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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May 18. 2023

1억5000만년전 공룡의 땅을 걸으며

경남 고성 남파랑길 33코스 상족암 공룡길 트레킹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주말, 경남 고성의 ‘남파랑길 33코스’와 겹친 상족암 공룡길’을 걸었다. 

‘남파랑길’은 ‘남쪽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탑까지 남해안을 따라 연결된 총 90개 코스 1470km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충청 내륙지방 사람들에겐 동해와 서해라면 몰라도 남해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도로 인프라가 종횡으로 깔려있어 막상 가보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지만 왠지 멀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동파랑길’이나 서파랑길’에 비해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남파랑길은 초행은 아니다. 코로나19 직전 1코스(오륙도~중리바닷가)를 걸었으니 이번 ‘남파랑길 33코스’는 두 번째다. 33코스(18.5km)는 경남 고성 임포항~하이면사무소가 풀코스지만 '마이힐링로드'는 이날 소을비포진성에서 상족암까지 8km를 걸었다. 


아침 일찍 청주를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화창했다. 하지만 고성에 접어들자마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마치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듯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빗속에 장거리를 걷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번 비는 그리 싫지 않았다. 소을비포진성에서 맥전포항까지 4km는 포구나 농로를 걸어야 한다. 평소처럼 화창한 날씨에 햇볕이 강렬했더라면 몹시 힘들었을 거다. 때마침 이슬비가 내려 시원하기도 했지만 비를 품은 바닷가 풍경도 색다른 정취를 보여줬다.


맥전포항은 한려수도의 보석인 ‘사량도’ 선착장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 보리밭이 많아 붙여진 맥전포항에서 사량도는 바다 건너 지척이다. 길을 걷다 보면 섬 산행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지리산(池里山)과 칠현산의 머리 위에 운무가 잔뜩 낀 사량도가 눈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 몽환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계절이 산을 바꾸는 것처럼 바다도 날씨에 따라 팔색조처럼 변한다.


맥전포항에서 상족암까지 4.5km는 ‘공룡길’이다. ‘길 속의 길’처럼 남파랑길 33코스에 속해있다. 공룡길은 걷는 것은 중생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자 '자연박물관 탐방로'라고 할 수 있다.

바닷가 데크길에서 보이는 해식애 암벽은 수성암(水成岩)으로 시루떡처럼 겹겹이 층을 이뤄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전북 부안 변산반도 채석강을 연상시키는데 규모가 훨씬 커 채석강이 예고편이라면 상족암은 본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상절리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있는 오솔길 테크로드를 넘으면 해변에 금계국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내고 남쪽 해변 특유의 야자수 나무도 간간이 보여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청소년수련원앞의 아늑한 몽돌해변에선 젊은 가장이 자녀들과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테크로드에서 바라본 주상절리에는 바위틈을 뚫고 나무가 바닷바람에 산뜻한 푸른 잎을 흔들었다. 강인한 생명력이 놀랍다. 십리가 짧지는 않지만 감탄사를 남발하다 보면 어느새 길의 하이라이트에 와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인생샷’을 찍는다. 암벽과 암반이 거대하고 기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내려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하다. 이날 트레킹의 종착지인 천연기념물 제411호 상족암이다.

 

상족암은 암벽 깊숙이 굴이 뚫려 있고 굴 안은 파도에 깎여서 생긴 미로 때문에 탄성을 자아낸다. 굴 안에서 바라본 바다가 일종의 포토존이다. ‘물 때’를 못 맞추면 굴에 들어갈 수도 없어 만조 전에 사진을 찍으려 여러 명이 줄을 서있었다. 


바다와 암반이 평형을 이룬 굴속에서 멀리 섬들이 점점이 떠있는 바다를 보면 영화 '쥐라기 파크'의 한 장면처럼 공룡이 등장할 것 같다. 굴 밖에 평탄하게 있는 암반층엔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1억 5000만 년 전에 호숫가 늪지대였던 이곳에 집단으로 서식했던 공룡들이 뛰어놀면서 발자국을 남겼고 그 위로 퇴적층이 쌓이고 파도가 씻기면서 발자국이 드러난 거다. 공룡은 가끔 영화 속에만 등장할 뿐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흔적은 영원히 남았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암벽과 암반에서 바다를 보면 잠시 상념에 젖게 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공룡의 흔적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지만 1억 년이 지나면 그땐 누가 이 땅의 주인이 될까. 상족암 산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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