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는 퇴계 이황이 있지만 경남엔 남명 조식이 있다. 퇴계와 동시대에 살면서 쌍벽을 이뤘던 조선 성리학의 거두 남명이 66세 때인 1566년 화림동계곡을 유람하며 남긴 글이다.
벼슬을 마다하고 경남 합천과 산청에 살면서 임금(명종)을 직접 겨냥한 상소문으로 현실정치를 모질게 비판해 왔던 남명도 화림동 계곡 경치엔 넋을 잃고 ‘세상사 얘기하지 말고 산수(山水) 이야기나 하자’고 한다.
하긴 연암 박지원도 “한양선비들이 무더운 여름날 화림동계곡에서 탁족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더니 과연 화림동이구나”라며 감탄했다니 공감은 간다.
지금도 물 좋고 산 좋은 곳엔 어김없이 별장이 들어서는데 옛날이라고 다를 리 없다. 인조 때인 1640년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가 함양 서하면 봉전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천의 암반 위에 억새로 누정을 짓고 ‘거연정(居然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의 한 대목인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따온 말로 ‘자연 속에 머무르다’는 뜻일터다. 지금은 후손인 전재택이 고종 9년 때인 1872년 억새 누정을 헐어내고 지은 것이다.
거연정은 ‘선비문화탐방로’로 불리는 화림동계곡길의 들머리다. 지난 주말 이 길을 걷기 위해 함양으로 내려가는 차장엔 빗줄기가 오락가락했다. 그 전날 충청권엔 양동이로 쏟아붓듯 비가 내렸다. 기상청예보를 보니 함양은 당일 새벽 5시까지 비가 뿌렸다. 자칫하면 길을 걷다가 계류에 떠내려갈 판이다.
오전 9시쯤 함양 봉전마을에 도착하니 어디선가 굉음이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계곡 쪽을 살펴보니 거연정 주변에서 나는 물소리였다. 수위가 상승한 계류가 정자 주변의 바위와 부딪치면서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계곡 쪽으로 내려가 바위섬에 버티고 선 정자로 향하는 다리 위의 풍경은 장관(壯觀)이 따로 없다. 하긴 유학자들로부터 영남의 승경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받은 거연정이다. 여기에 거칠게 흐르는 물까지 가세하니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날엔 옛 선비들도 잠시 책을 덮고 술추렴 하면서 풍경에 취했을 것이다.
탐방로는 ‘팔담팔정(八潭八停)’으로 유명하지만 1코스의 거연정 다음 정자는 영귀정, 동호정이다. 동호정으로 가는 길은 그늘 짙은 계곡옆 테크로 말끔하게 정비돼 걷기가 편하다. 길옆 산비탈에는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계곡으로 흘러갔다. 두런두런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데 영귀정은 찾을 수 없었지만 계곡너머 옥녀담 옆에 커다란 동호정이 보였다.
정자 앞은 영가대, 금적암, 차일암 등 선비들이 체통 내던지고 기생들과 풍류를 즐겼다던 넓은 바위가 있지만 이날은 모두 물속에 잠겼다. 이런 날 물은 화끈하게 흐르지만 대신 선비들의 애환이 담긴 바위가 볼 수 없다.
동호정에서 농월정으로 가는 길은 대체로 흙길이다. 멀리 운무(雲霧)가 잔뜩 낀 지리산 능선을 배경으로 산비탈에 펼쳐진 사과밭도 지나고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적막한 마을도 거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한 장면처럼 마을엔 주민은 보이지 않고 고양이들만 나그네에게 말을 걸었다.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울창해 솔내음이 가득한 숲길을 지나면 좌측에 큰 다리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헷갈렸다. 이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엉뚱한 곳에 서있어 잠시 우왕좌왕했다. 탐방객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편한 대로 세워놨기 때문이다.
2015년에 새로 지은 농월정은 정자보다도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특히 농월정을 가기 전에 만난 초등학교 운동장만큼이나 크고 평평한 바위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바위를 중심으로 상류와 하류가 15도 각도로 꺾어진 좌우측에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몬테나주의 강처럼 우뚝 솟은 산을 휘감아 돌며 하류를 향해 거칠게 내달리는 계류가 일품이다. 이곳에서 플라이낚시를 하면 고기가 잘 잡힐지도 모른다.
농월정
암반에 앉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쏜살 같이 흐르는 물 길을 바라보았다. ‘불멍’에 빠진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분위기에선 ‘물멍’도 시간가는줄 모른다. 농월정과 그 주변엔 이미 많은 탐방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농월정에 앉아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달을 희롱했을 터다.
함양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화림동계곡은 그 옛날 선비들에게 시(詩)와 뮨(文)을 논했던 학문의 전당이자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세월로 낚은 ‘무릉도원’이었지만 지금은 팍팍한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