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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꿈은 이룰 수 없기에 꿈일까요?

by 김민지

"엄마!! 나 뮤지컬 배우 할래 학원 보내줘!"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해서 대학 가라, 어중간한 재능이 제일 위험한거야"



영화 <레미제라블> 중

예중을 다니며 레슨실, 학원, 학교만 오가던 모범생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예고에 떨어졌다. 선택지는 두 가지. 예고 재수를 하거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거나.


근데 동급생들보다 늦게 대학에 가고, 새내기 시절을 나보다 먼저 누리는 걸 어떻게 봐. 그땐 인생의 타임라인이 1년씩이나 늦어지는 게 죽어도 싫었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나는 반강제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길 선택했다.



입학하자마자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 레미제라블이었다. 엄마가 먼저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며 나와 내 동생을 억지로 끌고 재관람을 했다. 영화를 본 이라면 잘 알겠지만 레미제라블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가 쉬지 않고 이어진다. 모든 대사가 노래라는 소리다. 예고에 떨어지고 예술 영화는 처다도 보기 싫었는데. 한 번 나를 버린 예술 판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굳게 다짐했건만, 때마침 접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는 신선한 충격이자 '너 이래도 안 돌아가?' 손짓하는 것 같았다.


영화는 1832년 파리에서 벌어진 6월 봉기를 배경으로 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든 바로잡겠다는 젊은이들의 피끓는 열정과 영화 특유의 어두운 색감이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을 더했다. 가장 좋았던 건 영화 내내 이어진 노래가 배우들의 라이브였다는 점이다. 휴 잭맨 (장발장 분)의 떨리는 음성, 빗나가는 음정들까지도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았던 건 이 모든 음악적 요소를 뚫고도 관객에게 전달된, 날 것 그대로의 감정 때문이겠다.


수많은 명곡들을 자랑하는 이 영화. 가장 많은 이들이 최애 수록곡으로 꼽는 넘버이자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노래로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이 꼽힌다. 물론 이 노래도 좋지만 그에 앞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결핵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판틴 (앤 해서웨이 분)이 딸의 양육비를 대기 위해 성치 못한 몸까지 팔아가며 동료 창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욕정 가득한 남자들의 성희롱, 성폭행까지 감당해가며 머리를 깎이는 장면이다. 그런 그녀가 모든 걸 포기하고 부르는 넘버는 I Dreamed a Dream. 당시 꽤 큰 충격과 더불어 여지껏 나의 최애 넘버로 남아있는 피스다.


영화 <레미제라블> I Dreamed a Dream

스틸컷 속 앤 해서웨이는 모든 걸 내려놨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세련되고 예쁜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스틸컷만 봐도 짠내가 가득하다. 한 때는 잘나가던 여자였는데 덜컥 임신을 하고, 남편은 도망쳤으며 홀로 딸을 키우느라 본인의 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내용의 넘버다.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한 때는 나도 꿈이 있었지, 읊조리는 가사가 짠하다.


I dreamed a dream in time gone by
지나가 버린 옛날 나는 꿈을 꾸었어요.
When hope was high and life worth living
그때는 희망이 가득하고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죠.


But there are dreams that cannot be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꿈도 있죠
And there are storms we cannot weather
헤쳐나갈 수 없는 폭풍도 있구요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지금 살고있는 지옥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고
So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지금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일 거라고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내 삶을 꿈꾸어 오곤 했었지만,
Now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최애 넘버로 꼽는 곡이지만 사실 재수 없는 가사라 자주 찾아 듣진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허우적대며 인생이 불행으로 뒤덮이는 건 가장 두렵고 마주치지 않고자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나는 그 상황으로부터 안전할까. 어릴적 내가 상상했던 스물 아홉의 나는 이미 결혼도 했고,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었으며 1.5인분은 하는 인간이었다. 실제 스물 아홉의 나는 아직도 부모 집에 살며, 결혼은 커녕 스스로에 대한 탐구도 부족하다. 여전히 나는 나보다 잘나가는 이들을 동경하기만 한다. 그들이 잘된 건 운이 좋아서, 나랑은 애초에 다른 사람이라서라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체력 핑계를 대며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유튜브 보길 반복하며, 이건 9-6시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포상'이라며 정신 승리를 한다. 물론 판틴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 갇히는 길로 슬슬 들어가는 스스로가 예쁘지 않다.


서두의 대화는 실제로 필자와 엄마가 나눈 대화다. 레미제라블을 보고 뮤지컬 배우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 내게 ‘애매한 재능은 저주다'라며 단칼에 선을 그은 우리 엄마. 대학 가기도 어렵고 인생도 한참 돌아가야 했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면, 나는 그 무대에서 지금 행복했을까, 이따금 상상을 해본다. 지인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하나같이 웃으며 "어머니가 현명하시다"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포장된 처절한 가사가, 앤 해서웨이의 열연으로 감동 받았던 이 장면이 이제는 나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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