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게'를 맛보러 가는 줄 안다.
이 고장은 워낙 대게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영덕 블루로드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에 '푸른대게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하지만 '대게'에겐 미안하지만 겨울에는 '과메기'에게 그 명성을 양보해야 한다.
과메기는 한겨울 일주일 이상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에
말려야 쫄깃쫄깃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식감이 살아있고 생선 특유의 비릿함은
적어진다. 그래서 겨울철 별미로 손꼽힌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과메기를 초장에 찍어 마늘^고추와 함께 김에 싸 먹으면
입안에 바다의 향기가 가득하다.
마침 지난 주말 영덕 '쪽빛 파도길'을 걷는데 지인이 포구 공판장에서 과메기를
잔뜩 사서 배낭에 챙겨 왔다.
나도 한 점 얻어먹으며 본고장에서 '과메기'의 기막힌 맛을 음미했다. 내륙지방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엇갈린다지만 파도가 출렁이는 동해 바닷가에서 과메기를 마다한 사람은 없었다.
남정 포구 덕장의 대나무에는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청어가 잔뜩 걸려있다.
과메기라는 이름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됐다.
청어로 만들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청어 대신 값싼 생선인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청어가 정월이면 알을 낳기 위해 오는데, 수억 마리가 바다를 덮을 지경'이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헌 데 길을 걷다 말고 대나무발에 널어놓은 생선을 두고 궁금했다. 과연 꽁치일까 청어일까.
함께 걷던 지인들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생선을 널던 아낙에게 물어보니 정답은 청어였다. 청어의 귀환이 반가웠다.
청어는 조선시대 임금님 진상품으로 관에 상납도 해야 했지만 값싸고 맛이 있어 가난한 이들도 즐겨 먹었던 생선이다.
당시 어부들의 주 수입원으로 가족의 생계와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소중한 생선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도 청어를 직접 잡아 과메기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충무공 밥상에도 과메기가 주로 올라갔을 것이다.
내륙지방에선 바닷바람에 말린 과메기를 주로 먹지만 영^호남에선 청어의 조리 방법이 다양하다.
어류학자 정문기가 쓴 글을 보면 경북 과메기인 청어를 짚불에 구워 껍질을 벗겨 먹고 과메기로 쑨 죽도 많이 먹는다.
전라도에선 가마에 물을 붓고 그 위에 대발을 걸치고 청어를 올려 수증기로 쪘는데 수증기에 기름이 적당히 빠진 것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라고 한다.
시인 김윤식은 '청어의 저녁'이라는 시에서 '청어'를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저녁 찬거리로 청어를 샀습니다.
등줄기가 하도 시퍼레서
하늘을 도려낸 것 같았습니다.
철벅 철벅 물소리도 싱싱합니다.
정약전은 어보(漁譜)에 무어라고 적었던가요.
모르긴 해도 누운 자세가
그대로 눈빛 고운 수평선이란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득 그 위 하늘에 가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미 청어가 되어 헤엄쳐 간 정약전 같은 사람들,
잠시 생각하는 동안만큼 저녁이 늦어지겠지요.
그래서 하늘에 푸른 물소리로 먼저 등불을 켭니다.
바다가 헤엄쳐 내 집에 와 있습니다"
펄떡이는 청어 한 마리에 시퍼런 하늘, 고운 수평선, 푸른 물소리 등 동해의 온갖 정경(情景)이 고스란히 담겨 저녁을 풍성하게 한다.
청어가 이럴 진데 차디찬 해풍에 일주일 이상 말린 과메기를 음미할 땐 바다가 입속에 들어온 듯한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