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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ru Nov 09. 2024

명령_ 이병률

# 팔이에게

칠,팔,구,땡.

으로 끝나는 별명을 가진 무리의 친구가 있다.


다들 그렇듯  아무 생각 없이 순식간에 지어진 무식한 고딩들의  장난.

이 별명을 30여 년 가까이 친근한 꼬리표로 달고 살고 있다.


가을.경주.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각자의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약속을 하고 맛집을 검색하고 날씨를 확인하며 입을 옷을 골랐다.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근황토크 배틀이 시작된다.  이야기가 끊기는 순간은 같이 이동하는 차에서 내리고 오르는 때뿐이다.


미리 예약한 한정식 식당에서 음식을 극찬하며 배를 채우고,

거ㅡ대하고 멋스러운 커피숍에서  차와 디저트를 채운다.


그 와중에  템포를 늘리며 이야기를 꺼내는 팔이.

보통 우리의 토크 템포와는 다르기에 먼가 중요한 말인가 싶다.  


"나 내일부터 쉬어. 회사에 병가 냈어."

...

"임신이가?"


쌍둥이 딸들을 올해  겨우 초등학교 입학시킨 팔이에게  고새를 못 참고 토크 인터셉트를 강행하는 구 이다.

덕분에 긴장감이 살짝 끊기며 다들 빵 터진다.


산으로 가는 토크를  다시 팔이 입으로 집중시키며  팔이가 이어간다.


" 올해 건강검진 하면서 뇌 CT를 찍었는데  뇌수막종이래.  근데 크기가 제법커서 바로 수술해야 한데.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운 좋게도 바로 검진하고 수술 날짜도 잡았어. 다다음주 입원해서 수술해."


몇 해 전 칠이의 초기 유방암 발견과 수술로 식겁했던 우리는..

모두 어금니를 꽉 물었다.

실은,

각자의 놀람이 눈물로 쏟아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고 있느라  서로의 얼굴을, 눈을 볼 여유 따위 없었다.


눈물을 목뒤로 꿀떡. 삼키며 일상의 대화처럼 토크를 이어간다.


건강검진하는데  뇌 CT는 왜 찍게 됐느냐?

크기가 얼마나 되냐?

시술이 아니라 수술이 맞느냐?

입원은, 수술은 언제 하느냐?

병원, 의사 이름이 머냐?

후유증은 안 생긴다냐?

둥이들은 누가 보느냐?


주변만  서성이는 대화다.


네가 얼마나 놀랬냐.

(내가 지금 너무 놀랐거든.)

무섭진 않냐.

(나 너무 무서워. 너무 걱정돼.)


따위의 진실한 질문은  지금 서로에게 너무 위험한 것이기에 그렇게 빙빙 질문을 돌렸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도

진공의 마음에다 명령해 본다.


팔아 너는 아무 일 없을 것이다.
그래야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아무 일이 없을 것이니
반드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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