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스리의 저녁 루틴.
저녁식사 후 한 시간쯤 놀이를 하고,
양치하고 방에 들어가서,
잠자리 독서를 한다.
그리고 9시쯤 취침.
어느 날 놀이시간에 책을 본 스리.
8시가 되어 양치하고 방에 들어가자고 하니,
책을 들고 와서는, 또 읽으란다.
양치하기 싫은 핑계 꺼리다.
양치하고 방에 들어가서 보자고 했더니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
이쯤 되니 스리의 눈물은 예상이 가능하다.
“양치 먼저 하면, 책 많이 읽다 잘 수 있어.
지금 이거 읽으면, 양치하고 그냥 잘 거야.
방에 가서는 책 안 읽을 거야. 괜찮아? “
지금 당장 읽겠단다.
스리가 선택한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책을 읽기 시작.
그렇게 한 권을 읽고 양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슬슬 눈치를 보며 책을 꺼내오는 스리.
“스리가
책 하나 읽고 양치하고, 자는 거 골랐지?
스리가 선택했으니까 약속 지켜.
그냥 자는 거 골랐으니 자자. “
으앙~~ 예견된 눈물.
울음이 길어지면 어찌할지 생각하며
재울 준비를 한다.
그런데
슬프지만 잘 준비를 하더니 그냥 자는 스리.
하...
선택지를 주는 훈육은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준 선택지가 바람직했느냐?
몇 번 해봤는데, 결과는 늘 대성통곡.
포기한 것의 가치를 따져볼 여유 없이
하고픈 것은 당장 해야 하는 두 살.
그런 의미에서 내가 주는 선택지들이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선택처럼 보였지만,
스리 입장에서는 ‘보상’이 아닌 ‘페널티’였다.
“이걸 하면, 저건 못해.”
“지금 고르면, 나중은 없어.”
더 좋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덜 힘든 쪽을 고르라고 한 셈이었다.
스리도 최상을 고르는 연습을 해야 하듯
나도, 좋은 선택지를 주는 연습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