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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신당, 정주영 신당

by 박상준

'불가능한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사람'. 전기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월터 아이작슨의 저서 ‘일론 머스크’를 읽어보면 머스크(테슬라 CEO)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


머스크는 기존 질서와 규범을 거부하고 관습과 격식을 파괴하는 몽상가라는 평을 듣는다. 때론 한없이 가벼운 입으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만든 기업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려는 혁신기업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머스크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엔 '신당 창당'이다. 머스크는 5일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오늘 아메리카당이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돌려주기 위해 창당된다”고 밝혔다.


비전과 추진력을 갖춘 반면 충동적이고 예측불허이며 개성이 강한 트럼프와 머스크의 밀월은 의외로 짧게 끝났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국정 의제를 담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공개적으로 저격하며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그들이 ‘정적(政敵)’으로 만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머스크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전 회장이 있다. 두 사람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맨손으로 세계적인 기업집단을 일구웠고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창업했으며 무엇보다 기업인 신분으로 ‘신당’을 창당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정주영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신당을 창당해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연히 ‘정치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한 가족들이 강력히 반대했다. 동생들은 77세의 나이를 걱정하며“기업이나 계속하지 다 늦게 시궁창 같은 정치판에는 왜 뛰어들려고 하느냐”고 말렸다.


보도에 따르면 이때 정주영은 이렇게 말했다."너희들 재산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지? 내가 고향에서 내려올 때 깜장 고무신 하나 신고 왔어. 최악의 경우 망해도 너희들 구두는 신을 수 있지 않겠어? 내 건강 핑계 대지 마. 나 건강해." 가족들은 이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정주영과 머스크의 신당 창당 이유도 비슷하다. 머스크는 신당 창당 취지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낭비와 부패를 지적하며 미국을 파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주영은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의 단물을 빼먹으면서도 정작 기업인을 무시한다”며 “내가 직접 정치를 해 이런 인식을 바꿔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돈이 많다. 내 돈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주영은 창당 당시엔 ‘통일국민당’이란 이름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아파트 반값 공급’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14대 총선에서 31석(지역구 24석, 전국구 7석)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 대선에 출마했지만 YS(김영삼), DJ(김대중)에 이어 16.3% 득표에 그치며 낙선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전 회장>


머스크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 의석 2∼3석과 하원 선거구 8∼10곳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트럼프의 정책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을 막고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머스크의 신당은 아직 출범도 안 해 성공 여부를 예측하긴 애매하지만 정주영 신당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대선 이후 YS 정부는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현대에 가혹했다. 국세청을 동원해 먼지 털듯이 뒤졌고 정주영은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결국 199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통일국민당은 창당 2년 반 만에 간판을 내렸다.


머스크의 ‘아메리카당’은 롱런할 수 있을까. 머스크는 중간선거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으면 대선 출마도 고려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 성향상 정적을 지켜보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천문학적인 재력으로 정치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정당을 이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권력은 합법과 편법을 교묘하게 구사하며 기업을 키울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미국이라고 다를 리는 없다. 과연 머스크는 정주영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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