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게 노닥거린다는 표현을 언제 써봤는지 모르겠다. 한시가 급했고 찰나가 아쉬웠다.
그 와중에 나는 일까지 하는 워킹맘을 선택했다.
정말 몸이 두 개로 갈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한 달간은 남편과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해 같이 아이를 돌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아휴직이 가능했던 남편은 유급 휴직을.
자영업을 하는 나는 직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무급 휴직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도 같이 아이를 돌본 그 시간 덕분에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 어린 아이로부터 파생되는 집안일이 어찌나 많던지,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는 역할이 가정 내에서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 나날들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아이가 생후 50일이 되던 즈음 남편과 나는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완전한 복귀는 아니었지만, 전문도우미와 교대육아로 아이를 케어했다.
전무했던 첫 아이 육아를 경험한 후
남편과 나는 서로 앞다투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돈을 벌러 나갔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일터로 나온 나를 보며 다들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일을 하러 나왔냐고'
그럴 때면 나는 대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나오고는 싶은데 돈을 쓰러 나올 순 없지 않으냐고.
그러니 벌러라도 나왔다고.
정말이었다. 나에게 허락된 '합법적 외출'은 출근이었다. 잠시라도 혼자이고 싶었다.
출근을 위해 도로 위를 달리는 30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혼자 보는 노을. 혼자 마시는 커피. 차 안에서라도 잠시라도 제발 혼자이고 싶었다.
피곤해 보이는 남편과 발그레 웃는 아이를 두고 뒤돌아 나왔다.
그래도 돈을 벌러 나간다니 안 보내줄 순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일하러 가는 시간엔 내가 육아와 살림을.
내가 일하러 가는 시간엔 남편이 육아와 살림을 담당했다.
한때, 한 손엔 coffee 한 손엔 유모차를 미는 라테파파를 꿈꾸던 남편은
현실육아를 맛본 후 육아휴직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아이를 낳기만 하면 육아는 남편이 담당할 거라고 믿고 있던 나는
상상과는 반대로 나에게만 매달리는 아이를 보며 멘붕에 빠졌었다.
왜 똑같은 자세로 안고 있어도 나만 찾아대고, 내 품에 안겨야만 울음을 그치는지.
기가 막히게 엄마를 알아봤다.
새벽 내 아이가 울어도 쿨쿨 잘만 자는 남편과는 달리 조그만 뒤척임에도 번쩍 눈이 떠져
새벽육아는 늘 내 담당이었다.
내 뱃속에 있었으니 엄마를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건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낳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지
참으로 단순한 생각이었다
.
남편은 몇 달간의 육아를 끝으로 일터로 완전 복귀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일은 같이 하는데 아이가 아플 때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달려가는 건 늘 엄마인 나였다.
회사를 다니는 남편보단 개인업을 하는 내가 시간을 내는 편이 나아서였기도 했지만
왜인지 엄마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워킹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었다.
시간이 너무너무너무 부족했다.
아직 회사 일을 끝마치지 못했는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일에 대한 문의는 넘쳐나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가게 매출도 줄어들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되면 나를 기다릴 아이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생각보다 아이 때문에 동동거렸던 적은 많지 않았다.
동동거리기 전에 일을 접고 아이에게 달려갔기 때문이다.
일과 아이 사이에서 일을 선택한 적은 없다. 지체 없이 일을 버리고 아이를 향해갔다.
일 때문에 아이에게 소홀했다는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낸 대신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일이 어느새 나에게 작은 부분이 된 것에 대한 공허함이 남았다.
둘 다 잘하고 싶었는데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완전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둘 중 하나에만 집중했다면 좀 더 나았을까..
아직 집안일을 마치지 못했는데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아직 일을 끝마치지 못했는데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하나라도 일을 더 하기 위해, 아이 하원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달려갔지만
시간은 언제나 나를 놓고 저만치 가버리곤 했다.
그래도 내손으로 아이를 돌본다는 뿌듯함으로 육아와 일 어느 것 하나 놓지 않고 버텨냈다.
버텨냈다는 표현이 정말이지 맞는 표현이다.
하나둘 일을 놓는 친구들이 많아질 때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냈다.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고 나는 나의 의지로 내 선택을 지켰다.
억울하단 생각이 스칠 때도 있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은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게 한다.
그 상황에서 나만 찾는 아이와 눈에 밟히는 집안일을 해내며 일까지 하는 건 정신적 한계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누굴 탓할 수는 없다. 남편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이를 임신하지도 출산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여자에게 오는 몸의 변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체중이 불어난 아내를 보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속으론 운동 좀 했으면 하고 좀 더 날씬한 와이프를 바라게 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잠시 외벌이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조금만 자라면 아내도 다시 나가서 일을 하길 바란다.
그 사이 얼마나 몸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남편이라고 해서 알아주지 않는다
아이를 출산하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급격이 몸의 어느 부분이 나빠졌을 때
남편은 출산 때문이 아니라 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 그럴수도, 그게 팩트일수도 있지만 아이를 낳아서라고 말해주면 참 위로가 됐을 텐데 말이다.
사회도, 심지어 남편도 본인이 겪은 일이 아닌 것에 대한 이해도는 이 정도뿐이다.
어린이집 학교만 봐도 그렇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전화를 받는 건 매번 엄마라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아이에 대한 제1 양육자로 엄마를 지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을 때려치운다는 표현을 쓰나 보다.
출산 후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건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쓰고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해서라고 읽겠다.
맞벌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정생활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지만 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깥일을 하는 누군가가 집안일을 하는 누군가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되는 불상사
직장생활을 하는 본인이 집안일을 하는 아내에 비해 좀 더 수고롭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못난 마음. 내조를 위해 애쓰는 아내에게 고맙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끝나는 안일한 인사.
이런 마음들은 아무리 속으로 생각해도 겉으로 티가나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존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당당해지기로 했다.
조카들 줄 용돈을 내 지갑에서 마련하고, 친구를 만나 마시는 커피값을 흔쾌히 계산하고,
남편에게 부족한 생활비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이 얄팍한 자존심을 지켜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