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쓰는 현장일지
하루의 시작은 창을 열고 한라산의 동태를 살피면서부터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은 눈, 코, 입이 선명한 사람이었다가 구름 가득 품은 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첫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전해지면 한라산 설경은 당연 우리 집이 최고 뷰 맛집이다.
어느 날 창을 열기도 전부터 들리는 소음에 한라산 동태를 살필 겨를도 없이 근원을 찾아 내려다봤다. 몇 년째 방치됐던 공터에 건물을 지을 작정인지 여름내 우거졌던 칡덩굴을 걷어내고 중장비가 연신 이동하며 땅을 파고 있었다. 당분간 시끄럽겠다는 생각에 달갑지 않다. 그나마 가을로 접어들어 베란다 창을 닫고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덤프트럭이 드나들며 파낸 흙을 싣고 갔다. 여러 대의 차들이 드나들어 시끄럽더니 땅 파는 작업은 하루 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붉은 알몸을 들어낸 커다란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뭘 할지, 어떻게 채워나갈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침이면 창으로 달려가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작업은 아침 7시부터 시작했다. 넓은 구덩이에 비닐을 펴더니 단열재 같은 두꺼운 판을 촘촘히 깔았다. 땅에서 나오는 습기를 막으려는 작업으로 보였다. 비닐 한 장으로 되려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귀퉁이에 작은 네모난 구덩이를 만들었다. 저건 또 뭐지? 출근하던 남편이 정화조 일거라고 한다. 지금껏 많은 공사 현장을 봐왔어도 이번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며 모든 공정들을 한눈에 담기는 처음이다.
다시 시끄러워진 현장 소리에 달려가 창을 열었다. 레미콘이 다른 차에 시멘트를 붓고 크레인 같은 큰 장비는 호스를 움직이며 철근으로 엮인 바닥 구석구석을 시멘트로 채우고 있었다. 작업 속도 때문인지 도로에는 또 다른 레미콘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크레인 같은 장비가 펌프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아침마다 작업자들을 피해 공정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음 공정에 궁금증이 생겼다.
공정은 하루하루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멘트 타설이 끝나고 굳히는 시간은 이틀정도 작업은 없었다. 아침마다 창으로 달려가는 내 모습에 남편이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고 한소리 한다.
또다시 시끄러워진 현장 아침이다. 오늘은 무슨 작업일까 싶어 창에 매달렸다. 철근과 거푸집 나무판들이 들어오느라 연신 차와 크레인이 오고 갔다. 벽에 나무판을 대고 철근을 엮으면서 1층을 만드는 것 같았다. 뚝딱뚝딱 며칠은 망치소리가 났다. 촘촘히 엮은 철근을 고정하느라 작업자들은 바빠 보였다.
그러더니 1층 천장이며 2층 바닥이 되는 작업을 시작했다. 다시 거푸집 나무판으로 덮으면서 망치질과 쨍그렁 쇳소리가 계속되더니 2층 바닥이 완성되었다. 바닥에 다시 철근을 격자로 촘촘히 깔고 레미콘과 펌프카가 2층 바닥에 시멘트를 타설 했다. 얼마가 될는지 설계된 층수까지 작업이 반복될 것이다.
몇 층일까? 이곳은 고도제한 지역이니 4층이려나.
아파트 앞 길 건너에는 공터가 있다. 주인이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여섯 채 집을 짓기에 충분한 땅이다. 그중에 왼쪽 끝 땅에 첫 번째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건물을 지을 때 경계선에 맞춰 건물을 올릴 테니까 저 공터들 중에 마지막 건물을 짓는 사람이나 건물 중간에 끼어 있는 땅에 건물을 지을 때는 인접한 빈 공터가 없어서 자재를 쌓는다거나 컨테이너 놓을 장소, 차량 이동에 불편할 테고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높다. 다음은 어느 쪽에 건물이 들어설까? 괜한 것들이 궁금해진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라가는 건물을 보면서 어떻게든 시작만 한다면 마무리가 될 수 있겠구나. 망설이는 사이에 남아있는 땅에 건물이 들어서고 느지막이 시작을 한다면 불편한 것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늦게라도 시작만 한다면 그나마도 다행일 것이다. 시작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다 보면 빈 공터는 칡덩굴로 뒤덮여 쓰레기장이 될게 뻔하다.
타이밍과 선택이 좌지우지 되는 것 또한 인생이다.
아침마다 사진을 찍고 모르는 공정은 찾아보기도 했더니 벌써 한 달 보름이 지났다.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보는 재미에 날씨가 좋은 날은 창 앞에 의자를 놓고 차를 마시기도 한다.
남들은 별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작업자 다섯 명이 날마다 뚝딱뚝딱하더니 한 층씩 건물을 높이는 일은 참 대단하고 별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역시 사람은 대단한 능력자다.
날마다 공정을 지켜보고 사진을 찍어서 남기고 작업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고 안전모와 장비들은 챙겼는지 지켜보는 나는 건축주도 모르는 현장감리다.
올해가 지나고 내년 3월쯤이면 준공이 나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 이 쏠쏠한 재미가 계속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