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과 바다, 윤슬위에 떠있는 '무한의 다리'
전남 신안군 자은도 해넘이길 트레킹
지난 주말 한국 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예술의 섬' 자은도를 걸었습니다. 신안군은 섬이 무려 1025개에 달하는 '섬의 고장'으로 이중 규모가 큰 섬을 대상으로 '1도(島)1뮤지엄'이라는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미술관을 짓고 있습니다.
'예술의 섬’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일본 혼슈, 시코쿠, 큐슈에 둘러쌓인 세토내해의 나오시마섬입니다. 미술에 관심있는 MZ세대가 열광하는 쿠사마 야오이의 커다란 땡땡이 호박 조형물이 선착장에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 섬이죠.
국내에도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지추미술관, 리우판(이우환) 미술관 등 섬 곳곳에 예술품으로 가득채우면서 글로벌 여행잡지 트래블러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세계 7대 명소'로 꼽혔죠
나오시마의 성공을 눈여겨 본 국내 일부 지자체가 ‘예술의 섬’을 만들어 도서(島嶼)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는데 ‘1004의 섬’으로 널리 알려진 신안군도 그 중 한 곳입니다.
자은도는 옛날 같으면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참 갔을텐데 2019년에 '천사대교'가 생기면서 자은도와 암태도처럼 신안군내 큰 섬은 거의 자동차로 갈 수 있습니다.
자은도에는 해넘이길이라는 걷기코스가 있어요. 송선정류장에서 두모정류장까지 12km를 걷는 길인데 그 길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일품입니다. 그 코스를 걷다보면 바다위를 걷는 ‘무한의다리’를 만날 수 있죠. '영혼의 건축가'로 불리는 스위스출신 마리오 보타의 1004m 보행목교예요.
이를테면 자은도 해넘이길은 섬 주민들의 애환과 청정자연이 담긴 마을길과 산길을 거쳐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보행목교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마침 이날은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한동안 갑작스런 추위에 위축됐는데 자은도는 마치 딴나라에 온 것처럼 따뜻하고 눈이 시릴만큼 푸른하늘이 기분을 산뜻하게 했어요. 또 길가엔 푸릇푸릇한 대파밭이 얼마나 많은지 '대파도'라고 불러도 될 정도예요.
한운마을에서 시작되는 바다에 접한 임도길은 5.6km에 달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단풍의 여운을 만끽하고 중간 중간 그림같은 해변을 볼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산길의 끝에서 둔장해변을 내려서면 삼각형 철골구조물로 이뤄진 군립미술관이 공사중이고 그 앞에 ‘무한의다리’가 바다위에 펼쳐집니다. 낙조때 왔다면 더욱 감동적이었겠지만 할미도와 구리도를 연결하는 다리 그 자체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이 다리를 설계한 마리오 보타는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거장으로 '영혼의 건축가'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데 기억자 형태의 보행목교와 할미도와 구리도가 조화를 이뤄 둔장해변을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만든듯 합니다.
그 다리를 걸을땐 마치 바다위를 걷는듯 했는데 그 다리에서 보는 주변 풍경이 장관입니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갯벌과 바다가 동시에 윤슬로 반짝이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새벽에 기상해 285km의 먼길을 찾아간 노고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