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요계는 온통 ‘임영웅’과 ‘BTS(방탄소년단)’가 장악하고 있다. 미디어엔 이들의 소식이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다. 아마도 뉴스검색량을 보면 이들이 최상위권에 오를 것이 틀림없다.
그나마 ‘K-팝’으로 세계적인 보이그룹으로 부상한 BTS는 일부 멤버가 군입대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임영웅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며 숱한 에피소드를 양산하고 있다.
아예 행사를 뛰지 않는 클래스가 다른 트롯가수, 대형 공연에도 순식간에 티켓 매진, 미국 LA까지 쫓아가서 공연을 보는 아줌마 팬 군단, 사실 여부를 떠나 500억원의 소속사 이적료를 거부했다는 풍문, 여기에 임영웅의 노래에 감동해 삶의 의미를 찾은 한 팬이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지만 거부했다는 놀라운 소식도 방송을 탔다.
무명가수 시절 월 수입이 30만원 밖에 안돼 군고마장수를 비롯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만큼 고생한 임영웅으로는 선 인생역전은 물론 누구도 넘보기 힘들 만큼 인기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임영웅과 BTS는 분명히 한 시절을 풍미(風靡)하는 톱스타가 틀림없다. 현 시점에선 가요계의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그런데 ‘한 시절’이 아니라 ‘한 시대’로 범위를 넓힌다면 어떨까.
이들은 한국 가요계에 획을 그은 빼어난 가수(보이그룹) 이긴 하지만 이들을 역대급 가수로 평가하긴 이르다. ‘뇌피셜’이 아니라 국내 내로라하는 대중음악 평론가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유튜브 채널 ‘음악 아저씨 임진모’와 제작사 오간지프로덕션을 통해 공개된 국내 대중음악 평론가 39명이 뽑은 ‘우리 시대 최고 가수’ ‘톱 10’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국민가수다.
조용필이 1위, 이미자가 2위, 김광석이 3위 의외로 나훈아가 4위, 아이유가 5위다. ‘문화대통령’이라는 찬사까지 들었던 서태지는 제외됐다. 젊은 나이에 가요계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큼 성공했지만 너무 일찍 무대를 떠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톱 10’은 1960년 이후 60여년간을 기준으로 했으니 시대를 초월한 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맨 꼭대기에 위치한 조용필은 설명이 필요 없는 가수다.
평론가 조해람은 “한국이 보이저호를 쏘면서 단 한 곡만 실어야 한다면 조용필 노래 중 골라야”한다고 했다는데 나도 동감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조용필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고교시절 처음 들었던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
YPC홈페이지 캡쳐
공고를 다녔던 나는 자격증 실기시험 준비를 위해 밤늦게까지 학교 실습실에 있다가 이 곡을 듣고 한동안 푹 빠졌다. 이 곡은 여러 버전으로 편곡됐는데 1980년 버전의 곡은 애조 띤 가사에 빠른 템포로 내 귀에 꽂혔다. 일본에서도 대히트해 일본판 기네스북에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외국가수 노래’다.
그 이후 조용필은 40여년간 ‘가왕’이었다. 10년 단위로 정상에 오른 가수도 대단하다. 하지만 그는 20세를 전후로 출발해 70대 중반인 지금까지 꾸준히 전국투어를 이어가고 잠실주경기장에 7번(그중엔 비가 쏟아졌지만 만석을 기록한 공연도 있었다)이나 팬들로 가득 채울 정도라면 ‘전설’이다.
가수에게 히트곡은 롱런의 생명줄이다. 유명해도 히트곡 없는 가수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가끔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예상외로 단독 콘서트를 자신만의 곡으로 채우는 가수는 무척 드물다. 절반 이상 남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대부분이다.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모 여자 가수 콘서트를 간 적이 있다. 90분간 콘서트에서 여러 노래를 열창했는데 자신의 노래는 한 두곡이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공연을 마칠 즈음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치자 그 가수의 최대 히트곡이 나왔다는 점이다. 얼마나 히트곡이 없으면 저 노래를 앙코르곡으로 부를까 하는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공연장에 갈 때마다 히트곡이 많은 가수는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조용필만큼 히트곡이 차고 넘치는 가수는 없다. 자신의 대표곡만으로도 공연을 하려면 2박 3일은 걸릴듯 하다. 그래서 그의 공연엔 게스트도 거의 없고 시간만 질질 끄는 멘트도 없다.
조용필은 트롯(허공), 팝(정글 시티), 발라드(슬픈 베아트리체), 민요(한오백년), 락(미지의 세계), 오페라(도시의 오페라) 등 노래의 장르도 다양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음악적 실험을 거의 다 한 인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그가 다채로운 장르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진성’, 탁성’, ‘가성’을 모두 구사할 수 있는 가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용필은 올해 73세다. MZ 세대에겐 할아버지뻘이지만 여전히 대중을 열광시키기 위해 실험적인 시도를 추구하는 현재진행형 아티스트다. 무엇보다 이 시대 최고의 가수지만 “아직도 저평가된 진정한 가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