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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n 15. 2022

설악산에서 하늘을 보다

설악산 비선대 금강굴 트레킹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뷰'의 클래스가 달랐다.

2020년 산림청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산 1위에 꼽힌 설악산(1708m) 이야기다.

 

지난 주말 찾아 간 곳은 외설악 비선대와 신흥사의 부속암자로 장군봉 중턱에 있는 자연석굴 금강굴 구간이다. 이곳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사족(蛇足)이 될 것 같다. 각종 매체와 산행객들이 남긴 기록과 감상기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다만 창공에 매달린듯한 금강굴로 올라가는 길에 대해선 다소 식상하더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강굴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 아니다.(근데 해발 600m로 그리 높지는 않다)  

비선대 끝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금강굴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길이 험악하게 버티고 그 진땀길의 끝에는 놀라운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날따라 미세먼지 한톨없는 맑고 푸른하늘엔 구름이 다리를 만들어 봉오리와 봉우리를 연결하고 몽굴몽굴한 구름이 장군봉을 장식했다. 설악과 하늘의 조화다.


이곳에서 금강굴까지는 600m로 길다고 볼 순 없으나 줄곧 올라가는 코스라 쉽지않다. 더구나 원피스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도 걸을수 있는 부드러운 코스의 비선대에서 갑작스레 상급에서 최상급 난이도의 급경사 구간이 쉬지않고 이어지니 ‘지옥의 구간’이라는 말이 나올수 밖에 없다.

 

거친 돌 계단을 한발한발 올라갈때마다 숨이 턱밑으로 차올라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는 3km가 넘는다. 돌길 오르막을 간신히 통과하면 이번엔 경사각도가 80도 돼보이는 철계단이 인내력을 시험한다. 마치 극기훈련을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금강굴아래 전망대에 들어서는 순간 겸제 정선이 그린 듯한 ‘진경산수화’가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이 맛에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많지만 ‘금강굴뷰’도 어느곳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전망대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천불동 계곡을 중심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비교될 만한 봉우리들이 아우라를 내뽐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예고편이다. 이 곳에서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천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수직의 철계단을 오르면 뜬금없이 절벽 중간에 커다란 굴이 등장한다.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그곳에 도달하면 암자를 연상시키는 8평의 굴안엔 스님 한분이 양반자세로 앉아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이 판타지 영화의 한장면 같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도 한때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는데 그 당시엔 철제계단을 설치하는 것은 엄두도 못냈을테니 아마도 이 분은 락클라이밍하는 산악인처럼 밧줄을 타고 올라갔을 것이다. 어디 원효 뿐일까. 수많은 스님들이 마음속에 '화두' 하나를 끌어안고 밧줄 하나에 의지에 금강굴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굴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풍경은 감동 그 자체다. 새로운 개념의 아웃도어를 멋지게 차려입은 MZ세대들이 이곳에 올라와서 ‘인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고행길을 이날 동참했다. 평생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것 같다.




금강굴까지 올라오며 평소 급경사도 자신있던 나 역시 기진맥진하긴 했지만 이 곳에서 마음의 노폐물이 모두 씻겨내려간듯 깊은 평온을 느꼈다. 아마도 높은 석굴에서 경이로운 자연을 바라보며 헛된 욕망과 사사로운 잡념을 털어냈기 때문인가 보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금강굴 안에서 한참을 더 머물고 싶었다. 언젠가 또 온다면 숲이 파스텔톤으로 변하는 가을쯤 다시 올까 한다. 가을의 금강굴 앞엔 또다른 선경(仙境)이 펼쳐져 나의 메마른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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