면 실가닥을 매만질 수 없어서 난로를 쬐고 조금씩 작업을 이어가던 몇 달 전이 무색하다. 다행히 지하실은 아직 선선한 편인데, 습기 때문에 환풍기를 돌리지 않고 제습기를 틀어놓으니 공기가 탁해 머리가 뿌예지는 기분이다. 몸의 피로와 바뀐 계절을 핑계삼아 자주 쉬며 작업을 하는데, 죄책감이 일어날 때마다 '그래도 나와서 조금이라도 한 게 어디냐'며 자족한다.


요즘 검은색 나무프레임에 와이어를 묶고 밀도와 물감 덩어리를 올리는 작업 중인데 썩 마음에 든다. 사그라드는 잔불 같은 열정에 몇 날이고 밤을 지새워 이 작업을 빨리 마무리해서 몇 개를 금세 쌓아놓고 싶지만 육신이 널브러진다. 그래도 뉘인 의자에 기대 살짝 고개를 돌려하던 작업을 보면 괜히 기분이 들뜨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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