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철학
쏴아 쏴아!
남편이 샤워를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일어날까? 조금만 조금만 몇 번을 뒤척이다 침대에서 나왔다.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냉장고 문을 열어 토마토 3알을 꺼냈다. 식초물에 담가 씻고 도마와 칼을 준비했다. 많지도 않은 토마토 3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살핀다. 크기를 보면서 몇 조각으로 나누어야 균일하게 조각이 나올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살피기가 끝나면 토마토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으로 토마토를 잡아 고정시킨 뒤 토마토 꼭지 중앙에 칼을 댄다. 그리고 칼을 든 오른손을 토마토 꼭지에서 이리저리 조금씩 옮겨 보면서 생각한다.
반으로 자를까? 그럼 꼭지에 걸리는데, 중앙에서 약간 옆으로 자를까? 그럼 한쪽은 크고 다른 쪽은 작을 텐데, 작은 쪽은 두 조각을 내야 하나 세 조각을 내야 하나? 그 짧은 시간에 이 모든 생각을 하고 칼을 든 오른손에 힘이 들어간다. 선택이 끝났다. 순간 토마토가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도마 위에 나뒹굴었다. 역시나 꼭지를 피해서 자르고 나니 크기가 달랐다. 큰 조각은 생각대로 세 조각을 냈고, 작은 조각은 오른손 칼이 토마토 위에서 선택을 못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세 조각을 내야 할까? 두 조각을 내야 할까? 망설이다 세 조각을 냈다. 아차! 조각이 너무 작고 즙이 터져 나왔다. 순간 두 조각을 냈어야 했구나 싶었다. 토마토는 이미 잘렸고 선택은 끝났다. 다시 붙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싶은 마음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두 번째 토마토를 얼른 집어 들어 도마 위에 올렸다.
꼭지가 없는 토마토를 보는 순간 망설임 없이 칼끝이 가운데를 향해 반으로 잘라졌다. 동일하게 잘린 토마토는 머뭇거림 없이 다시 세 조각씩 여섯 조각을 만들었다. 이제 나머지 한알의 토마토를 조각내야 한다.
마지막 토마토도 꼭지가 없으면 좋았겠지만 꼭지가 있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첫 번째 토마토처럼 자를 것인지 두 번째 토마토처럼 자를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으로 자를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 순간 오롯이 나만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첫 번째 토마토는 꼭지를 피해서 자르다 보니 두 조각 크기가 서로 달랐고, 큰 조각은 쉽게 세 조각으로 자를 수 있었던 반면 작은 조각은 세 조각으로 자르는 것이 무리였던 경험이 있다. 이 방법은 선택지에서 제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토마토와 같이 잘라 작은 조각을 세 조각이 아닌 두 조각을 내는 방법과 새로운 방향으로 잘라보는 것 중에 선택을 하면 된다.
어떻게 할까? 경험치가 있는 첫 번째 토마토처럼 먼저 꼭지를 피해서 크기가 다른 두 조각을 내고, 다시 큰 조각은 세 조각으로 , 작은 조각은 세 조각을 냈을 때 작고 즙이 쏟아졌으니 두 조각으로 모두 다섯 조각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도마 위의 토마토를 내려다봤다. 또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처음부터 토마토를 세 조각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각각 잘라 여섯 조각을 만들까? 토마토를 세 조각을 내는 것은 칼끝을 세워야 하고 토마토의 중앙까지만 칼날이 들어가야 해서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다. 균일하게 세 조각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 첫 번째 토마토처럼 자르는 선택이 최선일 것이다. 선택이 끝나고 도마 위의 마지막 토마토는 각기 다른 크기의 두 조각이 되었다. 큰 조각은 세 조각으로, 작은 조각은 두 조각으로 경험했던 일의 반복은 선택도 결과도 흡족할만하다.
토마토를 조각내는 방법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토마토 조각을 내는데 꼭지가 거슬린다면 조각을 내기 전에 꼭지부터 제거하고 자른다면 두 조각을 내야 할지 세 조각을 내야 할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방법을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꼭지를 제거하려면 왼손 가득 토마토를 쥐고 오른손으로 칼 끝을 세워 돌리면서 파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또 힘조절에 실패하는 순간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아직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선택지 앞에 노인 사람은 자기만의 상황이나 생각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은 오롯이 자기 몫이다.
아침은 토마토와 구운 달걀을 한 개씩 먹는다. 달걀은 전기밥솥으로 3일 치를 구워 놓고 토마토는 아침마다 잘라 올리브유에 볶는다. 토마토를 잘라 볶는데도 이렇게 많은 생각과 선택이 필요하다. 너무 잘게 잘라진 토마토를 볶으면 으깨지고 형태 없이 뭉개져 버린다. 그래서 조각을 낼 때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잘게 잘라진 토마토 조각이 으깨졌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보기에는 좋지 않겠지만 맛은 같으니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나만이 할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선택이 일을 크게 그르치거나 상황을 반전시키는 일이 생겼다고 하자. 관계 속에서 경험이 누적되고 책이나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치를 쌓는다면, 크게 벗어나는 반전의 상황들은 줄어들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한다. 미숙한 선택이 반복될수록 경험치는 쌓이고, 누적된 데이터가 다가올 선택의 순간에 빛을 발할 것이다.
다가올 선택의 순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선택의 순간이 온다 해도 불안하거나 머뭇거림은 줄어들 것이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씻고 썰었던 평범한 일상이 성숙한 나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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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를 꼭지가 아래로 향하도록 두고 자르면 훨씬 편하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는 내내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