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의 아름답고 유서 깊은 걷기길을 걷는 트레킹 카페를 운영하다보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회원은 대략 1000명 정도. 대부분은 자연과 호흡하고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것이 좋아 가입하지만 때로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가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거에 출마하는 배우자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가입하는 경우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더러는 영업을 목적으로 가입해 카페 홈페이지에 특정 상품을 홍보하거나 운영자의 연락처를 알아내 트레킹을 가는 날 버스비를 협찬해 줄테니 건강보조식품 전시장을 들렸다 가자는 사람도 쾌 있다.
그런데 최근엔 회원에 가입한뒤 동정심을 유발하는 글을 올려 돈을 갈취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다.카페 홈페이지에 그럴듯한 ‘가공의 어린딸’까지 앞세워 장문의 편지로 눈물샘 콧물샘을 자극하며 회원들에게 구걸하는 인터넷 가짜거지들 말이다.
이들의 편지엔 공식이 있다. 고열로 신음하는 불쌍한 어린딸을 두었으며 신용불량자인 싱글남 아빠는 험한일을 하다가 다쳤고 그래서 단 몇푼이라도 도와준다면 나중에 꼭 갚겠다는 내용이다.
단몇푼이라도 보내주셔서 딸래미 밥이라도 한끼사먹이도록 도와주시면 죽을때까지 감사한 은혜 잊지않겠습니다...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을 주신분이 있으시다면 쪽지로 계좌번호남겨주시면 당장 지금 딸아이 밥만이라도 사먹이고 돈을벌어서 바로 다시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정말 곤경에 처해있을수도 있지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구구절절 안타까운 사연이 적혀있는 편지를 읽다 보면 현혹될 수도 있다. 혹시 내가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닌가 자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뻔하다. 이런 인간들은 이름도 전화번호도 절대 안남긴다. 오로지 계좌번호(새마을 9003-23-2350291)만 남기고 쪽지로만 연락하라고 한다. 그리고 편지만 올리고 바로 카페에서 탈퇴한다. 식상한 레파토리에 뻔한 수법이다. 전형적인 사기꾼 행각이다.
미디어엔 선행에 끊임없이 실린다. 이를테면 어린동생에게 치킨을 먹이고 싶지만 찢어지게 가난해 애만 태우는 소년가장에게 무료로 제공한 치킨집엔 ‘돈쭐을 내는’미담이 잔잔한 화제를 모은다.
하지만 이런 선행을 악용해 한푼이라도 챙기려는 사기꾼들도 의외로 많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때론‘연민’을 느껴야 할 상황에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불신사회’가 낳은 씁쓸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