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이 다른 계곡... 말복에 찾은 지리산 한신골
경남 함양 지리산 백무동 한신계곡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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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를 이길 장사는 없다. 트레킹 카페 '마이힐링로드'가 경남 함양 지리산 한신골을 찾은 날이 말복이다. 올여름 폭염이 역대급으로 맹위를 떨쳐졌지만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오자 살짝 꼬리를 내렸다.
더구나 한신골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난무(亂舞)하지만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만큼 차다는(한신 / 寒新) 곳이다. 적어도 이 골짜기에서는 올여름 더위는 자치를 감췄다.
오전 9시 30분쯤 한신골 관문인 백무동에 들어서자마자 반바지를 잘못 입고 왔나 싶을 만큼 서늘한 바람이 계곡에서 불었다. 기상청의 비예보에 하늘은 흐리지만 기분은 산뜻하다.
마힐로가 때를 잘 맞췄다. 최근 며칠새 소낙비가 내리면서 계곡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우렁찬 물소리로 나그네의 기선을 제압했다. 한신계곡은 예로부터 물이 넉넉하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계곡은 역시 물이 풍성해야 폭포가 압도적인 비경(祕境)을 뽐낸다.
무엇보다 한신골은 첫나들이, 가내소, 오층 등 크고 작은 폭포가 구술 꿰듯 이어진 골짜기다. 국립공원이라 안전시설이 완비돼 폭포에 접근할 수 없지만 산허리를 걸으며 폭포를 내려다볼 수도 있고 데크전망대에서 올려다볼 수도 있다.
백무동 삼거리에서 30분가량 완만하고 조붓한 길을 오르면 첫나들이 폭포와 만난다. 오래전엔 폭포에서 바람이 불어 ‘바람 폭포’라고 했다는데 왜 이름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높이 10여 미터의 거대한 암벽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하다.
여기에서 신선한 공기를 음미하며 20여분 계곡을 오가는 세 개의 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해발 650m에 자리 잡은 가내소 폭포가 울창한 숲 속에 숨어있다. 높이 15m의 2단 폭포인 가내소폭포는 대낮에도 어둠 속에 묻힌 듯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폭포수를 받아내는 용소는 얼마나 깊은지 검푸른 빚으로 일렁여 금방 용이라도 솟아오를 듯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계곡 수영을 즐기는 지인에게 뛰어들 자신이 있느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주민들은 가뭄이 지속되면 가내소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가내소폭포에서 마힐로의 종착지인 5층폭포는 10분 거리다. 길은 돌이 많고 업다운이 있지만 대체로 부드럽다. 산허리를 도는 오솔길과 폭넓은 계곡에 걸린 나무다리를 지나면 5층폭포가 눈앞에 보이는 나무전망대에서 들어서는데 회원들마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와폭은 독특한 풍광을 드러낸다.
폭포아래엔 옥처럼 깨끗한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정갈하게 몸을 씻었다는 옥녀탕도 있지만 급한 물살에 탁족 할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감상만 했다. 오층폭포에서 산으로 직진하면 지리산 주능선에 펼쳐진 고원으로 봄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이 나온다.
이곳부터는 거칠고 가파르다. 마음 같아서는 내처 세석평전까지 올라가고 싶지만 일정상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섰다.
백두대간 종착지인 '민족의 명산' 지리산의 골짜기는 격이 다르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만 30여 개에 달해 그 사이마다 깊은 골을 이뤄 놓았다. 넓고 깊은 지리산은 수십 번 올라도 늘 새롭다.
청년시절 세석평전을 거쳐 한신골로 내려오기도 하고 7년 전 여름에도 한신골의 여름을 즐겼으나 이번에 또 다른 감흥을 느꼈다. 아마 3년 뒤쯤 가을에 오면 한신골은 중국 쓰촨성 전통극 변검(變瞼)처럼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