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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Jun 26. 2023

초여름 '연화도'엔 수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남 통영 연화도 트레킹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주인공인 잭니콜슨과 헬렌헌트가 아카데미상 주연상을 동반 수상한 로코(로맨스코미디)의 제목이다. 초여름 연화도 트레킹에도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다. 날씨, 꽃, 풍광이 톱니바퀴처럼 조화롭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마힐로 회원들이 연화도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한 산착장의 식당에서 다소 당황스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촌밥상’이라는 식당에서 마구잡이로 예약을 받는 바람에 일대 혼란을 겪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얄팎한 상혼이지만 이 또한 ‘연화도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애피타이저 같은 에피소드가 될 것 같다.



지난 주말 짙은 푸른 바다 위에 연꽃처럼 떠 있는 섬 경남 통영 ‘연화도’를 다녀왔다. 하지만 연화도엔 연꽃이 없다. 대신 겨울엔 동백꽃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여름엔 곱게 핀 수국이 환상적인 싱그러운 섬이다.


사실 여름에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한다면 몰라도 섬 트레킹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마를 피해 일정을 잡으면 이번엔 작열하는 태양에 고온다습한 날씨가 섬 투어를 괴롭힌다.


더구나 연화도는 연화사~보덕암~출렁다리~우도를 잇는 길은 모두 나무그늘이 없는 콘크리트길이다. 그렇다고 여름에 가지 않으면 이 섬의 자랑거리인 수국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초여름 연화도 걷기 여행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번 연화도 트레킹은 하늘이 도왔다. 무지막지한 더위도 소낙비도 없었다. 티끌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하늘이 쾌청했지만 때 이른 더위는 이날만큼은 조용히 물러가 어딘가에 숨어있고 대신 시원하고 상큼한 바람이 반겼다.


여기에 연화사와 보덕암으로 이어지는 수박만 한 크기의 수국은 웨딩로드를 장식한 꽃처럼 길가에 도열해 짙은 향을 내뿜었다. 수국에 그윽한 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숫하게 봐왔던 수국이 시시해 보일만큼 크고 화려하며 싱싱한 자태를 뽐냈다. 폰카로 꽃을 찍는 탐방객들의 표정은 화사한 수국처럼 밝게 빛났다.



하지만 수국이 연화도의 모든 것은 아니다. 진정한 매력은 동쪽 바다 끝 출렁다리 너머에 있는 용머리해안에 우뚝 솟은 절벽이다.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듯 길게 뻗어있는 용머리 절벽 위에 올라서면 그 누구라도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뱃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했던 그리스 신화 속의 사이렌처럼 풍성하고 탐스런 수국에 이끌려 연화도를 찾아와 용머리해안의 절경을 마음속에 담고 돌아간다.


연화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아침에 들어와 저녁 배로 나가든가 1박을 하는 것이 좋다. 배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다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해발 212m 연화봉 정상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아미타대불을 만나거나 국내에서 가장 긴 보도교를 통해 원시상태의 우도까지 돌아보려면 넉넉하게 5~6시간은 걸린다.



연화봉 정상에서 아미타대불앞에 세워진 고산 혜원스님의 경탄송(警嘆頌) 비석의 글귀를 읽어보았다.

 

“가진 것도 버리고 생각을 쉬어라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 버릴 것이 없을 때

모든 고통은 씻은 듯이 없으리라.

 

너나없이 이곳에 오신 이는

주저함이 없이 모든 생각을 쉬고

처음마음으로 돌아가서

원하는 바를 이루시기 바라노라”

 

마음에 와닿는 글이다. 버스와 여객선을 번갈아 타고 그 먼 길을 찾아와 연화도를 돌고 나면 몸은 좀 피곤하지만 복잡하고 산만해진 머리는 ‘리셋’ 한 것처럼 초기화된 것 같다. 온갖 잡념에 묵직했던 마음이 한동안 깃털처럼 가벼워지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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