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폭과 석굴의 장쾌하고 짜릿한 서늘함

경남 거창 금원산 유안청 계곡 트레킹

by 박상준


하늘 참 짓궂다. 아니면 기상청의 오보던가. 경남 거창 금원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을 때 작열하는 햇볕을 보고 절로 미소가 번졌다. 기상 예보가 맞는다면 오전엔 짙은 먹구름이 금원산 하늘을 뒤덮고 정오쯤 우린 세찬 소낙비에 젖었을 거다.


하지만 보름 전 강원도 평창 육백마지기 때처럼 기상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속된 행운이지만 좀 씁쓸하다.


아침부터 대단한 ‘폭염’이지만 난 ‘일’도 걱정안했다. 우린 ‘유안청(儒案廳)’이라는 이름의 서늘한 계곡 숲길 입장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금원산(1,354m)은 빽빽한 나무와 깊은 골짜기, 전설과 유적이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박힌 아름다운 산이다.


특히 유안청 계곡은 금원산의 시그니처 풍광을 담았다. 그 옛날 선비들이 세상사를 멀리하고 조용히 공부에 전념했다는 곳으로 성인들이 많아 나와 ‘성인골(聖人谷)이라고도 불린다.



금원산 휴양림 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두 마리의 원숭이 조형물이 서있다. 아주 옛날 이 산의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는 ‘금빛 원숭이’ 전설을 형상화했다. ‘금원산’의 유래라고 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스토리를 듣던 일행이 “그런데 원숭이들이 왜 금빛이 아니고 회색이냐” 묻자 누군가 “요즘 금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데 어떻게 금분을 칠하겠냐”고 동문서답해 주변을 웃겼다.


우린 관리사무소를 들머리 삼아 금원산생태수목원까지 왕복 7km를 걸었다. 금원산 자연휴양림은 해발 600m로 우리나라에선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휴양림이다. 그래서 공기의 질도, 기온도 다르다.


휴양림으로 이어진 차도를 벗어나 유안청 계곡에 접어드니 우렁찬 물소리가 귀에 꽂혔다. 전날 큰 비가 내려 계류가 풍성해졌을 것이다. 우린 거대한 암반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길이 150여 미터의 와폭인 유안청 2 폭포를 거쳐 숲길을 타고 해발 700m의 수목원을 향해 올라갔다.



1990년대 초 휴양림이 생기기 전엔 사람 얼굴도 보기 힘든 적막한 골짜기였다. 조붓한 계곡길은 완만해 그리 힘들지 않다. 폭포와 담소가 릴레이로 이어지고 축축해진 나무에서 풍기는 숲향은 진했다. 길 중간에 산막을 거쳐 숲길 오르막에서 살짝 숨이 가쁠 때쯤 유안청 1 폭포가 위용을 드러냈다.


이 길의 하이라이트인 1 폭포는 비스듬히 흐르던 와폭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만나 백척단애를 뒤흔들며 수직으로 내려 꽂히는 시원스런 물기둥이다. 비 온 끝이라 폭포 자체도 장쾌하지만 울창한 수림에 파묻혀 한층 매혹적인 풍광을 드러낸다. 폭포와 마주하면 잠시 ‘무상무념’의 경지에 도달한다.


유안청 1 폭포에서 20여분 걸어 수목원 후문으로 진입하는데 하늘빛 물감을 풀어놓은듯한 산수국이 지천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잠시 산새가 지저귀는 그늘 쉼터에서 텀블러에 담아 온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며 은은하고 우아한 매력이 돋보이는 산수국을 감상했다.


수목원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반나절이 걸린다. 우린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돌아보고 원점으로 회귀해 지재미골 계곡을 두 번 건너 거대한 바위와 마주했다. 단일 바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문바위다.


이곳에서 100m만 올라가 자연석굴 안의 보물 530호인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상을 만났다. 흥미롭고 신비스런 공간이다. 돌에 새겨진 불상 아래엔 누군가 요구르트 2개를 가져다 놓았다. 그 마음이 궁금하다.


석굴 안에서 금원산을 바라보면 웅장한 바위와 초록빛 산세가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위 사이로 보이는 프레임이 마치 단색화의 거장 ‘유영국’의 작품 ‘산’을 감상하듯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4시간의 트레킹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금원산의 재발견’이다. 명성은 이웃한 지리산과 덕유산에 한참 못 미치지만 다양한 폭포, 산수국 군락, 거대한 바위, 자연석굴 등 깨알 같은 비경은 걷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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