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181818개월.
언제 뒤집을까?
언제 앉을까?
언제 걸을까?
이런 기다림의 연속이었는데,
스리에게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니
오래 참음의 연속이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며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18개월.
18개월 스리와의 하루는 이러하다.
아침에 눈뜨기 전부터 으앙~
기저귀가 축축하다고 으앙~
기저귀 벗긴다고 으앙~
자기가 입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으앙~
도와준다고 으앙~
다시 벗기라고 으앙~
또 벗겼다고 으앙~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아침인데,
우리 집은 축축하다 못해 장마철이다.
결정적으로,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애미 때문에... 폭발.
‘너도 모르는 네 마음을 애미가 어찌 아나요?’
애미도 울고 싶다.
아니, 그냥 어디 무인도로 사라지고 싶다.
하루라도 울음소리를 안들을 수만 있다면!
점점 더 스스로 하고픈 것들도 늘어난다.
마음과 달리 따라주지 않는 신체.
18개월 아기의 하루는 그렇게 벅차다.
그 모든 답답함과 억울함을,
짜증과 눈물로 애미에게 쏟아낸다.
애미는 예쁜 말만 해주고 싶었다.
부정어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위험하니 하지 않아요.”
“울지 않아요.”
근데 급하면?
“안 돼! 하지 마!!”가
튀어나오는 것이 본능이다.
몸과 마음이 피곤할수록, 본능에 지배당한다.
교육전문가들은 왜?
“안 돼!”를 하지 말라고 했을까.
그게 가능한 것인가?
그들도 분명 “하지 마!”하면서 키웠을 텐데...
그제서야 내가 놓친 한 가지를 발견한다.
긍.정.강.화.
이걸 빼먹었네?
“안 돼” 든
“하지 않아요.” 든
결국 둘 다 스리입장에서는 부정어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문제였다.
그다음이 있어야 했다.
서랍을 열고 매달려서 구경 중인 스리.
“안 돼! 매달리지 않아요.”
스리를 안아서 바닥에 앉힌다.
애미가 안는 순간, 시작된 울음.
서랍을 빼서, 스리 앞에 내려놓는다.
“이렇게 꺼내서 보자.
매달리면, 서랍이 떨어져서 발이 다칠 수 있어.
... 그렇지. 잘했어. “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울어대는 18개월 스리.
“스리가 크느라고 힘들구나.”
“하고 싶은 게, 맘대로 안 돼?”
“너도 답답하지. 이걸 원하니? 저걸 원하니?”
“... 아, 다 아니야...?”
애미는 최대한
스리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 주려고 애썼다.
행동을 제한할 때는, 대안 제시를 함께했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스리는 여전히 종일 울어댔다.
모든 시기는 지나간다.
18개월도 어느 순간 끝이 난다.
다만
24개월, 36개월...
강도 높아진 스리의 울음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애미도 자라 있을 것이다!
(자라 있어야만 해~~ 애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