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헤어지고 헤어지지 않고는 얇은 종이 한 장 차이
살다보니 다름으로 부딪히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같이 있지만 외롭고, 이해하지 못해 이해받지 못하는 일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함께한다.
함께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며
함께 할 때 좋았던 일들을 되뇌이며
아이에게 아빠를 뺏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되새기며
헤어짐을 택한 이들은 이 모든것을 아무리 되뇌어봐도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혼을 한다는 건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혼 후 겪게 되는 수많은 상처와 경제적 불충분, 사람들의 시선, 아이에게 주게 될 결핍
그 모든 걸 감수하고라도 얻게 되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안 보고 살게 되는 자유 '
혹자는 이혼을 이렇게 표현했다.
매 순간 지속적으로 겪어내야 하는 온전치 못한 집안의 기류, 불편한 상황, 가시같이 날선 말들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 혼자를 선택했단다. 두 아이를 안고 빈손으로 집을 나와 처음겪는 고생길을 마주했지만 마음만큼은 가볍다고 했다.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날선 날들을 견뎌냈는지, 더 작은집 더 소소한 밑반찬이지만 매일 저녁 조용하고 평화로운 집에서 아이 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평생 약을 먹고살아야 하는 딸아이와 어린 아들을 둔 한 여자가
이혼을 선택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남편은 성실하지도 자상하지도 않았고 경제적으로 무능했지만
그런 것들이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아이들의 아빠였고 그를 선택한 건 본인이었으니까
비록 남편이 돈을 벌어오진 않아도 내가 나가서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 보호자는 돼주겠지 싶었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자 여자는 일을 해야만 했다.
커가는 아이들의 뒷바라지가 어디 한두 푼이던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아이와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이들이 어려운 형편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이미 무너져 내리던 결혼생활이었지만 본인만 힘을 낸다면 지켜낼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혼을 밖으로 꺼낸건 이 '사건' 이였다.
주말도 마다하고 일을 하러 나가는 길에 아이들 점심을 부탁했다.
밥도 지어놨고 반찬도 냉장고에 있으니 꺼내서 차려만 주라고.
아이들이 몸이 약해 먹는 것 만큼은 잘 챙겨주고싶어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 아이들을 위한 식사는
늘 마련해두고 집을 나섰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은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고 집안은 엉망이었다.
식탁 위에는 라면과 빵 따위를 먹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여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밥통에 밥도 그대로, 반찬과 국은 건들지도 않았다.
라면과 빵으로 점심을 때운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엉망인 몰골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언제부터 자니. 밥은 왜 라면을 먹었어?!
내 물음에 아이들은 갸우뚱 거리며 서로를 쳐다봤다.
"엄마. 라면은 아빠가 먹은 거야"
... 그럼 너희들은?
아이들은 배가고픈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과자를 집어먹고 연신 물만 마셔댄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배고프다며 몇번이나 남편을 깨웠을텐데..
남의 자식에게도 이러지 못하겠지만 심지어 본인이 낳은 본인의 아이들이다.
짐승도 새끼에게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붙잡고 늘어졌던 힘없는 기대는 무너져벼렸다. 이 결혼생활이 끝났음을 알아버렸다.
당장이라도 냄비를 얼굴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바닥까지 끌어올려 참아냈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
이혼을 진행했다. 다른 여자가 있었던건지 남자는 이혼을 쉽게 받아들였다.
달라는 돈도 줬다. 있지도 않은 재산이지만 그마저 분할해 줬다.
무능력 뻔뻔함 이기적인 남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들을 안고 나왔다. 그렇게 남편없이 십수년을 꿋꿋하게 걸어나갔다.
세상 어디에도 필요 없을 것 같은 남자
산날들을 천천히 뒤돌아보니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남자와 헤어지고도 하게될 후회가 있을까.
후회는 작은 순간 잠깐이지만 자주 찾아오곤 했다.
대형마트에 아이들과 장을 보러 가는 날. 적어도 2주에 한번쯤은 떨어진 식료품들을 사러갔어야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쿠팡도 마켓컬리도 택배기사들이 식료품을 날라주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넓은 마트에 와 신이 나 2단으로 분리됐고 아이들을 잡으러 가면 카트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주말이면 대형마트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물이며 화장지며 생필품은 담은 카트는 바퀴가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고 힘껏 밀어야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론 카트를 밀다보면 정말 서러움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단다.
바퀴는 왜 이렇게 뻑뻑한 건지. 살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아이들은 왜 이렇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온통 부부끼리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정말 지루하고 한심하단 표정으로 서있는 남자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해대는 남자
이까짓 카트따위를 밀어주는게 부러워질줄은 몰랐었다.
장을 마치고 그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집까지 이고 지고 가던 길
장바구니를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겁고 힘들던 그 짧은 길
그 길에서 남편과의 헤어짐을 후회했단다.
이상도 하지.. 그렇게 많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고작 그런 순간이라니.
여자는 이혼을 생각하는 젊은 부부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자기만 밥 챙겨먹고 애들은 굶겨?
그게 아니라면 그냥 그 자리에 둬. 그 남자도 카트는 밀어주겠지"
헤어지고 헤어지지 않고는 종이 한장 차이
카트라도 밀어주는 남자를 그냥 그곳에 둘 것인지
보고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않을 자유를 택할 것인지
그냥 그 작은 선택에 있는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