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준 Jul 03. 2022

한여름 원시 숲이 그립다면 '금대봉'

'천상의 화원'이라는 수식어의 원조는 강원도 인제 곰배령이다.

이곳은 울창한 원시림과 모데미풀, 한계령풀, 구실바위취등 다양한 들꽃들이 자생하기 때문에 '천상의 화원', '산상 정원'으로 불린다. 단체로 가기엔 입장하기가 까다로운, 그래서 콧대가 제법 높은 코스다.

 하지만 곰배령 못지않게 이름도 요상한 야생화가 지천인 곳이 강원도  태백 대덕산 분주령과 금대봉이다. 지난 주말 '산상 정원' 금대봉을 다녀왔다. 5년 전 분주령을 다녀왔으니 대덕산 '천상의 화원'을 모두 섭렵한 셈이다.


분주령과 금대봉은 모두 대덕산이 품고 있지만 분위기는 천지차이라 전혀 다른 행성에 있는 속해 있는 것 같다.

 분주령은 일부 숲길도 있지만 대부분 탁 트인 능선에서 다채로운 들꽃과 호쾌한 전망을 감상하며 걷는 길이다.

늦봄에 걸었을 때 선괭이눈, 쥐오줌풀, 큰구슬붕이, 태백제비꽃, 홀아비바람꽃, 미나리냉이 군락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 멀미가 날 정도였다.


반면 이번에 다녀온 금대봉은 백두대간 구간 중 하나로 걷는 내내 밀림을 헤집고 다니는 듯한 원시 숲의 생태가 살아 숨 쉬는 길이다.

봄꽃은 지고 여름꽃은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준비 중이다. 그러니까 이맘때쯤이면 '천상의 화원'은 새단장을 하기 직전이다. 7월 중순쯤이면 새로 핀 야생화가 마음을 홀릴 것이다.

그래도 노루오줌, 산꿩의 다리, 모시대, 둥근이질풀, 죄오줌풀, 범꼬리 등이 수풀 속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출발 전날 코스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 검룡소 분소에 문의했더니 이틀 전 대덕산 일대엔 70mm의 장대비가 내렸다고 한다. 길이 질척거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도심엔 섭씨 34도의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쳤지만 금대봉은 한낮 기온 28도로 낮았다. 아마도 고도차 때문일 것이다. 

백두대간으로 연결되는 금대봉 숲길은 속리산 문장대(해발 1043m) 보다 높은 해발 1400m 고지를 걷는다.  무엇보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인데도 빽빽이 들어선 키 큰 나무에 햇볕이 가려 숲길은 어둠침침했다.

길 양쪽으로 솟은 나무들은 서로에게 기대려는 듯 어깨는 맞댄 채 터널을 이루며 길을 덮었다. 숲길로 들어서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 마치 에어컨을 약하게 세팅해 놓은 것 것처럼 냉기가 가득했다. 한여름 더위를 충분히 잊을 수 있는 트레킹이다.

 


오르막길을 거쳐 금대봉 정상에서 한 숨을 돌리고 완만하고 옹색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영화 '쥐라기 월드'에 등장하는 태곳적 숲이다. 그때로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다. 

이틀 전 내린 비로 알싸한 향이 은은하게 번지는 숲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명징하게 들린다.


고지대의 숲은 인공구조물이라고는 가끔씩 서있는 이정표밖에 없는 원시 그대로의 생태를 지녔다. 깊은 적막에 짙은 외로움이 배어나는 듯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싱싱한 자연이 함께 있어 결코 외롭지 않은 길이다.

 그 길엔  나뭇가지 사이로 드믄드믄 쏟아지는 햇살, 한 자락 서늘한 바람, 하늘 높이 올곧게 서있는 갈매나무와 일본입갈나무,  고생대부터 존재해 생명력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양치식물, 초록의 숲에 숨어있는 앙징맞은 들꽃이 금대봉 탐방로의 매력을 보여준다.



검룡소와 창죽령 삼거리에서 검룡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을 거쳐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까지 걸으면 3시간 30분 코스가 된다. 검룡소 주변 외에는 영롱하게 지절대는 계곡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걷는 내내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다.


들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분주령 코스가 화려하다면 금대봉 코스는 원시적인 생태의 전형을 보여주는 소박하고 고즈넉한 길이다.  한여름에 걷는다면 분주령 보다 금대봉 탐방로다. 



작가의 이전글 '구름'이라는 소소한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