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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n 29. 2022

'구름'이라는 소소한 위로

얼마 전 설악산에 갔다가 하늘을 보고 온 감동의 여운이 한참 갔다. 설악산은 봉우리와 골짜기와 계곡마다 비경(祕境)을 간직한 명산이지만 이날은 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구름 풍경에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밝은 햇살이 가루처럼 쏟아지는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신흥사에서 출발해 비선대를 걸어 금강굴로 올라가는 동안 하늘은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변했다. 정확히는 하늘이 변한 것이 아니라 구름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도심에서 흔히 봤던 하늘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곳이 설악산이기 때문일까.

 

설악산 금강굴

 

구름은 생명력을 갖고 있다. 형체가 없고 빛깔이 희며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어디로든지 떠돌아다니는 구름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구름도 똑같은 모습으로 정지됐다면 감흥을 줄 수 없다.


몇 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인 마카오 '베네치안 마카오 리조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호텔은 수상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옮겨다 놓았다. 3개의 소규모 운하를 따라 명품숍이 즐비하고 물길엔 관광객을 태운 곤돌라가 떠다닌다. 이곳엔 일 년 365일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인공 하늘이기 때문이다. 


청주시 서원구 구룡산

 

이탈리아에서 화가를 데려다 4층 높이의 천정에 맑은 하늘을 그렸다. '극 사실주의'풍으로 그린 하늘은 진짜와 혼동하게 한다. 더구나 하늘엔 구름도 있다. 하지만 그림 속 구름은 늘 한결같다. 매일 똑같은 구름은 박제된 동물이나 조화(造花)처럼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충남 태안 안면도 해변

 

가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구름'을 감상하다 보면 마음마저 평온해진다. 깊은 산이나 드넓은 바다, 고즈넉한 둘레길에서도 하늘을 보지만 드라이브를 하거나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곧잘 하늘을 본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집 거실에서 멀리 낙가산 위의 황금빛 구름으로 채색된 하늘을 한참 바라보면서 하루의 피로를 잊기도 한다. 

 

청주시 서원구 낙가산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도 무척 구름을 좋아해 여러 시와 산문을 남겼다. 그의 시 '구름'엔 이런 구절이 있다. ' 모든 세속의 것을 해방케 하는 / 가볍고 맑고 깨끗한 거품, / 구름은 정녕 더러워진 세상의 아름다운 향수 어린 꿈일까?'


헤세의 표현대로 구름이 모든 세속의 것을 해방케 하는지는 몰라도 조물주의 붓 터치로 그려낸 '그림 같은 구름'은 상념에서 벗어나게 할 만큼 묘한 감동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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