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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노을이 머무는 산, 선운산 여행기

by 발품뉴스

숲길을 걷는다. 햇살은 가지 사이로 부서져 내리고, 바람은 이끼 낀 흙길을 따라 은은히 흘러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계절이 주는 선물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은 가을의 따스함을 머금고, 바람은 계곡의 물기를 안고 와 한층 청량하다. 이곳은 선운산. 오래전부터 꽃과 빛, 바람이 머무는 자리라 불러도 좋을 만큼 사계가 아름다운 산이다.

KakaoTalk_20251001_120910714.jpg 출처: 발품뉴스 DB (10월 1일 선운산 생태숲 풍경)

선운산의 이름은 본래 도솔산이었다. 그러나 백제 때 창건된 선운사가 이 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산을 선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선운사에 이르면 봄에는 동백과 벚꽃이, 여름에는 계곡이, 가을에는 붉게 물든 꽃무릇이, 겨울에는 설경이 여행자를 맞는다.


그중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은 일찍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붙잡아 두었고, 9월이 되면 산자락 가득 꽃무릇이 피어나 땅 위를 붉은 단풍처럼 덮는다. 지금 내가 걷는 길가에도 붉은 꽃무릇이 늘어서 있어, 발길이 멈추고 시선이 오래 머문다.

KakaoTalk_20251001_120901082.jpg 출처: 발품뉴스 DB (10월 1일 선운산 생태숲 풍경)

산은 단지 풍경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선운산의 낙조대와 천마봉 일대는 화산암 중에서도 유문암으로 이뤄져 있다. 단단하고 치밀한 유문암은 풍화에 강해 응회암과 대비되며 수직의 절벽을 이루어냈다.


오랜 세월 차별적인 풍화 작용 속에서 빚어진 이 기암절벽은 선운산의 웅장한 자태를 가능케 했고, 일몰이 질 무렵이면 바위 위로 붉게 타오르는 빛이 더해져 장관을 이룬다. ‘낙조대’라는 이름은 그렇게 얻은 것일 테다. 붉은 노을과 절벽이 맞부딪히는 순간, 선운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된다.

KakaoTalk_20251001_120853396.jpg 출처: 발품뉴스 DB (10월 1일 선운산 생태숲 풍경)

선운산생태숲 또한 이 산의 매력을 더한다. 총면적 53만㎡에 달하는 생태숲은 선운산의 고유 수종을 보호하고 자연의 흐름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복원 지구, 학습 지구, 연못 지구로 나뉜 숲은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고, 어른들에게는 잊고 있던 생태 감각을 되살려주는 산책길이다.


나는 이 숲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여행이란 단지 새로운 곳을 보는 일이 아니라,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는 일이라고. 나무 냄새, 흙 냄새, 바람의 결, 꽃의 빛깔, 절벽의 위용, 저 멀리 다가올 붉은 일몰까지. 선운산은 그 모든 것을 내게 건네며 “너는 살아 있다”고 속삭여 준다.

20251001_115638.jpg 출처: 발품뉴스 DB (10월 1일 선운산 생태숲 풍경)

선운산을 떠날 즈음, 붉게 물든 꽃무릇과 머리 위로 흘러가는 햇살이 나를 붙잡는다. 언젠가 겨울 설경 속의 선운사도, 이른 봄의 붉은 동백 숲도 다시 만나리라. 사계가 아름다운 산, 꽃과 빛과 바람이 머무는 선운산은 여행자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이는 풍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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