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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May 23. 2022

섬진강변 벼랑엔 하늘길이 있다

전북 용궐산 하늘길과 섬진강길 트레킹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 사는 시인 김용택은 시 '섬진강'에서 "펴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드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시골집 앞 개울도 섬진강으로 흐른다.  

전북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해 경남 하동 화개를 지나 광양만까지 212km에 달하는 섬진강은 숱한 명소와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순창 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구간이 전북 순창의 섬진강 장군목 주변이다. 

 

그리고 이런 풍광을 마치 하늘에서 '드론'으로 내려다 보듯 공중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순창 용궐산 하늘길이다.

좌측으로 임실군 덕치면에서 흘러온 강물이 용궐산을 들이박은 뒤 순창군 적성면 쪽으로 내달리는 강줄기는 주변의 바위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마도 수직으로 깎아 지른듯한 용궐산 (해발 646m) 절벽에 잔도(棧道)를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풍광을 보길 원했을 터다. 



미세먼지 한 톨 없이 하늘까지 화창한 지난 주말에 용궐산 하늘길과 섬진강 장군목 일대를 걷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용궐산 하늘길은 개통한지 불과 1년 1개월 된 '신상길'로 작년부터 걷고 싶었던 길이다. 

언젠가 사진으로 보니 잔도의 나라 중국 장가계 천문산을 연상케했다. 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냈을 때니 용궐산 잔도가 무척 궁금했다.    

예전 용궐산은 산깨나 탄다는 등산객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거칠고 까다로운 산이었다. 거대한 바위벼랑이 주눅 들게 했으니 감히 도전하기 쉽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하늘길이 개통된 이후 이젠 정상으로 오르는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물론 잔도가 설치된 하늘길 초입까지 올라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잔도만 믿고 동네 뒷산쯤으로 얕봤다가는 진땀을 흘린다. 이 길에서 관광차 온 어르신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기진맥진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치유의 숲길 센터 뒤편에서 가파르고 거친 돌길을 40분 정도 오르면 그 때서야 하늘길이 등장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 벼랑에 지그재그로 설치된 잔도가 퍽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인다. 내 주변엔 한국관광공사가 드론으로 찍은 용궐산 잔도 사진이 모 일간지에  큼지막하게 실린 것을 보고 “그곳을 걷다가는 현기증이 나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 길을 걸어보면 오금 저릴 일은 전혀 없다. 스릴을 극대화해 관광객들을 사시나무처럼 떨게 하기 위해 유리잔도와 난간도 없는 널판지 잔도를 설치한 중국의 명산과 달리 용궐산 잔도는 단단하고 안전하게 매달려있다.

 

하늘길 7부 능선쯤에서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주변을 바라보면 스펙터클한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노래 가사처럼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 바로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작년에만 20만 명이 다녀갔을 터다.

 



아찔한 절벽 아래에 펼쳐지는 섬진강 장군목 일대 풍경은 '하늘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준다.

멀쩡한 바위 절벽에 구멍을 뚫어 잔도를 만든 아이디어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막상 잔도를 통해 하늘길에 오르면 관점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독려하며 이런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하는가 보다.   

하산길의 목적지는 하늘길에서 너무 멀어 흐릿하게 보이는 빨간 기둥의 현수교다. 다리 아래쯤에는 기기묘묘한 너럭바위가 흩어져 있고 그 중심엔 요강바위가 있다. 우린 그곳에서 기를 받고자 내려갔다.

잔도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그늘진 숲으로 이어진다. 단박에 한 조각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감쌓다.숲과 임도를 지나 섬진강으로 향했다. 이정표는 1.5km만 걸으면 된다고 쓰여있다. 


붉고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 양귀비꽃이 만발한 강변엔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따가운 햇볕이 쏟아졌다.

대체로 강은 급하지 않고 느릿하게 흐른다. 그래서 소설 속의 강은 '유장(悠長) 하게 흐른다'는 표현이 유독 많다.

하지만 섬진강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장군목은 꽤 너른 강폭이지만 유속이 빠르다고 한다. 아마도 강물이 용궐산을 휘돌아 하류로 빠져나가면서 물살이 급해졌을 것이다.

강에 다가서자 바위들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솜씨 좋은 석공(石工)이 마음 가는 대로 손질 한듯 기묘한 너럭바위들이 눈 길을 끌었다..

 

석공은 섬진강 거센 물살일 터다. 영겁의 세월 동안 만들어낸 작품이다. 세월과 드센 강물이 장군목 주변에 수제품 같은 너럭바위의 전시장을 꾸몄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요강바위다.


구멍이 뚫린 모습이 요강처럼 보이는 요강바위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높이 2m, 폭 3m, 무게 15톤에 달한다는 것을 보니 순창군에서 직접 재보고 달아봤나 보다. 

 

이름부터 요상하니 전설도 따라 붙는다. 난리 통에 요강바위 안에 숨어있다가 기적처럼 살았다는 사람도 있다. 요강바위에 앉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다. 때문에 이날도 기(氣)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우리 일행도 맑고 건강한 기운이 충만할 것 같았다.  

 

현수교를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자전거길로 연결된다. 바닥엔 붉은색 우레탄이 깔려있다. 쫄쫄이 같은 기능성 복장을 갖춰 입고 헬멧을 쓴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무리를 지어 쏜살같이 길을 달렸다. 길가엔 들꽃들이 마치 손을 흔들듯 바람에 아우성쳤다.  

이 길에서 2km를 걸으면 용궐산 하늘길의 들머리인 치유의 숲 센터로 향하는 징검다리가 마치 화살처럼 구부러져 놓여있다.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 강하고 미끈한 갑옷처럼 가슴에 거대한 바위를 드러낸 용궐산을 바라보았다. 우리 일행이 걸었던 잔도가 무늬처럼 새겨져있었다.

하늘길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섬진강에서 올려다본 용궐산, 그리고 하늘길 잔도와 섬진강 둘레길, 요강바위에 잡티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이런 입체적인 추억의 편린들이 조각처럼 뇌리에 담겼다. 5월 중순 주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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