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원미상 Jun 28. 2023

코로나 가 찾아준 '일상'

팬데믹 속으로

팬데믹이었다.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개개인에게도 큰 상실의 시대였다. 그 절망의 크기는 모두 다르겠지만 나도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다. 전례 없던 전염병에 모두가 멈춰 섰다. 


그렇게 숨 가쁘던 일상에 쉼이 찾아왔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을 놓지 못했었다. 

자의로는 그만두지 못하던 일을 타의로 멈추게 됐다. 

종종 손님들이 찾아오곤 했지만 하루종일 가게를 열고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100센트 예약제로 시스템을 변경하고 예약손님이 있는 시간에만 일을 나갔다.

코로나 발병 초기만 해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게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고 일을 해야 하나

그냥 집에 있는 게 맞나 우왕좌왕하던 시기였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도 하나둘 접촉자가 생기면서 등원조차 어려워졌다

하루 걸러 하루 안 가는 일이 빈번했다. 

원래 하원을 도와주시던 이모님도 더 이상 부르지 못했다.  

한 명이라도 접촉을 덜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던 때였고, 유치원을 못 가는 날이 더 많다 보니

그냥 하루종일  내가 돌보는 게 나았다. 

처음엔 금방 끝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이러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현 상황을 받아들였다. 

매출은 반의 반토막이 났고, 겨우 월세와 관리비를 낼 수 있었다. 그나마 내가 나은 상황이었다.

죽는소리를 하기엔 월세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직격타를 맞은 사업장이 많았다. 

일 년이 지나고, 야속하게도 현 상황에 익숙해졌다. 내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드니 의외로 마음이 편안했다. 

얼마만의 휴식이었는지 모른다. 

서둘러 출근준비와 등원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평일이라니. 

느긋하게 밥을 먹고 뒹굴거리며 여러 날들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좀처럼 이상해서, 휴일에도 부러 할 일을 만들어 쉬는 날도 쉬질 않았는데

갑자기 찾아온 팬데믹은 이런 우리의 일상에 조금의 쉼을 만들어줬다. 

어딜 가도 사람이 없었다. 뉴스에서 들리는 안타까운 소식에 한숨을 내뱉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온전히 그 휴식에 일상을 맡겨버렸다. 

서두르던 출근길은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으로 바뀌었고, 사람으로 북적대던 공원은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바뀌어있었다. 꽃이  피고 지는걸 비로소 제대로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여유를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가장 기뻐한 건 역시나 아이였다. 팬데믹이 뭔지 모르는 아이는 그저 엄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행복해했다. 

이 시기에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단 몇 달이면 끝날 것 같던 코로나는 1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계속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며 일상을 즐기는 유일한 방법은 소소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어디든 떠났다. 

아이는 무작정 나를 사랑해 줬지만 내가 아이를 제대로 마주하고 사랑하게 된 건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일적으론 많은 고충이 있었지만,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은 없다는 명언처럼

코로나로 인한 그 몇 년간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기억이 됐다. 

저녁이 있는 시간. 세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시간은 그렇게 자리 잡았다.




전화위복도 있었다. 돈이야 벌면 된다는 신조에 큰 코를 다쳐 절약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내 노동력은 무한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한순간에 꺾였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돈을 벌 수가 없는 직업이었다. 그렇다고 한순간 다른 일을 찾기엔 걸어온 길이 너무 멀었다. 

그렇게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알아챘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의 소중함을 느꼈다. 

몇 푼 더 번다고 혹시나 으스대지는 않았는지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됐다. 

 

남편을 설득해 주식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주식이나 투자 같은 건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노동의 가치만이 참된 가치라 여겼다. 

그런 금융문맹이었던 내가 무려 주식이라니.

노동의 한계에 직면하자 남는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가장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 주식이었다. 토지나 부동산이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접근하기엔 투자비용이 너무 컸다. 

그렇게 남편과 코로나 초기, 주식을 시작해 지금까지 쭉 적금식 주식을 하고 있다. 투자인생 겨우 3년 차

그 짧은 시간에도 투자의 세계는 강산이 3번도 더 변한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도 결국은

은행금리보다 높다. 

절대 무리한 금액을 투자하지 않고 상위 1프로 대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신념을 지키며 잘 해내고 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잘했다 느끼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중 하나는 주식을 시작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투자로 인한 수익도 수익이지만, 

같은 취미를 공유하면서 남편과의 유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시사와 경제, 흘러가는 이야기도 집중해서 듣는다.

연예뉴스만 보던 내가 아침 시사뉴스를 본다. 

세상 돌아가는 게 눈에 보이니 경제가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다. 

세상 재미없던 것들에 의미가 생겼다.


상황은 바뀌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란 역시 없는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내와 연인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