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최근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직지심체요절 공개에 즈음해 새삼스레 박병선 박사의 행적에 대해 두 차례에 걸친 관련기사로 팩트체크를 하며 고인을 ‘들었다 놨다’하고 있다.
난데없이 프랑스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박병선 박사에 대한 영웅신화는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병선 박사가 마치 영웅이 되길 원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역만리에서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던 고인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언론매체와 블로그 등에 박병선 박사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 세계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칼럼을 썼던 사람중 한명으로 조선일보의 뜬금없는 팩트체크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는 프랑스국립도서관측이 세계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가치를 진작에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단돈 180프랑(지금 돈 24만원)에 낙찰받은 보석상이자 고서수집가인 앙리 베베르가 팔려고 내놨으나 다른 한국채 80종을 사면서도 이 책은 사지 않았다. 직지가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인지 몰랐다는 얘기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직지를 소장한 것은 1943년 앙리 베베르가 숨지면서 그의 유언에 따라 도서관측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증받는 책을 공들여 관리했다고 보긴 어렵다.
조선일보 기사는 “1952년 ‘직지’에 한국본 장서 번호 ‘109번’을 붙여 등록한다. 그만큼 체계적으로 도서를 분류해 관리해 왔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는 했을지 몰라도 책을 빌린 경험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단지에서 운영하는 10평짜리 도서관도 아무리 기증받은 낡은 책이라도 장서번호는 모두 붙인다. 체계적으로 책을 관리하는 것과 책의 가치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황당한 것은 학계·문화재계 여러 인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인데 나서서 정정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 기사에)“용기를 내줘 감사하다”고 했다>는 내용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대체 그 학계 문화계 인사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들은 진작에 사실관계를 알았는데 그동안 침묵했다는 말이 된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촉탁직원이었던 박병선이라는 서지학자가 두려워서 인쇄문화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데 알면서도 모르는 체 했을까. 정말 그렇다면 그들은 학자적 양식이 일도 없는 사람들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세계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복사본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박병선 박사가 생존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그가 임종한 뒤 12년이 지난 뒤 직지심체요절 공개되자 새삼스럽게 “고통스럽다 해도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그의 업적을 폄하하고 있는 이유다. 대체 뭐가 고통스럽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사실관계는 철저하고 설득력있는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에서만 나온다.
조선일보 기사의 문맥을 읽어보면 주로 프랑스 측(도서관 포함)의 주장만 실려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이를 반박할 사람은 당시 그 도서관에서 근무하다가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에 매달렸다가 쫓겨난 박병선 박사 밖에 없지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평생 미혼으로 지내며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 도서 연구와 반환에 매달렸던 박병선 박사에겐 역사학자이자 서지학자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1972년 세계 도서의 해 전시회가 끝난 뒤 직지 흑백사진을 갖고 방한해 전문가들을 의뢰해 두 차례나 직지가 정말 금속활자본이 맞는지 감정하는 작업을 벌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국내 학자중에 그만큼 헌신한 사람이 있나.
하지만 조선일보는 그의 사후에 한쪽 당사자인 프랑스 학계와 도서관측, 국내 일부학자의 일방적인 의견만 제시하며 학자적 양심과 공로를 허물어트리고 있다. 그러면서 그 기사를 쓰는데 용기를 낸것처럼 은근히 자화자찬하고 있다. 하늘에 있는 박병선 박사가 안다면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그는 멀리 떠났지만 여전히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