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건 알고 있다. 경험상 모든 게 계획대로 다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보다 낫다는 건 확실했다.
내 20대는 내가 짜놓은 큰 계획의 틀을 벗어난 적이 없다.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그런대로 내가 짜놓은 틀에 맞아떨어졌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이룰 수 있는 조그마한 소망만 계획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고 후회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30대에 접어들면서 내 계획 세우기는
급격히 힘을 잃어갔다. 그렇게 대단한 걸 세운 것도 아닌데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사실상 계획이 무의미해진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길을 선택했다.
열심히 살아가되 거의 대부분을 계획하지 않았다.
7년이라는 결혼생활동안 우리는 무려 3번의 이사를 했다.
각자의 집에서 부부로 함께할 첫 번째 집은 신축빌라였다. 주말부부에 아이계획도 없었던지라
신혼집은 작고 깨끗한 곳으로 결정했다. 남편과의 신혼집이라기보단 내 자취방 같았다.
조금 더 예쁘고 좋은 가구들이 있는 내 취향의 집이었다. 둘이 살 건데 이 정도면 됐지.
하지만 한 달 뒤, 나는 아이를 임신하며 임산부의 길로 들어섰다. 계획에 없던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다 다시금 이사를 결정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조금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내가 일하는 곳과 많이 멀어지긴 했지만 아이를 키우기엔 한없이 좋은 곳이었다.
외곽에 위치해 비싸지 않으면서도 신축아파트답게 모든 편의시설을 끼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고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남편의 발령이 확정됐다.
원하던 곳은 아니었다.
기다리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지만 아이를 보러 장거리 운전을 몇 번이나 하는 남편이 걱정됐다.
원래 원하던 곳은 발령이 너무 어려워 최선보단 차선을 선택하기로 했다.
발령지역은 바뀌었지만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 퍽 줄었다.
그동안 먼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고속도로가 인접한 곳으로만 이사를 다녔다.
때문에 나의 출퇴근시간이 30분 이상 걸렸지만 2~3시간씩 출퇴근하는 남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차선의 선택으로 남편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서 또 한 번의 이사가 결정됐다.
일을 하는 나에게 집과 일터가 가깝다는 건 귀찮은 이사를 감행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이번엔 내가 근무하는 직장과 가장 가까운 아파트를 선택했다.
다른 것도 좋았지만 직장과 가깝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동안 출퇴근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서 아이를 케어하기 급급했던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집과 회사 아이유치원이 3분 거리에서 해결되니 숨통이 트였다.
출근을 했다가도 밀린 집안일이 생각나면 잠깐 집으로와 일을 마치고 다시 일터로 나갔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길 때면 바로 달려갈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한참 코로나가 판을 치던 때였다.
생활비를 갉아먹던 외제차도 처분했다. 어릴 때 호기롭게 샀던 내 분신이었지만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았다. 이사를 감행하면서 굳은 마음으로 청춘 같았던 차를 처분했다.
이사비용이 들었지만 차량 유지비가 들지 않으니 마음으로 퉁쳐볼 요령이었다.
이제 걸어 다니면 되니까.
이 동네는 나에게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한 곳에서 10년이 넘게 일했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됐으니 이번엔 오래오래 살자고 남편과 다짐하고 다짐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아파트 계약서에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나는 오랫동안 일하던 곳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참.. 어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10년이면 임대차 보호법도 끝나는 시점이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있다.
어이가 없었던 건 그전에 이미 재계약 얘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천년만년 있어달라더니..
재계약을 하기로 한 날 아침 갑자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본인이 매장을 쓸 계획이니 한 달 안에 나가달라는 문자였다.
물론 한 달은 억지였지만 나에겐 한 달이나 세 달이나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재계약은 구두로 성사된 일이니 그 또한 의미가 없었다. 마음을 마음대로 바꿨다고 따지기엔
우린 법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법적으론 임차인에게 잘못이 없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를 배려해 이곳으로 이사해 준 남편에게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야속하기만 했다. 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냥 옆가게에 다시 차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는 코로나였다. 있던 손님도 안 오는 경기에 새로운 가게를 연다는 건 너무 심적인 부담이 컸다.
다 핑계고 나는 조금 허무했고 사실 허탈했다.
그즈음 아마도 자신이 없었나 보다. 파이팅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질 않았다.
일하는 곳을 옮긴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아서 당황했던 것도 같다.
거처를 고민하고 있던 내게 생각지 못했던 제의가 들어왔다.
그동안 한 곳에서 일한게 허사는 아니었는지 떠난다는 소문을 들었나 보다.
지금처럼 힘들 때 다 같이 넓은 곳을 빌려 셰어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모였다.
저렴한 월세를 주겠다는 곳을 찾아 삼삼오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공간을 나눠 쓰기로 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일하기엔 충분했다.
상대적으로 공간이 작은 덕에 넓은 공간을 쓰는 분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해주셨다.
덕분에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았다.
혼자 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 투성인 일들이었을 텐데
다행히도 인테리어는 금방 완성됐다.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나는 새롭게 일하는 곳을 마련했다.
다행히 공백 없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다시 일터와 집이 멀어졌다. 차는 괜히 팔았다...
걷기엔 멀고 매번 택시를 타긴 너무 아깝고.
상황이 나를 두고 먼저 간다. 따라오라 손짓하면 그제야 발길을 재촉하는 느낌이다.
분명 내가 앞장서 있었는데.. 어느새 뒤에 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계획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그래도 뭔가가 되긴 된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에도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뭔가가 되긴 된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에도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