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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Oct 30. 2023

천등마을 '스펀'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시니컬하고 우수 띤 표정으로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홍콩배우 양조위의 숨결이 느껴지는 폐광마을 골목길. '꽃보다 할배' 대만편에서 신구와 이서진이 소원을 담아 천등을 날린 시골간이역. 고대 이집트 네페르티니 여왕의 얼굴을 닮은 기이한 바위가 있는 해변. 장개석 전 대만총통이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북경 자금성에서 가져온 17만 점의 보물을 보유한 박물관. 



지난 20일 마이힐링로드 회원들과 다녀온 지우펀, 천등마을인 스펀, 야류지질공원과 대만고궁박물관이다. 타이페이 인근 양명산과 화련 태로각협곡 트레킹 사이에 하루 일정을 잡은 대만 필수 관광투어다. 


특히 지우펀과 스펀은 평일이고 밤이었으며 하늘이 열린 듯 온종일 비가 쏟아지는데도 세계 최대 번화가인 뉴욕 타임스퀘어보다 더 많은 해외관광 인파가 몰렸다. 

 

일본 큐슈에 '유후인'이 있다면 대만엔 '지우펀'이 있다. 두 곳의 공통점은 한물간 마을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화려하게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한때 금광갱도가 있다가 폐광된 해발고도 300m의 쇠락한 산간마을 지우펀은 1989년을 기점으로 마을의 운명이 바뀐다. 이 해에 개봉된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 때문이다.


허우 샤오셴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지우펀을 배경으로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겪는 가족의 아픔과 상처를 기록한 영화다. 그 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지우펀 역시 영화와 함께 유명세를 타면서 벙어리 사진사로 열연한 홍콩배우 양조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많은 대만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우펀이 국제적인 명소가 된 것은 2002년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의 배경이 지우펀이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지우펀은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곳이다.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구분(九分/지우펀)'이라는 글귀가 쓰인 '홍등'때문이다. 구분은 9 식구라는 뜻이다. 오래전 9 가구만 살던 쇠락한 폐광마을은 영화 두 편 때문에 밤낮없이 붐비는 지구촌 관광지가 됐다. 


이날 오후에 찾은 대만 서쪽해변에 자리잡은 야류지질공원은 얼마나 비바람이 거친 지 날씬한 회원들은 바다 위로 날아갈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곳을 가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다. 유네스코가 자연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보존 가치가 있고 그 오묘함은 신의 작품이라고 할 만큼 멋진 풍광이었다.


여인네 젖가슴이나 송이버섯 같은 돌출암석도 신비했지만 고대 이집트 네페르티티 여왕 머리를 닮은 현무암 앞에는 거친 비바람에도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설만큼 인기였다. 그 여왕의 가느다란 목이 용케 태평양의 거친 태풍을 견딘것이 신기했다.



가장 짧은 시간이었지만 탐방객들이 가장 감동을 느낀 곳은 스펀이 일 것이다. 핑시선 기차가 서는 조그만 기차마을 스펀(十分)은 소원을 적어 천등(天燈)을 날리는 간이역이다.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바로 그 마을이다.


스펀에 도착하기 전에 궁금했다. 어둠이 짙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폭우가 쏟아지는데 과연 천등을 날릴 수 있을까. 하지만 기우였다. 천등은 장대비를 뚫고 하늘높이 솟구쳤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스펀은 2011년 개봉해 중화권은 물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대만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젊은 연인이 천등을 날린 그 철로에서 나도 회원들도 천등을 날렸다.


굵은 장대비가 사정없이 떨어지는 그 악천후에도 간절한 마음을 담은 천등을 띄우는 마힐로 회원들은 무척 진지했다. 또 저마다의 소원을 천등에 쓰고 하늘로 띄울 때 그 감격스러운 얼굴도 잊지 못한다.


'영화'와 '스토리텔링'은 사람이 떠나고 죽어가는 마을도 살려냈다. 바다 건너 멀리 찾아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 때론 삶의 활력을 찾는다. 여행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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