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비'와 '갈대숲'의 스산한 풍경.
충주 앙성면 비내길 트레킹.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라 잔돌이 되라 하네
산 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신경림의 詩 ‘목계장터’ 중에서)
충주 남한강은 시인 신경림의 詩가 절절이 녹아있는 강이다. 민요처럼 편안하고 소박한 시어(詩語)로 문단에 큰 획을 그은 시인은 실의에 차 있던 청년시절 고향인 남한강변을 배회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충주시 앙성면 능강온천 광장에서 임도를 걸어 고개를 넘은 뒤 비내마을을 거쳐 남한강으로 접어들면 신경림의 詩 ‘갈대’와 ‘목계장터’가 떠오르는 풍경과 마주한다. 비내섬에서 목계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무엇보다 갈대숲이 펼쳐진 비내섬은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충주시 자료를 찾아보니 갈대숲 면적이 16만 5000평방미터에 달한다. 비내섬의 절반 이상을 갈대가 점령하고 있다.
비내길이 시작되는 능암온천 뒤편 새바지산은 그리 특색 있는 산은 아니다. 산은 해발 190m로 낮고 임도는 단조롭다.
다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어 적당히 힘들고 고즈넉한 오솔길이 있어 지루하진 않다. 무엇보다 늦가을 소슬바람에 단풍잎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광경을 보기는 흔치 않다. 고갯길에서 낙엽이 흩날리며 머리 위로 떨어질 땐 늦가을의 정취에 마음이 심쿵한다.
이 길은 몇 년 전 걷고 싶은 전국 녹색길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비내섬을 거쳐 강변길로 걸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비내섬은 예전엔 ‘조대늪’으로 육지와 연결돼 있었으나 4대 강 사업으로 샛강이 만들어지면서 섬이 돼버렸다.
비내마을에서 바라본 비내섬은 갈까 말까 망설이게 할 만큼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외려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비내섬을 지나칠 수 없었다.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자 작은 섬의 풍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갈대숲이 갈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히 울었고’ 숲 가운데는 길이 나있었다. 갈대는 도심 하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갈대는 더 크고 완강해 보였다. 하긴 도심에서 자란 갈대와 칼날 같은 강바람을 맞으며 커 온 갈대는 당연히 다르다.
흐린 하늘 탓에 스산한 갈대숲을 지나니 이번엔 버드나무가 울창한 원시림이 나타났다. 버드나무는 아직 수령이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숲 속에 빽빽하게 심어놓은 데다 사람의 발길을 타지 않아서 인지 야생의 숲을 방불케 했다. 갈대숲과 버드나무숲을 빠져나오면 섬 양옆으로 남한강이 포효를 하듯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섬 끝에는 시 ‘목계장터’에 등장하는 ‘강은 날더러 잔돌이 돼라 하네’라는 시구(詩句)처럼 돌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남한강이 수석(水石)의 고장이 된 것은 다양한 형상석과 독특한 모양의 돌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골라서 가져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자연훼손은 물론이고 무게 때문에 감당을 못할 것 같았다.
섬 끝에는 생태교량이 설치됐다. 사람과 동물도 이동할 수 있고 여름 장마철에는 강물이 교량 위를 지나도록 설계됐다.
비내섬을 벗어나 백로와 고니 서식지인 철새전망대 방향으로 이어진 길이 조붓한 돌길로 조성됐다. 남한강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자란 고목들이 줄지어 서있는 길을 따라 강을 바라보며 걷는데 운무(雲霧)가 강 위를 춤추든 피어올랐다.
물이 바랜 듯한 단풍나무만 보다가 갑자기 산뜻한 단풍잎이 지천에 깔린 철새전망대를 지나면 들머리인 앙성온천으로 이어진 시골의 ‘둑길’로 접어든다.
개울 옆 좁은 길엔 코스모스와 고마리, 물봉선등 가을 들꽃이 풍성하게 피어 길게 뻗은 먼 길이 가깝게 느껴진다. 이 길은 산길과 강길, 들길, 작은 섬의 갈대숲, 생태탐방로까지 골고루 걸을 수 있다. 다만 신경림의 詩처럼 목가적인 풍경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흔적만 남았다.
*코스 / 능암온천~ 새바지산 임도~ 비내마을~비내섬~철새전망대~능강온천(1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