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잘 해내고 싶다.
좋은 아내이고 싶고, 훌륭한 엄마이고 싶고, 어여쁜 딸이자 며느리이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고, 경제적으로도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결혼 전엔 일이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해보니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닮아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주방, 가지런히 널려있는 빨래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냉장고 속 식재료는 착착 자리를 찾아가고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는 과정은
작은 희열을 느끼게 했다.
출근시간이 다가올수록 미처 다하지 못한 집안일이 눈에 걸릴 정도로 나는 집안의 모든 일들을 애정했다.
아침이면 아이의 등원준비와 함께 손수 내린 녹즙을 남편에게 건네고
퇴근 후 먹을 저녁거리를 미리 손질해 뒀다.
출근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주부의 모습을 감췄지만 퇴근시간만 되면
아이의 이유식과 남편의 저녁을 동시에 챙길 수 있도록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달달외우며 집으로 갔다.
저녁 한 끼라도 정성껏 차려 셋을 위한 식탁을 마련하고 설거지도 남편에게 미루지 않았다.
손이 닿는 한 잠이 들기 전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이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아이가 잠들면 다시 나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고 잠들었다
아이가 어릴 땐 정말이지 잠이 부족했다.
운이 좋을 땐 통잠을 자줄 때도 있었지만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한 적도 많았다.
이유 없이 우는 걸 반복하던 그런 새벽에도 아침이 밝으면 어김없이 출근은 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초 누구 한 사람만 가장이 되지는 않기로 합의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아이를 돌보기로.
일을 사랑했던 나는 단번에 오케이 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던 남편도 당연히 동의했다.
비슷한 나이였고 비슷한 수입을 가졌기 때문에 누군가가 경제적 짐을 다 짊어지는 건 옳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건 돈이라는 개념, 그보다 더 한 가치가 있다.
다행히 경제적으로 흔들리지 않다 보니 싸울 일도 별로 없었고
육아와 살림 모두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대가로 수면시간은 3시간이 채 안될 때도 많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신이 맑았던 날들이었다.
우울감이 나를 찾아올 틈조차 없었던 것 같다.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지 못한 채 많은 날들을 보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다 생각했다.
건강한 아이, 자상한 남편, 순조로운 결혼생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작은 틈새로 우리 부부의 사이는 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