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기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덕분에 직장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남편과 세웠던 계획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몸이 조금 무거워졌고, 쉰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말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명확히 달리진 건 나의 점심식사였다.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만을 찾던 내가 시간을 넉넉히 잡아 영양이 풍부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바쁜 시간에 쫓겨 해치우듯 먹던 점심이 느긋한 식사 시간으로 변해있었다.
내 인생에 아이는 한 명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태교에 집중했다.
신기하게도 나쁜 생각, 유해한 미디어는 접하기도 싫었다.
그리 좋아하던 추리극, 액션영화조차 보고 싶지 않았고 몽글몽글 사랑스럽고 유쾌한 드라마만 눈에 담았다.
임신 기간엔 뉴스도 보지 않았다.
예쁜 글, 좋은 그림, 나무와 구름,
틈틈이 초록초록한 식물과 알록달록한 꽃을 보며 힐링도 하고
유쾌한 수다도 떨면서 평온한 마음을 가졌다.
튀긴 음식도, 밀가루도 최대한 멀리했다.
철저히 소독된 개인 숟가락까지 지니고 다녔다는 지인의 말이 오버스럽게 들리지 않았다.
임신 5개월쯤 아이의 손과 발, 눈코입 모든 장기가 정상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유난스럽던 태교에 종지부를 찍었다.
건강한 아이를 확인하자 식욕이 몰려와 이 세상 맛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가리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임신 중 권고하는 몸무게를 훌쩍 넘겨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지만 그때만큼 먹는 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
잘 먹고 잘 웃은 덕분에 임신 10개월은 무사히 지나갔다.
걱정스럽던 임신 기간을 지나니 출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기에 앞서 큰 갈림길에 섰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대부분 진통을 기다려 자연분만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 자연분만 중 응급으로 수술을 하는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선택은 내 몫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제왕절개를 선택한 데에는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단 한 명의 아이만 출산하기로 한 것이다.
이 생각으로 지난 10개월의 임신기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좋은 것만 줬고, 평생 한번 있을 일이라 생각하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한 번 뿐일 임산부의 인생을 즐기게 됐다.
주차장을 가도, 길을 걸어도, 임산부에게는 많은 것이 양보됐다.
다들 불어난 내 배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아마도 요즘 아이를 보기 힘든 탓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의 극진한 대우와 시댁, 친정 가릴 것 없이 공주처럼 대해주는 이 시기를 나는 원 없이 즐겼다.
아이를 낳고 보니 왜 그렇게 임산부를 챙겨주는지 알 것 같다.
출산 후 다가올 고통에 미리 연고를 발라준 셈이지 않았나 싶다.
행복한 임신 기간이었지만 결심이 흔들리진 않았다.
주말부부인 데다가 맞벌이. 양가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워내야 했다.
남편이 많이 도와주겠지만, 현실적으로 육아는 내 몫이었다.
아이를 돌보며 직장 생활도 겸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는 길도 있다. 계속 전업주부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처음부터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며 일을 그만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엔 몸이 편하니 만족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곧 후회를 하곤 했다.
경제활동 vs 가사, 육아노동으로 철저히 분업된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관심사가 달라지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달라 멀어진다.
아이가 크고, 내 시간이 생길 때쯤 여자도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일할곳이 없다.
경력은 단절되고 최저시급을 받는 알바는 하고 싶지 않다.
그맘때 아이는 더 성장하니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경제적 결핍은 결국 부부싸움이 된다.
우려일 수 있지만 이미 많은 부부의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가정 역시 한 사람이 버는 돈으론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미 돈이 없는데 여기서 더 없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번의 임신과 출산만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한 아이만 낳아서 잘 기르고 싶고 더 이상의 출산을 원하지 않을 때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루프삽입과 난관수술이 있다.
루프는 많이 들어봤는데, 난관수술은 생소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물론 피임을 하는 방법도 있다. 먹는 약도 있고 피임기구도 있다. 하지만 결혼한 부부들은 알 것이다.
매번 피임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덜컥 첫째가 생기고 둘째가 왜 생기겠는가. 생명은 소중하고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원하지 않는 임신도 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결혼한 여자들이 루프를 삽입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부작용이 너무 많다. 모두를 본 건 아니니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때문에 루프를 꼈다가 빼는 사람들도 많다.
마지막으로 가장 많이들 하는 정관수술이 있다.
아이의 임신과 출산으로 고통스러운 여자를 대신해 남자들이 정관수술을 한다.
더 이상의 임신을 원치 않을 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주위에 정관수술을 한 남편들은 극히 드물다.
미루고 미루다 셋째쯤 갖고 나서야 병원을 방문한다.
임신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그저 남편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다 덜컥 둘째라도 생기면, 당장 급할 때 아이를 맡길 친정도 시댁도 너무 멀리 있었다.
초조하고, 궁핍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충분히 케어할 수 있는 한 명의 아이만 갖기로
결심만으론 부족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으면서 난관수술을 하기로 했다.
난관을 묶는 방법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다.
그렇다 해도 따로 수술을 하는 건 심적으로 힘들 것 같아 아이를 낳으면서 같이 하기로 했다.
어차피 제왕절개 후라 이미 아플 텐데 난관수술의 아픔 따윈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에겐 언니가 둘 있는데 결과적으론 둘 다 제왕절개를 했다.
큰언니는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응급이 와 수술을 했고,
둘째 언니는 아이가 너무 크다는 의사의 말에 수술을 선택했다.
진통을 다 겪고 수술을 한 큰언니는 너무 억울해했고,
작은언니는 4.6으로 태어난 초 초 우량아에 놀랐다. 그냥 낳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쪽이 나을 듯했다.
처음 담당의사를 만나 제왕절개와 난관수술을 같이 부탁드린다고 말했을 때,
의사는 단번에 수락했다.
지나고 나서 들으니, 나를 담당했던 의사는 자연분만을 외치는 '자연분만주의'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에겐 자연분만을 권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의사의 말이, 산모의 의지가 확고하고 남편의 눈빛에 흔들림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물론 임신 중반을 지나 담당의사는 '난관수술'에 대한 나의 의견만 재차 물었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난관수술을 겸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고, 수술 후 다시 임신을 원할 때
임신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복구 시술을 통해 임신이 가능하지만 시술에 대한 충분한 의학적 소견을 설명해 주셨다.
모든 결정이 그러해야 하지만 특히나 심사숙고한 결정이 필요한 시술이다.
나는 흔들림 없는 시몬스와 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해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도 흔쾌히 나의 결정에 따라 시술해 주셨고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한다. 7년이 지난 지금 어떠한 부작용도 없고
남편과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피임을 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사실 이건 좀 얄미운 부분이긴 하다. 누가 더 애를 썼느냐 겨룰 건 아니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남편은 왕서방이 된 것 같다.
얄밉긴 하지만 남편에게 정관수술을 요구했다면 지금쯤 둘째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얘기하다 보면 남편들이 정관수술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정력이 어쩌느니, 아프다느니, 떠도는 '카더라'소식이 난무하니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둘째가 생겼다 해도 행복했을 것 같다
엄마가 돼 보니 모든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평생 아이를 케어하고 키우는 건 후회하지 않을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나는 결단을 내렸고 너무나 예쁜 한 아이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